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분양대행사가 아니다.’분양대행사의 변신이 눈부시다. 건설사, 시행사에 종속돼 수족 노릇을 하던 분양대행사는 이제 없다. 갖은 감언이설로 순진한 수요자를 현혹하던 분양대행사도 발붙일 자리가 없어졌다.부동산시장이 변했듯, 실수요자를 최전선에서 만나는 분양대행사의 체질도 바뀌었다. 까다로운 소비자 요구를 분석, 선진 마케팅 기법을 개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요즘 분양대행사의 모습이다. 분양대행에 그치지 않고 컨설팅은 물론 개발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모습도 두드러진다. 이미 분양대행사의 역할과 기능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는 중이다.분양대행사는 수천억, 때로는 수조원에 이르는 분양 프로젝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 구성원이다. 시행사가 부지를 확보해 개발 컨셉을 부여하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다면 분양대행사는 시장 최전선에 배치돼 수요자와 직접 만나 계약을 성사시키는 전위부대 역할을 한다. 실제 영업창구 역할을 하는 분양대행사의 능력에 따라 분양 프로젝트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무엇보다 수요자 패턴이 많이 바뀐 것이 분양대행사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 화려한 광고문구와 사탕발림 판촉에 넘어가는 소비자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전문가 뺨치는 부동산 지식으로 무장한 소비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능가하는 전문성과 틈새를 뚫는 마케팅 기법이 필요하다. 당연히 가만히 앉아서 고객을 기다릴 수는 없게 됐다. 분양대행사들은 저마다 독창적인 마케팅 전략을 개발, 실수요자를 골라 ‘살 사람에게만 파는’ 고도의 기법을 선보이고 있다.오피스텔, 주상복합아파트 분양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메디치코리아의 경우 최근 청약 돌풍을 불러일으킨 부산 롯데갤러리움 센텀 분양에 앞서 사전 마케팅을 실시하면서 영업사원과 도우미 50여명을 일본 록본기힐에 보냈다. 입지가 비슷한 록본기힐의 선진 개발 사례를 견학케 함으로써 고객을 자신 있게 대하고 누구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게 한다는 의도였다. 결과는 단 하루 만에 100% 분양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돌아왔다.전문성 중무장… ‘실력’으로 승부미르이앤씨도 실수요를 발굴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돋보이는 업체로 유명하다. 이 회사 임종근 대표는 “시시각각 변하는 아파트 시장과 소비자 취향을 포착해 정확한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면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실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미래의 시장환경에 맞는 잠재 수요층을 발굴하는 게 미르의 마케팅 전략”이라고 밝혔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분양대행사를 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시행사나 건설사 입장에서는 어떤 분양대행사와 손을 잡는가가 관건일 수밖에 없다.특히 부동산시장이 침체상황이거나 수요자가 적은 지방의 프로젝트일 경우 분양대행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믿을 만한 업체를 골라 분양대행 계약을 하는 것은 프로젝트 성공의 필수조건”이라고 표현하고 “철저한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실력을 검증한 후 대행업체를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박상언 내집마련정보사 팀장도 “과거에는 분양대행사가 건설사나 시행사와 종속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대등한 관계로 사업을 이끌어간다”고 말하고 “분양대행사도 차별화된 마케팅 기법과 전문성으로 무장, 저마다의 실력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밝혔다.이 같은 변화상의 배경은 달라진 시장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 상품은 ‘지어놓으면 팔린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분양대행사 선정도 ‘거저먹는’ 특혜로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거쳐 부동산시장 체질이 바뀌면서 수요자 중심 시장으로 급격히 전환, ‘마케팅’이 화두로 떠오르기에 이르렀다. 지어만 놓으면 팔리는 게 아니라 ‘살 만한 사람에게 팔아야 하는’ 시장으로 변한 것이다.이에 따라 연고에 의존해 손쉽게 수주하던 분양대행사는 도태하는 반면, ‘실력’으로 무장한 업체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분양대행업 풍토도 바뀌었다. ‘떳다방’과 함께 구설수에 오르거나 무리한 판촉활동으로 투자자의 자산을 축내는 자격미달 업체들은 경쟁에서 배제되고 경험과 실적이 첫 번째 판단기준으로 떠올랐다.건설사나 시행사들이 분양대행 계약조건으로 담보를 요구하면서부터는 자금력도 중요한 조건으로 추가됐다. 1980~90년대 중구난방 분양대행업 시장이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실력과 자금력을 겸비해야 살아남는 시장으로 확 바뀐 것이다.최근에는 분양대행사의 입지가 한층 강화되는 조짐도 엿보인다. 과거에는 분양대행권을 따내기 위해 무조건 사업주체 눈에 띄려는 움직임이 많았지만 요즘은 사업지를 직접 고르는 분양대행사도 나타나는 것이다. 또 “분양가를 더 내려야 한다”, “대행수수료를 더 올려라” 등 ‘주문’을 하는 경우도 적잖다. 단시간에 목표를 달성했을 때 인센티브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분양성공의 ‘열쇠’를 쥔 분양대행사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목소리와 입지도 수직상승한 셈이다.이뿐 아니라 분양대행업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관련분야로 업무영역을 확대하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동우에이치앤엠, 창우산업개발, 알이석세스, 오쉘윈, 태풍건설 등은 모두 부동산컨설팅, 개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관련분야로 영역 확대를 꾀하고 있다.김지권 동우에이치앤엠 대표는 “독창적인 마케팅 기법을 바탕으로 부동산개발과 분양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전천후 부동산회사로서의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