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 ‘50% 이상 핫머니 성격 강해’

해묵은 투기자금 핫머니 논쟁이 또다시 일고 있다. 그것도 투기자금을 방지해야 할 책임이 있는 주무부서간에 입장차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현재 한국은행은 지난 5월 말 이후 약 6조원에 달하는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 가운데 투기자금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견해다. 그 근거로 △국제유동성 증가에 따른 주식투자자금의 증가 △미국과 아시아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달러선물 매도가 늘지 않는 점 등을 들고 있다.반면 재경부 관계자는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의 상당 규모가 단기차익을 노리는 핫머니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이다. 넓게 해석해서 50% 이상이 핫머니라는 견해다.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다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투자자금에 대한 위험회피(hedge)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을 증거로 꼽고 있다.국내 증권가에서는 재경부의 입장에 동조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비단 이 같은 논쟁은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현상은 아니다. 최근 들어 외국인 자금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는 일본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투기자금 논쟁이 일고 있다.일반적으로 외국인 자금이 ‘투기자금이냐 투자자금이냐’는 두 가지 기준에 의해 판단된다. 하나는 투자운용기간을 기준으로 1년 미만일 때는 투기자금, 1년 이상일 때는 투자자금으로 분류해 외환위기 당시 우리에게 익숙했던 개념이다. 다른 하나는 투자원금 대비 총투자가능금액 비율인 레버리지(leverage)가 5배 이내일 때는 투자자금, 그 이상일 때는 투기자금으로 분류한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후자의 개념이 더 보편적이다.누구 손을 들어줘야 하나.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제간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펀드들에서 이라크전쟁 이후 세계증시가 살아나면서 새롭게 감지되고 있는 변화를 읽어야 한다.가장 먼저 투자위험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이미 글로벌 펀드들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을 적극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그동안 기피해 왔던 국가 혹은 지역에 대한 투자규모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투자원금에 대비한 총투자가능금액인 레버리지(leverage) 비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점도 새로운 변화다. 최근 들어 다시 글로벌 펀드들의 투기성향이 강해지고 있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 투자패턴이다.대표적으로 헤지펀드의 경우 아시아 외환위기와 러시아 채무불이행(모라토리움) 당시 한때 20배까지 올라가던 레버리지 비율이 2000년 하반기 이후 세계경기의 침체과정에서 5배 이하로 떨어졌다가 최근 들어서는 다시 10배 이상으로 회복되고 있다.종전과 달리 헤지펀드 이외의 다른 글로벌 펀드들의 레버리지 비율도 함께 올라가고 있는 것은 그만큼 투기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중장기 펀드로 평가돼 왔던 뮤추얼펀드들도 최근 들어서는 운용기간이 단기화되면서 레버리지 비율이 올라가고 있다.투자 대상과의 관계도 ‘수동적’에서 ‘능동적’ 지위로 바뀌고 이런 경향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종전에는 투자해 놓고 수익을 기다렸으나 최근에는 투자이익이 기대되는 투자 대상을 매입해 적극적으로 수익을 창출해 나가고 있다.자연스럽게 글로벌 펀드들의 벌처펀드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이제는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에 속한 회생가능한 기업을 매수해 예정된 수순에 따라 구조조정과 개혁을 통해 기업가치를 올린 뒤 다시 매각하는 투자패턴이 보편화된 상태다.동시에 인수합병(M&A)시 경영권 취득 여부에 따라 구분되는 우호적 M&A와 적대적 M&A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요즘 들어 이뤄지는 M&A는 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지분을 늘려나가는 적대적 M&A의 성격이 뚜렷하다.마지막으로 개인들의 자금이 펀드화되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글로벌 펀드들의 영향력이 이제는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그만큼 개인들이 모든 금융활동에 있어서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한마디로 글로벌 펀드들은 금융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속성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속성을 감안하면 투기자금과 투자자금의 구별은 이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금융수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떠나간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다.앞으로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이 계속해서 국내 증권시장에 유입될 것인가 하는 점도 이런 수익성 기준을 충족시켜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국내 경기회복과 기업 실적 개선과 같은 증시여건(fundamentals) 면에서는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이 추가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높은 상황은 아니다.반면 이라크전쟁 이후 외국인 자금유입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해 왔던 미국증시와 미국경기 회복요인에 따른 외국인 자금의 추가 유입 여지는 비교적 높은 상황이다. 갈수록 미국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미국주가도 서머랠리 이후 대세상승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더욱이 지금은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이다. 이때는 시장참여자들이 여름휴가를 떠나면서 시장이 엷어지는 것이 관례다. 과거의 경우 외국인 자금들은 여름휴가철을 틈타 투자이익을 실현하고 떠나는 사례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개도국 시장에서 이 같은 현상이 심하게 나타났다.따라서 한국은행과 재경부가 최근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의 성격을 놓고 벌이는 논쟁은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오히려 투자자와 국민들에게는 증시의 안정을 책임져야 할 두 주무부서가 이런 논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책의 핵심현안에서 벗어난 너무 한가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까지 들게 한다.앞으로 정책당국은 이미 들어왔거나 신규로 들어올 외국인 자금들의 성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극단적으로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 = 투기자금’이라는 인식하에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조기경보시스템은 갖춰 놓았는지, 이미 갖춰 놓았으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그 실효성을 점검해 놓아야 한다.투자자 입장에서도 언제든지 외국인 자금이 이탈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특히 지금은 여름휴가철이라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