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준의 고물가국 일본에서 ‘물전쟁’이 빅이슈로 급부상했다. 소비량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미네랄워터(먹는샘물)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업체간의 가격파괴 싸움이 화제의 핵심이다.2ℓ들이 미네랄워터 1병의 가격은 대형 슈퍼마켓을 기준으로 할 때 대략 130엔 안팎. 판매장소에 따라 값이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기획상품으로 나온 것이나 특별히 저가판매에 주력하는 업체의 미네랄워터는 100엔 이하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일반적으로 병당 200엔 정도이었던 90년대 초반에 비하면 물값도 디플레이션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셈이다.음료업계 전문가들은 그러나 미네랄워터의 가격파괴 싸움이 국지전 양상을 보여왔던 종전과 달리 앞으로는 대격돌로 번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들이 물전쟁의 전선 확대를 주장하는 근거는 업체들의 가격 및 생산 전략의 변화다.일본 미네랄워터시장에서 약 21%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97년부터 톱메이커 자리를 독주해 온 산토리는 최근 간판상품인 ‘남알프스 천연수’의 브랜드네임에서 ‘남알프스’라는 지명을 지워버렸다.야마나시현의 후지산 산록공장에서만 생산했던 과거와 달리 6월부터는 규슈의 구마모토현 공장에서도 동일 브랜드의 미네랄워터를 제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엉뚱한 공장에서 만든 미네랄워터에 아무런 관련이 없는 지명을 갖다붙였다는 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산토리의 대응전략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산토리의 ‘2공장 1제품’ 전략이 2위 업체인 일본 코카콜라의 추격에 맞불을 놓기 위한 선전포고로 해석하고 있다. 지난 99년부터 후발업체로 시장에 뛰어든 코카콜라는 3개 지역의 채수지에서 뽑아낸 미네랄워터를 채수지 인접 지역에 집중 투입하면서 저가전략으로 점유율을 파죽지세로 높여왔다. 판매가의 3분의 1을 수송비가 차지하는 미네랄워터의 가격구조에 비춰볼 때 운반거리가 짧을수록 값을 낮출 여지가 커지는 계산법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었다.한발 더 나가 이 회사는 지난 5월 돗토리현에도 공장을 세우고 생산능력을 확장, 서일본지역 시장에 저가제품을 대량투입하기 시작했다.산토리가 규슈 공장 가동을 계기로 브랜드네임에서 남알프스라는 지명을 뺀 것은 일본 코카콜라의 이 같은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 음료업계의 시각이다. 2위 업체의 추격과 저가공세에 쐐기를 박기 위한 맞대응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이에 따라 400여개 업체가 난립해 있는 일본 미네랄워터시장은 막강한 자금력과 광역 영업망을 갖춘 상위 2개사의 격돌이 확대되면서 가격하락과 함께 판도재편 등 상당한 변화가 밀어닥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먹는샘물시장, 10년 사이 3배 성장업계 관계자들은 상위 2개사와의 충돌을 피해 이미지와 품질 특화에 주력하는 미네랄워터 생산업체가 크게 늘 것으로 보고 있다. 영업망과 시설확장에 돈을 들이느니 상위 2개사의 입김이 덜한 지역을 집중 공략해 시장기반을 탄탄히 굳히겠다는 업체도 적잖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시장점유율 3위 업체인 하우스식품은 벌써부터 “본업은 어디까지나 식품”이라고 밝혀 미네랄워터에는 대규모 투자를 선뜻 단행하기가 쉽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미네랄워터는 지난해에만 일본산, 외국산을 모두 합쳐 약 1,100억엔어치가 팔린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양으로 치면 약 140만㎘에 육박하는 것이며 일본 국민 1인당 11ℓ를 마셨다는 계산이 나온다.3조3,000억엔대의 전체 청량음료시장 규모에 비하면 미네랄워터는 비중이 높은 편이 못된다. 하지만 10년 전에 비해 시장이 약 3배로 확대됐을 만큼 빠른 신장세를 타고 있는데다 1인당 소비량이 미국, 유럽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점 등은 시장싸움이 아직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