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가 인정한 ‘우리말 지킴이’

90년대 초반. 서울 사당동의 ‘무지개 송어횟집’의 원래 간판은 ‘무지개 송어회집’이었다. 어느날 처음 방문한 손님이 “‘회집’은 잘못된 표기로 ‘횟집’이 맞다”며 간판교체를 끈질기게 요구했다. 이 손님은 “간판을 교체하면 단골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발길을 끊을 것”이라며 은근히 겁을 줬다고 한다. 결국 식당 주인은 간판을 바꿨고, 이 손님은 약속대로 단골이 됐다.이 손님은 최근 한글학회로부터 2003년 ‘우리말글 지킴이’로 위촉된 김선덕 한국마사회 광주지점장(59)이다.앞서 소개한 일화는 이미 10여년 전 일이지만 그의 이런 태도는 요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신문을 읽다가 잘못된 표현이 나오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지적한다. 거리를 걷다가도 거리간판에 문제가 있으면 해당 행정관청에 바로 잡을 것을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지킴이’ 역할을 한다.그의 부지런함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마사회 홍보실에 근무했던 93년부터 사내보 <파발마 designtimesp=24250>와 사외보 <굽소리 designtimesp=24251>에 신문기사의 오류를 지적하는 코너를 만들었다. 중앙지는 물론 지방지까지 꼼꼼히 뒤져 사외보에 올리는 바람에 신문사 교열기자들이 바짝 긴장했을 정도다.가령 ‘묘령’은 스무 살 안팎의 젊은 여성을 일컫는 말임에도 일반적으로 약간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여자를 지칭할 때 쓰이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까지 400여개의 단어를 새로 찾아냈다. 그의 이런 노력이 알려지면서 한국교열기자협회에서 발간하는 <말과 글 designtimesp=24254>에 연재를 시작했다. 이는 ‘지역구’에서 ‘전국구’ 지킴이로 부상한 계기가 됐다.김지점장이 바쁜 직장생활 와중에 이처럼 우리말에 푹 빠져든 이유는 뭘까. 시작은 71년 대학을 졸업하고 경마방송 아나운서로 입사하면서부터다. “아나운서의 생명은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그때부터 국어사전을 옆에 끼고 다니면서 우리말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말글에 대한 애정이 차츰 솟아나 전문적인 영역으로 관심이 넓어졌다. 연구방식도 특별한 게 없었다. “그저 시간이 나는 대로 책을 봤을 뿐”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하나의 단어라도 국어사전 4질을 갖다놓고 서로 비교 검토했다고 한다.위촉장을 받은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받고나니 떨린다”는 김지점장은 그렇지만 “더욱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안다. 한글학회가 인정한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네년에는 그동안 찾아낸 오용사례를 모아 책도 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