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아시아 국가에 대한 견제가 심화됨에 따라 동북아의 중심국인 한국과 중국, 일본 간의 새로운 경제협력 방향이 요구되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모색될 것으로 보이나 바람직한 방향은 중국의 급부상에 따른 아시아 질서상의 변화와 한ㆍ중ㆍ일의 위상을 감안한 관계설정이 아닌가 생각한다.중국의 부상이 빨라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이 부상하면 할수록 동북아지역에 있어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의 갈등이 심해지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 속한 국가간의 협력,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 간의 협력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점이다.그동안 논의돼 온 동북아지역의 협력문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 돼 논의해 온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문제다. 다른 하나는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진전돼 온 통화스왑 체결, 아시아통화기금(AMF) 창설, 단일통화 도입 등의 금융협력 방안이다.민간 차원에서는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주도로 추진돼 온 동북아 비즈니스 협력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이 이런 움직임에 중심(Hub)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국정의 10대 과제로 동북아 협력 문제를 채택하면서 이 과제가 임기 내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주력해서 추진하고 있다.무엇보다 동북아지역의 협력 논의에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 중국의 WTO 가입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동북아지역에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중국처럼 배후시장 규모가 큰 국가들이 WTO에 가입하게 될 경우 우리나라처럼 소규모 개방국가가 가입하는 것보다 개방에 따른 경제적 효과(open effect)가 크게 나타난다.자연스럽게 국제금융시장에서도 중국의 부상이 갈수록 눈에 띈다. 물론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유태계 자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국제기채(起債)시장에서만은 화교계 자금이 제1선 자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이한 점은 화교계 자금은 유동성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선진 다국적 기업들이 대부분을 조달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런 추세는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동아시아의 경제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작용하고 있어 주목된다. 이미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마찰이 불거진 지 오래고, 일본과 중국 간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상태다.사실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은 아시아 경제중심축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보통 경제중심축은 세계 최대시장에서의 무역성과로 평가한다. 이미 2000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다.특히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일본이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있는 점이 향후 동북아지역의 협력 문제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변수다.한때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을 꿈꿨고 무역흑자국의 상징이었던 일본이 악순환 국면에 몰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일본시장 잠식과 일본 내 제조업 공동화 현상을 야기시키고 있는 일본기업들의 중국 이전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일본은 제조업 공동화와 함께 자본의 공동화 현상까지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따라서 일본은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중국이 경제여건에 맞게 위안화 가치를 절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지 않을 경우 일본은 자체적으로 엔화 가치를 대폭 절하하겠다는 입장을 잇달아 밝혔다. 실제로 연초 이후 엔저를 유도할 뜻을 계속 비춰왔다.이에 대해 중국은 자국 내 디플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기보다는 절하해야 한다고 일본의 요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이처럼 중국과 일본이 환율문제를 놓고 미묘하게 갈등을 빚는 시점에서 일본 시즈오카 재무상은 엔/달러 환율의 적정수준이 현 수준보다 약 30엔 정도가 높은 150~160엔이라는 발언을 잇달아 했다. 구로다 재무차관도 엔저를 용인하는 발언을 해 중국을 자극하고 있다.문제는 일본의 이런 엔저 정책은 인접국들에도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본이 엔저 정책을 추진해 경쟁력을 개선한다면 이는 자체적인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접국들의 경쟁력을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만약 이런 특성을 외면하고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엔저 정책을 계속해서 고집할 경우 인접국과의 통화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우리나라는 어떤가.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놓여 있다. 오히려 일본과 비슷한 입장에 처해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인지 모른다. 제3국 시장이 중국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고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중국진출을 서두르고 있어 조만간 산업공동화 문제가 심각한 경제현안으로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보통 이런 경우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크게 달라진다. 만약 표면화되기 시작한 일본과 중국 간의 갈등구조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일본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따라서 중국의 부상에 따라 한국, 일본, 중국이 동반자적 관계에서 종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경제협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이들 3국간에 놓여 있는 통상현안과 그동안 논의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의 협력과제도 양국의 이해관계를 떠나 대승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한국과 일본, 중국이 동반자적인 관계에서 동북아 경제협력 시대를 열어야 갈수록 구체화되고 있는 유럽경제권과 미주경제권, 동아시아경제권 간의 3대 광역경제권 체제에 적응하면서 중국과 일본 간의 아시아 주도권 싸움과 중국의 위안화 절상문제를 놓고 벌이는 통화전쟁에서 한국경제의 안정성을 보장받는 길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