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성장 불구 4년째 침체 늪, 올 들어 대규모 IPO 줄줄이 연기
쾌속성장으로 전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잠에서 깨어난 용’ 중국에서 유독 증시만 어울리지 않게 몇 년째 잠을 자고 있다. 국무원부터 증권감독위원회까지 나서서 하루가 멀다 하고 증시부양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가 그래프는 바닥을 기면서 좀처럼 고개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중국 대표증시인 상하이종합주가지수의 3월7일 종가는 1293.793. 2월1일 5년 8개월 만의 최저치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9% 가까이 반등했지만 2001년 6월 고점 대비 여전히 60%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등락률도 -15.04%를 기록해 세계 43개 주요증시 중 꼴찌였는데 올 들어서도 주가가 계속 고꾸라졌다.종합주가지수가 2000~2001에 고점을 찍고 떨어진 것은 다른 나라도 사정이 비슷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 KOSPI, 홍콩 항셍지수 등 이웃 증시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동반 상승한 것과 달리 상하이지수만 유독 하락 장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중국 정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가를 띄우는 것보다는 기업 회계부정을 때려잡는 게 급해 주가하락을 사실상 방조했다. 지난해 1월 뉴욕에서 기업공개(IPO)한 지 한달밖에 안된 중국생명을 횡령과 회계부정 혐의로 잡아들였고 8월부터는 다른 기업들의 회계처리도 의심스럽다며 국내 IPO를 아예 무기한 중단시켜 버렸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위시해 현 중국 집권세력은 성장보다는 조화와 규율, 도덕성을 중시하는 면에서 장쩌민 전 정부와 뚜렷하게 다른 국정운영 모토를 내걸고 있는데, 기업들과 증권사의 부도덕한 사업관행이 이 같은 지도층의 신념에 정면 대치하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증권가에 통폐합 폭풍이 올 것이라는 발언도 고위관료들 입에서 종종 나왔다. 외국기관은 중국증시를 외면했고 증권사들은 납작 엎드렸다. 특히 중국 최대보험사인 중국생명이 뉴욕에서 그해 미국 IPO 사상 최고액인 30억달러를 끌어모은 지 얼마 안 가서 회계부정으로 적발된 사건은 외국 기관투자가들 사이에 중국 기업에 대한 엄청난 불신을 심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증시는 세계적인 증시 회복세에서 혼자만 소외된 채 지난해를 보냈다.원칙론으로 일관하던 중국 정부가 주가하락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다. 일단 국내외 증시전문가와 언론들이 주가하락세를 심상치 않게 보기 시작했다. 일부 중국언론들은 중국증시가 지난 12년간 3년을 주기로 등락을 반복해 왔다는 점을 들어 반등 조짐이 없는 게 이상하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일명 ‘3년 주기설’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는 상승 주기의 초반부가 됐어야 한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증시의 장기침체에 따른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주가하락은 여윳돈을 은행과 부동산으로 몰아 지난해 상하이 집값이 평균 15%나 급등, 5년 전 대비 2배가 됐다. 이는 사회주의국가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물가안정을 경제성장만큼 중시하며, 최근 5년 평균 물가상승률을 1.08%로 유지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은행예금은 현재 12조위안이나 쌓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은행들이 긴축정책을 펴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기업에 잘 빌려주지 않고 있어 시중으로 돈이 돌지 않는다. 베이징 중앙재경대학이 지난 2003년 말 자료를 근거로 추산한 바에 따르면 투기성 높은 지하자금도 최고 8,200억위안이나 제도권 밖을 배회하고 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정부는 올 들어 연초부터 온갖 증시부양 대책을 쏟아냈다. 1월에 증권거래세를 0.1%로 절반이나 깎은 데 이어 2월20일에는 상업은행이 뮤추얼펀드를 만들어 주식에 투자하도록 허용했고, 그 이튿날에는 장기적으로 600억위안 규모의 국영펀드를 만들어 증권사 부도로 개인투자자가 손해를 보면 보전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3월3일에는 현지 보험사 중 처음으로 화이타이보험에 주식투자를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도 중국 주식과 채권을 사고팔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외국 기관투자가가 중국에서 주식을 자유롭게 사고팔려면 QFⅠⅠ라고 하는 외국적격투자기관 자격이 필요한데, 중국은 증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금융회사도 아닌 미국 게이츠재단에도 이 자격을 주는 등 지난해 말부터 QFⅠⅠ 발급을 늘리려고 하고 있으나 신청자가 많지 않아 속을 끓이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자격심사기준을 완화해 주겠다는 복안도 내놓았다.하지만 지금까지로 봐서는 약발이 영 신통치 않다. 상하이지수는 지난 2월 런던증시가 2년 6개월 만에 5000선을 돌파하고 일본 닛케이지수가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잔치분위기 속에서 모처럼 10% 가까이 반등하는 데 성공했지만 3월 들어서는 하루 걸러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어 추가상승이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정부의 온갖 증시부양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움직여주지 않자 최근 중국 국내외 증시전문가들은 중국증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해 경제성장률이 9.5%에 달할 정도로 거시경제가 탄탄하고, 지난해 328억달러에 달한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바탕으로 기업실적도 좋은 상황에서 증시가 부진한 이유가 기술적으로는 잘 설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중국증시의 구조적인 문제로 공통되게 지적되는 것은 △비유통주에 따른 수급불안 △외국기관에 대한 증시 참여 제한 △소액주주에 대한 보호책 미비 △증권사 부실 등이다.비유통주란 국유주식이다. 중국 상장사들은 태생적으로 모두 국유기업이기 때문에 국가와 공무원들이 지금도 발행주식의 3분의 2에 달하는 물량을 갖고 있다. 시중에 돌지 않는 이런 비유통주는 존재 자체가 증시에 부담이다. 중국 정부는 비유통주가 불법으로 헐값에 시장에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20일 국유주 전문 거래시장(일명 C증시)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이후 상하이지수는 1월 말까지 6% 넘게 떨어져 정부가 국유주 처분을 시사하는 것만으로도 증시가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 입증됐다. 중국 정부는 비유통주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증시부양에 성공할 수 없다는 위기감 속에 지난 3월7일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도 관련 안건을 다뤘다. ‘주식소유권 분산 배치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한 건의’라는 이름의 이 문건은 뾰족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유통주 주주들의 이익을 우선 보호해줘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또 90~91년 상하이와 선전에 증권거래소를 만들 때부터 위안화로 거래되는 내국인 전용 A주와 외국인이 사고팔 수 있도록 달러로 표시(상하이는 미국 달러, 선전은 홍콩달러)한 B주로 구분해 놓은 후진적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 정부는 QFⅠⅠ를 통해 A주를 사고팔 수 있는 외국기관수를 늘려가고 있으나 아직도 기관별로 쿼터를 배당해 투자 총액을 제한하는 등 완전개방과는 거리가 있다.물론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내외 전문가들이 중국증시의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들에 대해 하나도 빼놓지 않고 대책을 내놓는 성의를 보여줬다. 지난해 부정회계 관행을 뜯어고치기 위한 각종 ‘조치’를 20개나 내놓았던 증감위는 올해 나올 조치는 지난해보다 많겠지만 초점은 증시부양에 맞추겠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증감위 부위원장인 투 광샤오는 최근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공급해 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언론 접촉 횟수를 늘리겠다”는 말을 했는데, 딱딱한 공식문건 발표 때 외에는 언론에 잘 등장하지 않는 증감위 간부의 관행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이 투자자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것보다 비관적인 것이 더 많다. 앞서 열거한 구조적 문제 중에서 비유통주의 부작용이 단기간에 해소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게 첫 번째 이유다. 또 올해 예정된 대형 기업공개(IPO) 건수가 많지 않아 시장에 자극을 줄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 올 하반기 홍콩에서 30억달러짜리 기업공개(IPO)를 할 예정이던 중국 교통은행은 지난 2월 이중 절반을 쪼개 상하이에서 동시 상장하라는 정부의 압력을 받은 것으로 보도됐는데, 최근에는 다시 홍콩증시에만 상장하기로 방침을 굳히고 있다. 이유는 하락장에서 증시 부양용 희생양이 되기 싫다는 것이다.중국증시가 언제쯤 본격적인 반등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적어도 증권사 통폐합작업이 마무리되는 올 하반기 이후로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정부는 절반 이상이 지급불능 상태에 빠져 있는 130여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4월까지 회계장부를 제출하라고 명령했으며, 이를 검토한 후 통폐합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이중 20여개사만이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주식이 여전히 고평가돼 있어 주가가 한동안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상하이증시의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현재 24배로, 2000~2001년 61배까지 치솟았던 것에 비하면 절반 이상 추락했으나 홍콩증시와 비교하면 아직도 50%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한경매거진&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