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경제는 미국과 중국이 이끌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신구 경제대국인 이들 국가가 2004년에 어떻게 경제정책을 모색하느냐에 따라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2002년에 치러진 중간선거 이후 집권 2기를 맞고 있는 부시 행정부는 경제분야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2004년에 예정된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집권하기 위해서는 경제문제 해결이 우선적인 과제임을 시사해준 셈이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당면한 증시와 경제 안정을 올 하반기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삼을 전망이다. 요즘 미 경제계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런 의지를 담은 첫 작품으로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2004년을 앞두고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래도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보면 대공황 당시의 후버 경제팀 이후 가장 무능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 경제팀을 2004년에 접어들자마자 교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 문제는 현 경제팀과 함께하겠다는 것이 부시 대통령의 입장이다.현 경제팀이 해결해야 할 양대 현안이 있다. 하나는 올 하반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기회복세를 미국 국민들의 생활안정에 이르기까지 확산시키는 것이다.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으나 출범 초부터 줄곧 유지해 온 조세감면을 통한 부양책을 그대로 밀고나갈 가능성이 높다. 통화정책은 오히려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또 다른 현안인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의 전통적인 강력한 통상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나 질적 면에서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힘을 앞세운 일방적 통상정책이 효과가 없었다고 평가되고 있으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전히 다자채널과 양자협상을 동시에 활용하는 야누스적인 색채가 보다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증시안정을 위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공화당 전통대로 강한 달러화 정책과 친기업ㆍ친월가 정책을 그대로 밀고나갈 것으로 확실시된다. 다만 기업정책에 있어서는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문제가 드러난 신뢰회복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는 것이 월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2004년에 예상되는 이런 미국의 경제정책 변화는 우리나라와의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통상문제다. 올해와 마찬가지로 2004년에도 부시 행정부는 미국 경제의 최대 현안인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통상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현재 한ㆍ미간에는 심각한 통상현안은 많지 않다. 철강과 반도체분야의 반덤핑제소, 한미투자협정과 관련한 스크린쿼터, 자동차 특소세 부과문제, 지적재산권 보호와 관련해서 무단복제 등이 통상현안으로 남아 있는 정도다.중국의 후진타오체제도 집권 2년을 맞는 2004년에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정책에서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중국경제는 수출호조세를 바탕으로 높은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지만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대규모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과 실업문제, 도시와 농촌간의 빈부격차, 주요 교역국과의 통상마찰 등이 대표적인 경제 현안들이다.이미 장쩌민 체제가 많은 고민해 왔고 중국 국민들의 요구가 강해지는 점을 감안하면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도 이 문제 해결에 우선적인 목표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 최우선 과제인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기 위해 과감한 금융개혁 정책을 계속해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또 도시와 농촌간의 빈부격차와 대규모 실업, 통상마찰 등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수출지향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신 9ㆍ6계획에 따라 지난 99년 하반기부터 내수시장을 겨냥해 추진해 온 ‘경제대국형 성장모델’이 이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보다 속도 있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고도성장전략에서 균형성장전략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개방정책에 있어서는 불균형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WTO 가입 이후 무역분야는 어느 정도 자유화가 진전되고 있으나 외환ㆍ자본자유화가 뒤따라오지 못함에 따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후진타오-원자바오는 외환ㆍ자본자유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이 분야의 자유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2004년 중국의 외환과 자본자유화 계획을 계속 추진할 경우 우리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중국의 고정환율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94년 이후 중국은 ‘1달러=8.28위안’을 중심환율로 하는 통화위원회(currency boardㆍ일종의 고정환율제)제도를 유지해 왔다.문제는 중국이 WTO에 가입한 이후 이 제도 유지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하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이 WTO 가입에 따라 하루하루 변하는 외환수급을 환율로 잡아주지 못함에 따라 인플레 등 내부적으로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 한해 세계경제 현안이었던 위안화 평가절상에 따른 통화마찰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최근 중국의 통화정책 관련자들이 수시로 현 환율제도를 복스바스켓시스템으로 변경해야 한다든가, 차제에 자유변동환율제를 도입해야 한다든가 하는 발언이 부쩍 많았던 것도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기는 점칠 수 없으나 2004년 들어 언젠가는 중국이 통화위원회제도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앞으로 중국이 외환과 자본자유화의 일환으로 고정환율제를 포기할 경우 위안화 가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부에서는 막대한 금융기관의 부실채권과 대규모 실업문제가 현 중국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출을 늘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는 절하돼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물론 이런 시각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재 풍부한 외환사정을 감안하면 위안화 가치는 절상될 수밖에 없다. 만약 중국 정부가 당면한 부실채권과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시장여건을 무시하고 위안화 가치를 절하할 경우 헤지펀드와 같은 국제투기자본으로부터 집중적인 환투기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2004년 들어 중국의 이런 경제정책은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우리의 무역구조도 전통적인 미국과 일본 중심에서 중국 위주로 급속히 재편될 조짐이 뚜렷하다. 2003년을 계기로 대중국 수출증가율이 대미국 수출증가율을 앞선 것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그중에서 갈수록 중국과의 무역불균형이 심해짐에 따라 중국으로부터 강화되고 있는 수입규제 압력을 어떻게 줄이느냐가 2004년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최대 과제다. 여러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으나 그동안 논의해 온 한국과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혹은 한ㆍ중ㆍ일 FTA)을 서두르는 것이 효과적인 정책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2004년에도 이들 국가의 경제정책을 사전에 충분히 읽고 대비책을 강구해 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