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클랜드국제공항에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지난 1년간 이곳을 찾은 한국관광객은 무려 10만명. 매일 같이대형 점보 비행기를 채운 한국인들이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고 선전되는 이 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여행대국이라는 일본관광객수가14만명정도인데 국민수에서 일본의 40%정도 밖에 안되는 우리나라관광객이 이 정도라니 키위(뉴질랜드사람)들도 놀랄만한 일이다.관광객증가율 넘버 원, 1인당 씀씀이 하루 23만원정도로 넘버 원.이래저래 코리안들은 키위들에게 경제적인 면에서는 무시 못할 민족으로 커 나가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처럼 부자국민으로 제법 대접을 받으며 며칠간을 머물며떠나가는 관광객과는 달리 이곳에서 영원히 안주하겠다고 가족의손을 이끌고 찾아 온 배달의 자손들. 한국문화와 뉴질랜드문화의틈새에서 코질랜더(Korean과 Newzealander의 합성어)라는 한민족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는 이들의 삶은 어디로 흐르고 있는가.지난 92년 뉴질랜드가 이민문호를 크게 개방하기 전까지 한국교민의 수는 불과 1천여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재는 1만5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한해만도 5천명이 넘는 한국민들이다시말해 매일 5가구 정도가 뉴질랜드로 이주해 온 셈이다.◆ 공항에서 만난 사람 이민운명 결정자신의 고향산천과 애증이 교차했던 가까운 사람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신천지를 찾아 온 이들은 가족을 태운 비행기가 오클랜드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활주로로 내려서는 순간부터 두려움과 설렘이 시작된다. 비행기 창밖으로 비쳐지는 뉴질랜드. 온 국토가 초록색으로만 보이고 숲 속에 점점이 박혀 있는 집들, 바다에 촘촘히 떠 있는 형형색색의 요트들 그리고 이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연출해내는 그림과 같은 자연풍광에 내심 감탄하면서 대부분의 가장들은『이민 잘 왔지』하며 이민을 불안해 하는 가족들을 위안시키는 일부터 새삶의 첫 발을 내디딘다.흔히 이민자의 운명은 「공항에서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공항에서 자신들의 가족을 맞아 안내 해주는 사람들에의해 그들의 생활방향이 좌우된다는 뜻이다. 고국을 떠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정보를 수집하고 뉴질랜드와 연관이 있다는 사람이라면 쫓아가 귀동냥하며 사전 지식을 갖고왔지만 일단 공항을 빠져 나오는 순간부터 자신의 지식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족들의 손에 잔뜩 들려진이민짐 그리고 방향조차 분간되지 않는 상황에서 차편이 없이는 어떻게 움직여야 될지 모르는 현실 앞에 이들은 안내자들에게 일단그의 운명을 내맡기게 된다. 뉴질랜드에 특히 가까운 친지가 있으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민알선 업체직원, 교회의 봉사자들이 모텔로 안내해 여장을 풀게 한다.숙소를 정한 뒤 바로 해야하는 일이 자동차를 구입하는 일이다. 대중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은 이곳에서 자동차는 제1의 필수품이다.차를 구입하고 나서는 집을 구하기 시작한다. 집은 셋집(렌트)을찾거나 구입해야 한다. 예전에는 이민자들이 오면 렌트집을 많이찾았으나 요즘은 뉴질랜드 경기활성화와 신규이민자들의 급증으로렌트값이 많이 올라 대부분 교민들이 급한 마음에 집을 덥석 사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이민자들이 이 곳의 집을 보면 일단은 홀딱 반하게 마련이다. 보통 대지는 2백~3백평정도로 집주위는 온통 잔디밭과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한 정원들로 꾸며져 있고 어떤 집은 바다가 보이는 시원한 전망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숲속에 싸여 있어 새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호화주택들이 신기함을 듬뿍 선사하고 있다. 가격도 평균적으로 1억~2억원정도. 그나마 경우에 따라서는 집가격의 90%까지는 은행에서 순순히 대출(현재 대출이자는 연 10.5%선)해주기때문에 집구입 자체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은행 대출은 최장 25년까지 가능해 약간의 선금을 내고 집세정도면 대출금을 상환해 나갈수 있다.◆ 제일 먼저 할일은‘자동차 구입’그리고 이곳에서 필요한 가전제품 등 살림살이를 마련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입학시키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시간을 보내면서정착기반을 마련한다. 이 와중에 낯선나라의 낯선 제도,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답답함 등을 겪으면서 비로소 지친 몸과 마음들이휴식을 맞게 된다.이민자들이 일단 이곳에 오면 천국의 맛을 느끼는 것이 있다. 말그대로 골프의 천국이요 낚시의 천국이요 여행의 파라다이스다. 집가까이에 골프장들이 산재해 있어 5천원에서 만원정도만 주면 마음껏18홀을 누비며 골프채를 휘두를 수가 있다. 평일날 시내를 벗어나1시간정도 교외로 나가면 골프장에는 아무도 없어 교민들 사이에서는 대통령골프(경호를 위해 앞뒤 플레이어가 없는 경우)를 친다며유쾌한 시간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바다낚시, 그것도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다. 오클랜드주변은 온통바다로 둘러 싸여 있다. 때로는 집에서 걸어서 아니면 차로 잠깐만가면 망망 대해에서 팔뚝만한 고기를 끌어 올릴 수가 있다. 낚시가제법 된다고 알려진 낚시 포인트에 가면 여지없이 한국교민들을 만나게 된다.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싸고 때로는 초고추장을 만들어 가는 낚시피크닉.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소라를 따고 조개껍질을 줍고 부인들은게장을 만들어 먹겠다며 게망을 바닷가에 늘어뜨려 놓고 담소하는모습은 단편적으로는 파라다이스의 한장면이다. 이같은 과정은 각박한 한국사회를 떠나 온 신참이민자들에게 고참이민자들이 필수적으로 소개하는 생활의 한 단면이다. 더구나 비가 내려 음산한 겨울날씨를 제외하고 대부분 온화한 날씨와 한국의 가을과 같은 청량한하늘, 맑은 공기, 가도가도 끝이 없는 푸르름, 시원시원하게 뚫린도로, 이것들은 한국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이 곳만의 소중한자산이다.◆ 1년정도 놀아야 예의이민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속에서 갖게되는 가족들과의 단란함. 그러나 이런 느낌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제부터는 생활을 해야되기때문이다. 이곳에서는 「1년정도는 놀아야 이민선배들에게 예의다」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고 있다. 이는 많은 교민들이 직업을구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한량」 「백수협회회원」이라고 자조하는 교민들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나라에서 취득한 전문 자격증들을 인정받지 못하고 영어가 불완전하거나 연령이 주로 30대 후반에서 50대까지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어쩌다 키위회사에 취직하는 경우는 교민들을 주고객으로 하는 은행 법률회사 보험회사 항공회사 정도에 국한되고 있다. 이외에는대부분 자영업이나 개인이 직접 뛰는 용역업체 등을 영위하고 있지만 주고객이 한정된 한국교민이다 보니 벌이도 크게 좋은 편은 아니다.한국에서는 나름대로 최고의 학력과 직장경력을 지니며 자기분야에서는 전문가였다고 자부하던 그들이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기회의나라, 천국과 같은 나라라고 찾아와서는 영어학교에 다니거나 수산업(낚시) 및 농장(집에 텃밭을 만들어 한국채소를 키우거나 정원을가꾸는 일) 또는 체력단련(골프)으로만 소일하는 이민자들의 마음은 결코 편하지만은 않다.그들의 표현대로 언젠가는 명함을 박아 돌리는 날을 기다리지만 결코 쉬운 일처럼 생각되지않아 속앓이만 더 할 뿐이다. 이런 연유로젊은 세대들은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 가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그리 흔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비록 교민들 가정의 가계부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활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천혜의 자연환경, 스트레스 작은 사회, 다양한 취미활동, 자녀들의 교육, 쫓기지 않는 생활 등 선진문화의 매력을 맛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