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4년 8월 금융계엔 「사상 최악의 자금대란」이 일어났다. 하루짜리 콜금리는 법정최고금리인 연25%까지 치솟았다. 한 푼이 귀했던 은행들은 연17~18%대의 고금리에 양도성예금증서(CD)를 발행했다. 장기신용은행은 자금대란의 와중에서 최대 수혜자로 기록돼 있다. 사연은 이렇다.장기신용은행은 효율적인 자금관리로 자금에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1천억여원대의 CD를 연16%대에 사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CD수익률이 다시 하락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예측은 적중했다.자금대란이 끝나자 CD수익률은 연12%대로 하락했다. 장기신용은행은 보름이 채 안돼 4%포인트의 차액을 챙길수 있었다.이처럼 장기신용은행이 「신화」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운이 좋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바탕엔 과학적인 금리예측과 자금조달및 운용계획능력등이 깔려있음은 물론이었다. 이른바 「리스크관리」를 조기에 도입, 체계화하고 있던 게 효력을 발휘했던 것이다.이제 리스크관리는 모든 은행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다. 지난달20일부터는 제3단계 금리자유화가 완결돼 요구불예금을 제외한 대부분 여 수신금리가 자유화됐다. 12월1일부터는 하루 환율변동폭도상하 1.5%에서 2.25%로 커졌다. 원화자금 외화자금 유가증권관리여신기업체관리등 리스크관리능력이 은행사활을 결정짓는 관건이됐다. 그러나 국내은행들의 리스크관리는 아직 주먹구구식이다. 담당자들의 「감」에 의존하는 은행이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몇몇은행은 나름대로의 고유한 리스크관리방식을 정착시키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최근들어 수위은행으로 발돋움한 조흥은행과 부실여신 최다은행에서 최소은행으로 변신한 상업은행이 대표적이다.조흥은행은 지난 91년 은행권에선 처음으로 리스크관리의 핵심인자산부채종합관리(ALM)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후 ▶원화계정ALM시스템(92년9월)▶외화계정 ALM시스템(95년1월)▶경영자정보 ALM시스템(95년6월)▶신탁계정 ALM시스템(95년8월)을 차례로 완성했다. 은행이 갖고 있는 모든 자산과 부채를 만기별 이율별 금액별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따라 시장금리나 환율의 변동에 따른 손익변화를 금방 알수 있게 됐다. 조흥은행이 매일 아침 자금조달및 운용전략을 금방 마련할수 있는 것도 선진적인 ALM시스템의 자료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노력은 은행수지의 호조로 나타나고 있다. 조흥은행은 올들어지난 9월말까지 3천6백10억원의 업무이익을 냈다. 은행중 가장 많은 수준이다.상업은행은 ALM시스템구축보다는 여신관리가 돋보인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상업은행은 지난 93년 1조여원을 빌려주고 있던 (주)한양이 부실화되면서 부실여신이 무려 7천6백3억원(93년말)으로 급증했다. 다른 은행의 배가 넘는 규모였다. 그러나 지난 6월말에는5분의 1 수준인 1천5백25억원으로 감축됐다. 선발은행중에선 가장적은 수준이다. 상업은행이 이처럼 부실여신이 가장 많은 은행에서가장 적은 은행으로 탈바꿈할수 있었던 것은 철저한 리스크관리덕분이다. 여신심사표를 체계화 과학화하는데 성공했다. 「기업건전성판단표」를 기준으로 부실여신발생을 조기에 차단했다. 부실여신의 조기회수에도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가 바로 부실여신의 대폭 감축이다. 물론 국내은행들의 리스크관리엔 한계가 있는게 사실이다.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걸 알고 있어도 이를 헷지(회피)할 수단이 마땅치않다. 그렇다해도 앞으로 리스크관리가 은행수지를 좌우할 바로미터로 떠오른건 분명하다. 금융자율화와 개방화가 진전되고 은행간합병이 임박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