“복합기는 복사와 프린트, 팩스, 스캔을 하나의 하드웨어에 통합한 1세대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문서전달과 저장된 문서를 활용하는 2세대를 거쳐 오피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중심기기로서 역할을 하는 3세대 복합기로 빠르게 진화할 전망이다.”지난 6월28일 하드웨어 중심의 영업에서 탈피해 솔루션사업의 본격 진출을 선언한 김대곤 롯데캐논 대표의 말이다. 솔루션사업을 통해 사무실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려는 기업고객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충족시켜 나가겠다는 의미다.롯데캐논뿐만 아니다. 삼성전자, 한국후지제록스, 신도리코 등 주요 복합기와 프린터업체들이 솔루션사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전략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업계 전체가 솔루션을 중심으로 술렁이고 있는 것이다.삼성전자는 지난해 9월 IT솔루션사업을 강화한다고 공식발표했다. 이를 위해 서울 삼성동에 150평 규모의 솔루션센터를 개장하고 이 센터를 거점으로 솔루션 영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지난해 12월에는 한국후지제록스가 ‘도큐월드 2004’라는 대규모 단독전시회를 열고 후지제록스그룹의 신사업 비전인 ‘오픈 오피스 프런티어’를 국내에 본격적으로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오픈 오피스 프런티어’는 솔루션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기업과 조직, 사람이 연결돼 자유롭게 협업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사무환경을 가리킨다.신도리코도 변신을 선언했다. 지난 6월29일 ‘디지털 오피스 컨설팅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하드웨어 중심에서 탈피해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팅업을 주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신도리코의 판매회사인 ‘신도사무기’의 상호를 ‘신도SDR’로 바꿀 정도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 SDR는 ‘the Solutions of Digital Renovation’(디지털 혁신의 솔루션)의 약자다.복합기와 프린터 등 사무기기업계의 솔루션사업 강화는 시장의 요구와 업계의 필요가 절묘하게 일치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무실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기업고객과 성숙단계에 이르러 성장여력이 부족한 기존 시장을 탈피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려는 업계의 이해가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솔루션사업은 PC로 치면 소프트웨어사업에 해당한다. PC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여러가지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복합기나 프린터도 솔루션에 따라 보다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솔루션사업은 고객의 특정 목적에 맞는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솔루션이 줄 수 있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 출력한 문서를 자동 저장할 수 있고 출력관리를 할 수도 있으며 네트워크를 통해 PC가 없어도 필요한 사람에게 정보를 전송할 수 있다. 외국어로 작성된 문서를 자동으로 번역해 주고 모바일과 연동해 원격으로 출력을 할 수도 있다. 또 비용이 많이 드는 컬러 출력의 양을 관리해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종이문서를 바로 전자문서로 전환해 불필요한 업무를 줄일 수도 있다.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솔루션에 따라 기능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업계가 솔루션사업을 강화하는 이유는 매출보다 ‘이윤’ 확대로 귀착된다. 복사기든 프린터든 시장이 성숙기에 들어서 성장 여력이 적은데다 가격경쟁이 심화돼 마진율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프린트 속도나 해상도를 통해 차별화를 이루는 시기도 지났다. 따라서 업계로서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었고 ‘솔루션사업’이 그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다.솔루션사업의 이점은 두 가지다. 우선 솔루션사업 자체가 고부가가치 사업이라는 점이다. 가격경쟁이 극에 달한 하드웨어보다 월등한 마진을 기대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하드웨어 판매를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객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우수한 솔루션을 보유한 기업의 제품이 더 많이 팔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이다.한국후지제록스의 정광은 사장이 지난해 개최된 ‘도큐월드 2004’에서 “복합기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등 국내 사무기기시장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제품판매에만 그치는 사업모델은 더 이상 승산이 없어 통합 사무환경 솔루션을 제공하게 됐다”며 “국내시장에서 고객생산성 향상을 우선하는 종합 사무환경 컨설팅 서비스의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아무리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라도 시장의 요구가 없으면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 법. 솔루션사업이 ‘황금어장’이 될 것이라는 업계의 자신감은 솔루션에 대한 시장의 요구가 지금도 있고 앞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에서 비롯된다. 기업의 경쟁환경이 글로벌경쟁으로 치달으면서 경영혁신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고 사무공간의 생산성 향상은 그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기 때문에 솔루션에 대한 요구는 비등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한국HP의 토털프린트매니지먼트(TPM) 솔루션인 ‘웹젯어드민’을 도입한 GM대우의 사례를 보면 솔루션이 생산성은 높이고 비용은 줄인다는 업계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린팅 비용은 30% 이상 절감한 데 비해 업무효율은 50% 이상 향상됐다는 것이 GM대우측의 설명이다.솔루션사업이 가능한 하이엔드 제품의 시장전망이 밝은 것도 업계의 기대를 부풀리고 있다. 한국IDC에 따르면 흑백레이저프린터나 잉크젯프린터시장은 움츠러드는 반면, 컬러레이저프린터, 디지털복합기 등 고가의 하이엔드시장은 고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솔루션은 성장하고 있는 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유력한 ‘무기’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솔루션사업 강화는 선택이라기보다 필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시장전망이 낙관적임에 따라 관련 기술 개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복합기 관련 특허출원이 매년 급증하고 있다. 2000년 13건이던 출원건수가 2001년 20건, 2002년 53건, 2003년 86건으로 불어났다. 지난해에는 37건으로 주춤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최근에는 하드웨어들의 단순결합에서 벗어나 복합기의 사용편의성과 경제성을 높이는 기술이 주로 출원되고 있어 솔루션사업의 열기를 반영하고 있다.업계, 사업전략 마련 ‘분주’솔루션사업 강화를 발표한 기업들의 움직임은 더욱 바빠지고 있다. 선전포고에 이어 본격적인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한국후지제록스는 이미 10년 전에 솔루션사업을 시작했다. 95년 한국후지제록스 정보시스템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전문 자회사를 설립해 독자적인 솔루션 개발을 도모했다. 영업조직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만 70여명의 인력을 추가 채용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업조직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솔루션 영업은 고객과 일대일 상담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직판영업 중심의 전략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솔루션사업에서만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자신하고 있다. 회사의 광고포스터에 ‘제록스 영업사원은 솔루션 박사’라고 명기했을 정도로 영업력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이 회사의 신상헌 프로덕트마케팅팀장은 “후지제록스는 솔루션사업을 할 수 있는 하이엔드 제품과 솔루션 제품의 라인업이 경쟁사에 비해 강력한데다 대리점이 아니라 직판영업을 하고 있어 유리하다”며 “회사 내부에서도 교육시간이 너무 많지 않으냐는 말이 들릴 정도로 영업직원들의 맨파워 향상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롯데캐논은 지난해 ‘솔루션추진팀’이라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제품의 상품화와 판매전략 수립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팀은 솔루션 판매는 물론 솔루션 컨설팅과 관리사업도 구상하고 있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밉’(MEAP) 플랫폼의 소스를 공개해 누구라도 이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PC가 소프트웨어에 따라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듯이 밉이 장착된 복합기도 설치되는 소프트웨어에 따라 여러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현재 4개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고 지속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예정이지만 고객이 원하는 모든 소프트웨어를 롯데캐논이 제공할 수는 없다”며 “개발 키트를 판매해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개발, 판매할 수 있도록 해 밉을 확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밉이 장착된 복합기는 350여대 가량 판매됐으며 밉을 장착한 모델을 확대하는 등 사업을 본격화하는 내년에는 2~3배 정도 판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회사측은 기대하고 있다.신도리코는 판매자회사인 신도사무기의 이름을 신도SDR로 개명하고 전국 1,200여명에 달하는 영업과 서비스 직원을 대상으로 디지털과 네트워크 솔루션 전문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1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를 하고 소프트웨어 영업팀을 신설하는 등 솔루션사업을 위한 준비를 다졌다. ‘고부가가치 영업을 통한 일류직원, 일류기업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미 몇 년 전부터 솔루션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HP는 솔루션 개발 파트너사와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해 보다 다양한 고객의 니즈를 만족시킨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파트너사에 대한 기술과 제품지원을 확대하고 수출과 마케팅부문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한국HP의 윤선영 마케팅 과장은 “솔루션 관련 매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전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솔루션사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삼성전자는 솔루션사업의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중국, 러시아, 미국, 중남미 등에 솔루션 마케팅 조직을 강화해 세계 프린팅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조직의 세분화, 현지인력 확충, 현지 개발 파트너를 확보해 현지고객 중심의 솔루션을 공급하고 솔루션과 연계된 서비스 채널을 강화해 고객편의성을 향상시킬 계획이다.지난 6월 한국시장 진출을 선언한 렉스마크도 솔루션사업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일반 소비자보다 우선 기업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어서 솔루션사업은 필수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소호, 중소기업 등 고객 그룹별로 차별화된 접근 전략을 사용,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해 나갈 방침이다.솔루션사업이 업계의 새로운 수익원으로 자리잡으며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업계가 기대하는 것처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은 절반 정도에 그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업계 전체가 솔루션사업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구매에 나서는 시기는 2~3년 후나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의 요구가 있는 것은 분명하고 실제로 솔루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고객들도 증가하고 있지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잖다는 것이다.장원희 한국IDC 연구원은 업계의 차세대 수익원으로 기대를 모았던 포토프린터가 실제로는 부진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솔루션사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아직 떨어지는데다 기기들의 수명이 3~4년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라며 “기기들의 높은 가격도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지도 향상과 가격 저항 문제를 업계가 해결한다면 시장 개화의 시기는 좀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장연구원은 덧붙였다.시장이 본격화되는 시점에는 이견이 있을지라도 솔루션사업이 업계의 판도에 미칠 영향력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워낙 고가제품에 탑재되는 고기술의 제품이기 때문에 최소한 하이엔드 시장의 진입장벽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한국후지제록스의 신상헌 프로덕트 마케팅팀장은 “미래에도 로우엔드 제품을 원하는 고객은 존재할 것이 분명하지만 문제는 로우엔드로는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라며 “솔루션사업은 단순히 매출이나 이윤 등 외형을 성장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의 생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