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학서 신세계 사장(57)의 목소리는 음의 높낮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차분하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치 산길 도로를 시속 60km로 달리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가 핸들을 잡고 있는 신세계는 고속으로 성장했다. 자동차 속도로 따지면 족히 100km는 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CEO로서 그를 스피드 마니아로 간주하면 곤란하다. 그의 경영스타일상 절대로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법이 없다. 다만 그는 하나만을 생각했고 중시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윤리경영이 그것이다. 확실히 그는 윤리경영의 신봉자다웠다. 1시간30분의 인터뷰 내내 윤리경영이라는 용어가 떠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신입사원 면접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 뭘 봅니까.”“윤리의식을 봅니다.”“어떤 직원들이 임원으로 승진합니까.”“윤리적으로 깔끔해야 합니다.”“경영판단의 첫째 기준은 뭡니까.”“윤리성입니다.”그가 99년 대표이사를 맡은 뒤 윤리경영을 앞세운 것은 일본 근무시절의 경험 때문이라고 밝혔다.“일본기업의 높은 윤리의식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윤리경영을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IMF를 겪으면서 윤리의식이 없는 기업은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게다가 유통업은 거의 모든 제조업체와 거래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윤리경영을 하면 우리 회사도 살뿐더러 윤리의식의 확산속도도 매우 빠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그는 99년 기업윤리강령을 채택했고, 국내 최초로 기업윤리실천사무국을 뒀으며, 2001년 ‘윤리대상’을 제정했다. 그가 말하는 윤리경영은 “단순하게 부정을 저지르지 말자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경영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정의한다. 아무튼 그를 성공한 CEO로 키운 비결의 8할은 윤리경영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나머지 2할은 뭘까. 그는 “오랫동안 재무분야에서 일해 온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재무파트에서 오래 일한 게 도움이 됐습니다. 유통업의 핵심 포인트는 누가 투자를 효율적으로 잘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CEO는 자산운용에 대한 마인드를 분명히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대표이사를 맡을 당시 신세계는 자산 회전율이 0.9회전에 불과했습니다. 목표를 글로벌 기업 수준인 2회전으로 정했습니다. 대기업들은 대개 1회전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1.6회전 정도 됩니다.”2003년은 그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지난 3월(납세의 날) 윤리경영의 공로를 인정받아 유통업체로는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3분기부터 경영실적에서 유통왕국 롯데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는 22년 만에 되찾은 1위 자리이다. 하지만 도전보다 수성이 더 힘든 법. 과연 앞으로도 1위 유지가 가능할까. 그는 “(경쟁사의) 추월이 힘들 것”이라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유통업은 입지산업이에요. 게다가 신상품의 히트로 단번에 시장지배력이 달라지는 제조업과는 성격이 다르지요. 이미 핵심 상권에 포진했거나 (부지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큰 사고만 없으면 (경쟁사가) 추월하기는 힘들 겁니다.”따라서 그의 관심은 할인점 사업에서 백화점 사업과 중국진출로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화점의 경우 신세계의 숙원사업이었던 본점 재개발이 오는 2005년 끝나고 죽전점이 문을 여는 2006년께는 ‘제2의 도약’이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중국진출은 다목적용 포석이다. 우선 아시아시장 석권의 시험대 역할을 한다. 그는 “이마트가 국내용인가, 국제용인가”라는 물음에 “그동안 외국업체로부터 국내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내수에 힘을 쏟았다”며 “그간의 노하우와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면 아시아시장 석권도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아울러 “구매부문에서 국제적인 아웃소싱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중국진출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신세계가 월마트, 까르푸 등 다국적 기업에 비해 구매능력이 약하다는 판단에 따라 중국진출로 이런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복안이다.요즘 그의 고민은 대다수 CEO들과 마찬가지로 내수시장 침체다. “기업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답답하다”고 토로한다. 유통업에 대한 인식이 일천하다는 것도 몹시 답답하다. 마치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서는 것이 지역 재래상인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한다. 어차피 국내기업이 아니라도 외국기업들의 공세를 피할 수 없을 테고, 재래시장 또한 재편돼야 하는데 너무 짧은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그는 굉장히 행복한 CEO다. 특히 “직원들에게 임금을 올려줄 때나 상여금을 지급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산행을 한다. 그날 일정을 정리하는 시간이자 근심걱정을 터는 시간이기도 하다.<약력 designtimesp=24538>1946년 경북 상주 출생, 70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72년 삼성전자 경리과 입사, 77년 삼성그룹 비서실 관리팀 과장, 82년 삼성물산 동경지사 관리부장, 88년 삼성전자 관리담당 이사, 96년 (주)신세계 경영지원실 전무, 98년 (주)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사장, 99년 (주)신세계 대표이사, 2001년 (주)신세계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