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에서 북동쪽으로 960km 떨어진 공업도시 몬테레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광활한 갈대밭이었던 이곳은 지금 월풀, 파나소닉, 존슨앤드존슨, 캐리어, 덴소어 등 세계 일류기업들이 밀집한 멕시코 제2의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몬테레이 공항에서 차로 10분을 가면 LG전자 냉장고공장이 나온다. 연간 100만대의 냉장고를 생산해 미국 등에 수출하는 공장으로 2001년 건설됐다. 공장에 들어서면 물류창고 안까지 들어온 철도가 먼저 눈에 띈다. 멕시코 전역과 연결돼 있는 이 철도는 LG전자의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주정부가 직접 건설해 준 것.주정부에서 철도를 깔아줄 정도로 LG전자 냉장고 공장은 짧은 시간에 크게 성공했다. 해마다 평균 30%씩 성장하며 지난해 2억3,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 예상매출액인 3억달러 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이처럼 LG전자 냉장고공장이 짧은 기간에 성공한 것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미주 최고의 원가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자체 분석. 80여명의 R&D 인력이 밤을 세워가며 멕시코 실정에 맞는 제품개발에 전력을 기울인 덕분이라는 것.비전은 더 야심차다. 북미시장을 공략하는 선봉대 역할을 맡겠다는 각오다. 정현세 기획관리팀 부장은 “오는 2007년까지 북미시장 점유율 10%를 달성, 이미 20%를 장악한 멕시코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의 격전장 미국에서도 성공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다만 LG전자 냉장고공장의 고민이 있다면 생산성 향상이다. 멕시코 근로자의 월임금은 70만~80만원 수준으로 한국의 50% 수준에도 못미치지만 결근율이 높고 충성도가 낮은 편이다. 이러다 보니 생산성은 80%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세계 최고 수준인 창원공장의 90%선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LG전자만큼이나 대우일렉트로닉스 공장도 멕시코시장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멕시코시티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키레타로에 있는 대우전자 가전공장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도로 곳곳에 대우로 가는 표지판이 친절하게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원래는 주법상 도로의 기업 표지판은 금지돼 있지만 대우는 예외다. 주정부에서 특별대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대우일렉트로닉스 공장이 설립된 것은 지난 95년. 세탁기,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1억달러의 매출을 올린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올해 2배에 달하는 2억달러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물량이 크게 늘어나 냉장고 라인을 증설했기 때문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10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날 정도로 지역사회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인근 600여개 학교에 무상으로 냉장고를 보급하고, 해마다 호텔을 빌러 경로잔치도 벌인다. 매달 자연호보활동도 나서는 등 한국적인 사회공헌활동으로 지역언론의 극찬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노사문제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멕시코의 노동법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게다가 기업문화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관리자가 근로자의 어깨를 툭 치기만 해도 방송에 나올 정도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 공장은 ‘노동력 착취가 아니라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왔다’는 점을 적극 알렸으며, 근로자들의 열띤 호응을 얻게 된 것이다. 노동절이나 어버이날 법인장을 비롯해 직원들이 퇴근길에 정문 앞에서 선물을 나눠주고, 2월14일 ‘우정의 날’에는 영화관을 통째로 빌려 모든 직원들이 영화를 보러가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김영환 법인장은 “향후 멕시코 내수시장뿐 아니라 북미시장의 전진기지 역할에 중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멕시코는 한국기업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나라다. 우선 내수시장이 만만찮다. 인구가 1억명으로 한국의 2배가 넘는다. 국토도 한반도의 12배에 달할 만큼 거대하다. 1인당 국민소득도 5,969달러로 소비력을 갖췄다.경제성장도 꾸준한 편이다. 지난해 4.4%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올해도 3.6% 정도로 예상된다. 게다가 멕시코는 북미와 중남미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곳이다.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와는 ‘나프타협정’을, 인근 중남미 국가들과는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우제량 중남미지역본부장은 “관세장벽이 없는 자유로운 무역으로 북중미의 관문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라고 설명했다. 자연히 미국, 일본 등 세계 첨단 가전업체들과 유통업체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는 시장이다.지금은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가에 밀리지만 한국기업들의 멕시코 진출은 활발한 편이었다. KOTRA 중남미지역본부에 따르면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기업은 124개(5월 말 기준)다. 이중 대기업은 삼성, LG, 대우 등 10여곳이다. 나머지는 신발ㆍ섬유업종의 중소기업들이다. 멕시코에서 한국기업의 위상은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멕시코는 옥외광고판의 천국으로 가로수를 대신할 정도로 많다. 광고주는 GE, HP, 월마트, 소니, 도요타 등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과 LG전자, 삼성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한국기업들이다. 오히려 한국기업들의 광고판이 더 좋은 위치에,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멕시코시티에서 최고급 백화점으로 알려진 시어스 가전매장에 들어서면 LG전자와 삼성전자의 부스가 첫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으로 월풀, GE, 메이택, 파나소닉 등의 부스가 보인다. LG전자 멕시코 판매법인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한창현 과장은 “멕시코 시장에서 한국 가전기업들의 위상은 최고 수준에 올랐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한국 대기업들의 멕시코 진출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제품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서 북미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거점으로 멕시코만큼 지리적 이점을 지닌 곳이 드문데다 멕시코를 비롯한 중남미시장의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INTERVIEW / 윤태환 LG전자 멕시코 법인장“2006년 넘버원 비상 자신”“LG전자 가전은 GE, 월풀, 파나소닉 등과의 경쟁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습니다.” 윤태환 LG전자 멕시코 법인장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묻어난다. 무엇보다 “(LG전자 제품이)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는데다 가전뿐만 아니라 LCD 및 PDP-TV와 휴대전화 단말기 등 정보통신제품군까지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경쟁력으로 들었다. 그만큼 시장을 공략할 무기가 다양하다는 뜻이다.더군다나 멕시코 현지공장에서 소비자 실정에 맞는 제품을 직접 생산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았다. LG전자는 몬테레이, 멕시칼리, 레이노사, 두란고 등에 3개의 생산법인을 두고 있다. 판매법인은 4곳의 생산법인에서 생산한 제품과 국내에서 들여온 제품을 멕시코 전역에서 팔고 있다.윤법인장은 “멕시코 시장에서 판매되는 LG전자의 모든 제품이 판매량 3위 안에 들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룸에어컨, 트롬세탁기, 전자레인지, PDP 및 LCD 모니터, CDMA 휴대전화 단말기 등 6개 제품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2004년 매출액이 6억2,000만달러. 이는 법인 출범 2년째인 94년 3,000만달러에서 10년 만에 20배 정도 늘어난 것이다. LG전자는 2004년 6월 멕시코 경제월간지인<익스펜션>지가 선정하는 ‘멕시코 500대 기업’ 중 75위에 올랐다.윤법인장은 조금 느슨해질 만도 하지만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올해 매출목표가 8억달러로 지난해보다 30% 늘려 잡았다. 이뿐 아니라 2006년에는 10억달러를 달성해 멕시코 1위 가전업체로 우뚝 서겠다는 야심찬 목표까지 세운 상황이다.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미 멕시코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공적으로 정착한데다 제품품질, 마케팅, 서비스 등 어느 면에서도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 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LG전자의 서비스망만 보더라도 윤법인장의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다. 전국 32개주에 530여개의 방대한 서비스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멕시코갤럽이 실시하는 ‘서비스 고객만족도조사’에서 소니, GE 등을 제치고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윤법인장은 스포츠마케팅과 사회공헌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멕시코의 열광적인 축구 열기를 활용하기 위해 2002년부터 프로축구팀인 ‘모렐리아 모나르카스’팀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또 태권도 종목에서는 후원선수 2명이 아테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한국 마리아수녀회가 멕시코의 극빈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정규 중ㆍ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멕시코 소년의 집’을 2000년부터 꾸준히 후원하고 있다.윤법인장은 최근 인재육성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얼마나 좋은 인재를 많이 확보하느냐가 멕시코 시장에서 1위 달성 여부를 판가름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현지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영어회화교육을 실시하고, 오너십을 가질 수 있도록 핵심적인 일까지도 믿고 맡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LG NUMERO 1 EN MEXICO(멕시코 넘버원 LG)으로 비상할 자신이 있다”는 윤법인장의 말이 허투로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