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양식 면에서 봤을 때, 요즘 젊은 세대들은 ‘투명세대’다. 카페에서도 그들은 밀실에 숨는 대신 시선이 가장 집중되는 한복판 좌석부터 앞다퉈 앉는다. 누구의 눈에도 개의치 않고 행동하며 자신을 마음껏 드러낸다. 감추기보다 보여주기를 즐기는 세대들의 기호에 맞춰 어느덧 젊은 공간들은 어항처럼 실내를 행인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통유리 디자인이 휩쓴다. (중략) 1일 오후 6시 서울 종로2가 코아아트홀 부근 빌딩 2층 A카페. 안쪽에는 군데군데 빈자리들이 있는데도 밖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형 통유리창가 테이블 6개는 모두 찼다. 창가손님들 움직임 하나하나는 행인들에게 쇼윈도처럼 훤히 들여다보인다. 이 부근에 인접해 있는 4개 빌딩 2층은 약속이나 한 듯 통유리다. ‘투명한 대형 창’ 이것은 요즘 젊은이들 공간의 중요한 특징이다.”2000년 4월4일 한 종합일간지에 실린 ‘프리즘2000, 노출세대’라는 제하의 기사다. 불과 3년 전인데도 ‘어항 같은 통유리’라는 단어가 촌스럽게 들릴 정도로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널찍한 유리창을 통한 ‘전면개방’을 넘어서 아예 ‘밖으로,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뜨거운 8월의 햇살이 내리쬐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거리. 8월20일 오후 4시 무렵 대학정문 맞은편에 위치한 ‘커피빈 앤 티 리프’ 홍대점을 찾아가 보았다.점포를 둘러싼 네 면의 벽 중에서 두 면이 유리로 돼 있고, 그 유리벽면을 따라 밖으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적당히 복잡한 오후 시간 커피점은 반쯤 차서 10개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있었다. 실내는 에어컨을 틀어 서늘하고, 바깥은 30도를 웃도는 더위로 찌는 듯한데도 실내에 머무르는 손님과 바깥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정확히 절반씩이었다. 특히 바깥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100%가 여성이었다. 시원한 슬리브리스 티셔츠를 입고 느긋하게 기대앉아 있었다. 커피와 함께 담배를 즐기는 이들도 적잖았다.“왜 더운데 안에 있지 않고 바깥 자리에 앉았어요?” 이들 중 한 명인 대학생 이미혜씨(21)에게 말을 붙여봤다. 참 이상한 것을 다 묻는다는 표정이다. “그냥 바깥이 좋잖아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랑 차 구경하면 심심하지도 않고, 담배도 피울 수 있고.”밖에 앉아 있으면 행인을 구경하게 될 뿐만 아니라 반대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구경거리로 내놓게 되는 셈. 하지만 밖을 즐기는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곳은 날씨가 궂지만 않으면 실내보다 바깥 좌석이 항상 먼저 찬다.커피빈 코리아의 장윤정 과장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바깥 좌석을 ‘파티오’라고 부른다”고 했다. 파티오(patio)는 스페인어로 안뜰, 테라스라는 뜻이다. 장과장은 “모두 17개의 커피빈 점포 중 6군데에 파티오가 설치돼 있는데, 점포를 낼 때 입지여건이 허락하는 한 파티오를 설치할 수 있게 인테리어를 한다”면서 “파티오는 아예 다른 커피점과 우리 회사를 구별시켜 주는 컨셉으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이 회사의 명동 유투존점은 아예 실내 테이블이 없고 노천테이블만 있다.카페뿐만이 아니다. 청담동, 홍익대 일대 등 이국적이고 소비수준이 높은 동네에 위치한 레스토랑, 바, 호프집 등에서는 요즘 유럽의 노천카페를 연상시키는 이 같은 파티오나 야외 좌석이 부쩍 눈에 띈다.호텔들은 여름을 맞아 너나 할 것 없이 야외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앞 공터와 잠실 롯데호텔 파인가든 등에서는 저녁이면 맥주를 즐기고 있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야외에서 간단한 음료와 술을 즐길 수 있는 이 같은 이벤트는 10월까지만 운영된다. 롯데호텔 공진화씨는 “내놓는 메뉴가 호텔 판매가보다 50% 이상 저렴하기 때문에 호텔 투숙객뿐만 아니라 주변 샐러리맨들에게 인기가 있다”며 “도심의 명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야외바비큐 등도 인기가 높다.이국문화 수용가능 계층 늘어카페 레스토랑 인테리어 전문 디자인사무소 ‘펩’의 이승걸 사장(37)은 디자이너들이 권하기도 하고 업주들의 요청도 적잖아 최근 맡은 프로젝트 중 파티오를 설치하는 공사가 잦다고 말했다.이처럼 밖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청담동 압구정동 홍대 앞 등 소비수준이 높은 지역과 이국 문화를 쉽게 수용하는 계층 사이에 빠르게 퍼지고 있다.감추거나 안으로 들어가기보다 자신을 드러내며, 거리와 한데 어울려 드는데 익숙한 문화의 표현이다. 이사장은 “과거에는 식사하는 모습을 남이 보는 것을 꺼렸지만, 요즘은 먹는 것을 누가 보건 말건 의식하지 않거나 오픈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선을 즐긴다, 아니 오히려 무관심하다는 게 더 적당할 것이다”는 설명도 덧붙였다.그는 또 “굳이 유럽 노천카페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일본의 대표적 번화가인 하라주쿠 옆 오모테산도 등에서도 이런 문화가 널리 퍼져 있고, 무덥고 습한 싱가포르에서도 거리와 사람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면서 “요즘은 워낙 이국문화의 전파가 빠르고, 또 그런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계층도 늘어나다 보니 밖으로 나오는 게 추세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