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콘텐츠' 만들기 여부 기획자 능력에 달려…실패한 기획은 회사를 죽이기도

게임 좋아하는 사람치고 소프트맥스의 ‘창세기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게임은 90년대 초 출시돼 100만장 가까이 팔려 나간 초유의 흥행작으로 무명의 소프트맥스를 일약 국내 최고의 패키지게임 개발사에 올려놓았다. 국내 패키지게임 사상 이런 성공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다.한 게임전문가는 “그래픽을 제외하면 지금 봐도 창세기전은 낡지 않았다”며 “치밀한 시나리오와 차별적인 기획이 짜임새 있게 구성된 것이 성공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 ‘리니즈’도 뛰어난 기획으로 성공한 경우다. 패키지게임에 비해 그래픽의 화려함은 없었지만 한국 온라인 게이머들의 취향에 똑 들어맞는 게임구성으로 대성공을 거뒀다.게임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교육콘텐츠, 음악서비스 등 모든 디지털콘텐츠 분야에서 기획은 콘텐츠의 성패를 가름하는 최대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나의 디지털콘텐츠가 완성되기까지에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기획자 외에 프로그래머, 그래픽디자이너, 시스템엔지니어, 통계전문가 등 무수한 전문인력이 동원된다. 그런데 왜 유독 기획자의 역할이 도드라지고 있는 걸까. 이와 관련, 게임전문회사인 그리곤엔터테인먼트의 김병철 팀장은 “콘텐츠를 구현하는 기술력과 그래픽 능력이 평준화되면서 기획이 콘텐츠의 차별성을 가르는 요소로 등장했다”며 “기획과 결합하지 않은 기술과 그래픽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디지털콘텐츠 제작에서 기획자의 역할은 광범위하다. 개발에 앞서 시장조사를 하고 수익성을 검토하고 경쟁사의 동향을 체크하고 조직을 구성한다.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참여해야 하며 제품을 출시한 후에는 유지보수 전략을 수립, 진행한다. 한마디로 콘텐츠의 시작부터 끝의 모든 과정을 책임진다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콘텐츠와 우수한 상품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으며 최근에는 비즈니스적 감각과 능력을 우선으로 꼽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시장의 흐름 꿰고 있어야소비자의 요구를 정확하게 포착해 초기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기획자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획기적인 기획 하나로 기울어지던 회사가 일거에 업계의 중심에 설 수도 있다. 커뮤니티 포털인 ‘싸이월드’가 가장 비근한 예다. 이 회사는 최초의 블로그 서비스로 알려진 ‘미니홈피’ 서비스로 기울어지던 사세를 단숨에 일으켰다. 하고 싶은 말 많고 자신을 알리고 싶어 하는 네티즌들의 요구를 정확히 포착한 기획이 성공한 것이다. 이후 여러 업체들이 블로그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싸이월드’의 입지는 굳건하다.모바일 콘텐츠의 경우 시장의 요구에 대한 빠른 대응 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특히 휴대전화 벨소리 서비스의 경우 몇 시간 단위로 매출이 수십배씩 차이가 난다. 야후코리아의 고동현 무선인터넷팀장은 “휴대전화 콘텐츠는 다른 콘텐츠에 비해 유행을 심하게 탄다”며 “수명이 상대적으로 긴 게임이나 커뮤니티의 라이프사이클도 갈수록 짧아져 신속하고 독특한 콘텐츠 기획이 더욱더 중요해 지고 있다”고 전했다.타깃 선정이 콘텐츠 운명 좌우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LG텔레콤의 ‘보디가드 서비스’에는 우수한 콘텐츠와 우수한 상품의 갈림길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서비스는 위기상황시 버튼 하나만 누르면 미리 전화번호가 저장된 3명에게 자동으로 메시지와 위치정보를 전송한다. 험한 세상에서 위협을 느끼는 여성, 아동, 노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다른 이동통신사들도 유사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다.보디가드 서비스는 사실 몇 년 전에 개발, 출시되기도 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서비스였다. 주요 고객층을 휴대전화 최대 이용자인 여성이 아니라 아동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반면 LG텔레콤은 여성을 주 고객층으로 잡고 마케팅력을 집중해 성공했다. 최근 여성을 노리는 범죄가 늘어 많은 여성들이 신변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도 주효했다. 출시시점과 타깃 고객층의 선정에 따라 콘텐츠의 운명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위기에 대비하는 것도 기획자의 몫제휴사와의 관계를 정립하고 유지하는 것도 기획자의 몫이다. 최근의 디지털콘텐츠는 여러 회사가 힘을 모아 제작하는 경향이 높다. 웹콘텐츠를 무선인터넷으로 제공한다든가, 패키지게임을 모바일화한다든가 인기 TV 프로그램을 활용해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이종업체간의 제휴가 활발하다. 이에 따라 제휴사와의 관계정립이 중요해지고 있다. 잘못된 계약으로 기획 자체가 수포로 돌아가는 일도 있고 회사가 치명적인 손해를 입을 수도 있다.최근 파문을 일으킨 이승연과 베이비복스의 누드 콘텐츠 사건은 제휴사와의 관계가 콘텐츠개발업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이승연 누드를 기획한 네띠앙은 한푼의 수익을 거두지 못한 것은 물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기업의 이미지가 훼손됐다.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동통신사가 프로젝트 기획단계에서 분명히 개입했을 텐데 네띠앙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며 “관계사와 공동 책임을 졌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홍보 마인드 갈수록 중요해져콘텐츠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경쟁사가 유사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시장을 선점하지 못하면 성공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모바일콘텐츠의 경우 제품의 수명이 갈수록 짧아져 ‘일주일 내에 반응이 없으면 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여서 초반 홍보기획은 콘텐츠의 생사를 좌우한다.디지털콘텐츠 사상 가장 획기적인 홍보는 2000년 여성 포털 마이클럽의 일명 ‘선영아 사랑해’ 마케팅이다. 서울시내 곳곳에 ‘선영아 사랑해’라는 포스터를 붙여 출근길 서울시민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고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이후 언론에 인터넷 포털 마이클럽이 이 포스터의 주인임이 보도되면서 마이클럽은 사람들의 뇌리에 단단히 자리잡았다.돋보기 | 좋은 기획자가 되려면다양한 지식·전문성·현장경험 고루 갖춰야디지털콘텐츠산업이 활기를 띠면서 기획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업계에서도 유능한 인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기 일쑤다. 업계 관계자들이 추천하는 ‘우수 기획자가 되는 법’을 소개한다.1. 주특기를 개발하라기획자는 다양한 업무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알 수 없는 노릇. 자기의 전문분야에서 소양을 쌓은 후 천천히 영역을 넓히며 관련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2. 영어공부보다 책을 많이 읽어라기획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에서 자라난다. 폭넓게 알아야 큰 흐름을 알 수 있고 아이디어도 떠오른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는 절대로 유저들의 요구를 포착할 수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는 것도 도움이 된다.3. 현장경험을 쌓아라미숙하나마 직접 기획을 하고 콘텐츠를 제작해 볼 것을 권한다. 동호회 활동도 좋고 특히 여러 업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인턴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크게 도움이 된다.4. 주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라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킬러콘텐츠로 자리잡는 경우가 많다. 야호커뮤니케이션의 이기돈 사장은 지하철 안의 대부분 사람들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 최초로 휴대전화 벨소리 서비스를 시작해 성공을 거뒀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관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