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외자선호정책 바꿔야 할 때

새해 벽두부터 외국자본의 국내 금융시장 지배문제인 윔블던 효과(Wimbledon Effect)가 우리 경제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윔블던 효과란 윔블던 테니스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의 금융기관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영국의 경우 1986년 금융빅뱅을 단행한 이후 금융산업 전반에 개방화ㆍ자유화ㆍ국제화ㆍ겸업화를 빠르게 진행하면서 윔블던 효과가 나타났다. 영국의 금융시장이 개방되자마자 막강한 자금과 조직을 앞세운 미국과 유럽의 금융업자들이 영국 금융기관을 인수하기 시작해 영국 10대 증권회사 가운데 8개사가 도산되거나 흡수ㆍ합병됐다. 이후 영국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등 대부분 국가에서 금융시장 개방화 과정에서 윔블던 효과가 우려됐다.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비중은 40%를 넘어섰다. 특히 삼성전자, SK텔레콤, 포스코, 한국전력과 같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일수록 외국인 비중이 높아 체감적으로 느끼는 외국자본의 영향력은 50%를 넘은 상태다.금융기관들도 7개 시중은행 가운데 3개 은행, 증권ㆍ보험ㆍ투신사들은 3곳 가운데 한곳이 이미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금융시장과 금융기관의 영향력을 이용해 산업자본에까지 손을 뻗고 있다. 내년에는 우리은행, 한국투자증권, 대한투자증권 등이 매각될 예정이어서 윔블던 효과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에서 금융산업의 폐쇄성이 문제가 된 우리나라가 이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현시점에서 여러가지 요인이 지적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정책당국의 경제여건 변화와 관계없는 외자선호 정책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우리나라와 같이 외환위기를 겪은 국가에서는 외자정책은 위기극복 정도에 따라 신속히 변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보통 한 나라의 금융위기는 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발생하는 외화유동성 위기(major crisis)와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개별 경제주체들의 유동성상에 문제가 생기는 위기(minor crisis)로 구분된다.이런 위기론에 맞는 정책당국의 외자정책은 외화유동성 위기 단계에서는 외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기조이나 이 외환유동성 위기국면이 끝났을 때는 위기국의 구조조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공색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우리나라는 외화가 부족해서 생기는 외화유동성 위기 단계는 지나 외환위기를 발생시킨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는 개혁과 구조조정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런 위기단계의 변화를 무시하고 외환위기 초기단계에 실시했던 외자선호 정책을 그대로 유지함에 따라 최근과 같은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같은 맥락에서 외국인 자본을 선호한 이면에는 국내 기관투자가와 국내자본을 육성하는 데 소홀히 했던 것도 원인이다. 오히려 외국자본과 외국기업을 우대하기 위해 제도 전반에 역차별 요소가 많음에 따라 국내기업과 국내자본이 육성되는 길을 차단했다. 여기에 외자와 외국기업을 막연하게 동경하는 국민정서도 한몫 했다.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포트폴리오 성격 위주의 외국자본 확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영국은 금융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단계에서 윔블던 효과가 크게 우려됐으나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우리나라는 어떤가. 한마디로 경제발전 단계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고 현시점에서 역기능이 더 우려되고 있다. 다시 말해 외국인 자본이 한국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유출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외국자본 확대과정에서 국부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은행인 ‘키위뱅크’를 설립한 뉴질랜드가 대표적인 예다.경제정책 무력화도 우려된다. 외국자본은 금융수익을 최우선시해 정부의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다. 결국 이 문제는 외국자본이 확대된 만큼 우리의 경제주권이 약화된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국제사회에서 금융위기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체제에 빗대 윔블던 효과를 ‘제2의 경제신탁통치 시대’라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기업의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벌처펀드형 투자,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심하다. 이미 SK글로벌을 비롯해 많은 국내기업들이 경영권을 빼앗겼거나 빼앗길 위험에 노출돼 있다.이밖에 금융수익을 우선시함에 따라 부동산 투기와 산업 및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이 증가할 우려가 높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국가의 경험을 보면 이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이런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구상 중인 한국투자공사 설립 등을 통한 동북아 금융허브가 되기 위한 과제들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무엇보다 정부의 외자선호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환보유고가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외자정책은 한국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 여부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이제는 ‘흰 고양이인가, 검은 고양이인가 가릴 필요 없이 진짜 고양이이면 된다’는 식의 외자 선호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한국경제 앞날을 위해서는 진짜 고양이가 돼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외자의 성격도 흰 고양이인지 검은 고양이인지를 가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 실효성까지도 검토해 놓을 필요가 있다.외자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자본의 육성, 국내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제도 곳곳에 만연돼 있는 외국기업과 국내기업, 외국자본과 국내자본간의 역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또 외국자본의 대항 차원에서 현재 정부가 구상 중인 사모펀드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급한 사모펀드 육성보다는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방안을 통해 국내자본을 육성하는 것이 실효성이 높아 보인다.마지막으로 경제주체들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한국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자세만 있으면 최근과 같은 윔블던 효과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