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전문유통업체간의 PC유통시장 쟁탈전.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 비유되는 이 전쟁은 골리앗편으로 전세가 기울고 말았다. 올해 가격파괴, 무료 애프터서비스(A/S) 등으로 PC업계의 지각변동을 주도했던 중소 유통업체가 하나둘씩 대기업에 합병되고있다. 중소업체가 일으킨 바람은 그야말로 갑자기 세차게 불다가곧 그치는 「돌풍」격이라고나 할까.대표적인 중견 컴퓨터 유통업체인 소프트타운이 지난 8월 해태전자에 인수된데 이어 올해 돌풍의 장본인인 세진컴퓨터랜드마저 11월말 대우통신에 넘어감으로써 PC시장은 대기업들간의 치열한 경쟁터로 변한 것이다. 물론 소프트라인과 한국소프트유통센터 등 몇몇중소 유통업체가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이들 업체도 PC유통시장진출을 꿈꾸는 대기업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 언제 어느 기업에 인수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무서운 아이」 세진도 대우에 함몰지난해까지만해도 컴퓨터시장은 단순했다. 선발 PC제조업체로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삼성 삼보 LG 등 대기업의 탄탄한 대리점망과용산으로 대변되는 조립상가로 크게 양분돼 있었던 것. 컴퓨터시장에 변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올초부터다. 소프트웨어를 주로 판매하던 소프트라인과 소프트타운이 회원제 컴퓨터 가격할인매장을 선보이면서 변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이어 부산과 대구 등을 중심으로 PC를 판매하던 세진이 서울에 입성하면서 컴퓨터전문유통업체들이 본격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컴퓨터전문 유통업체가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대기업의 대리점과 조립상가로 대별되던 기존의 PC시장 틈새를 잘 공략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대리점은 A/S가 우수한 대신 가격이 비싸고 한 업체의 제품밖에 없어 여러 종류를 비교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조립상가의 경우 가격이 싼 대신 A/S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허점을가지고 있다. 컴퓨터 전문 유통업체는 양쪽의 장점 즉 저렴한 가격과 믿을 수 있는 A/S, 다양한 제품구색 등을 모두 수용, 소비자의요구를 만족시켰던 것이다.승승장구하던 중소 유통업체들이 대기업에 인수된다는 합병설과 함께 실제로 하나둘씩 대기업과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은 자금문제가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가 생존의 열쇠로 떠올랐다.중소 유통업체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데는 전체 PC시장의 45%를 점하고 있는 삼성 삼보 LG 등 빅3의 견제도 한몫 했다. 자사 대리점외의 다른 매장에는 물건을 대주지 않은 것은 물론 구형컴퓨터에 대한 보상판매와 12개월 신용판매, 가격인하 등으로 소비자의 발길이전문 유통매장으로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았던 것이다.이제 PC시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싸움및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파워게임이 혼재된 상태에서 제조업 대 유통업의 힘겨루기로 단일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제조업 vs 유통업 힘겨루기특히 소프트타운의 지분을 51% 사들인 해태전자는 앞으로 3년간1천억원을 들여 전국에 5백여개의 유통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발표, PC시장에 대한 공략을 본격화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업체의PC를 확보, 한 업체의 제품만 다루는 삼성 삼보 등 대기업의 대리점과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다. 이에따라 한국IBM 한국HP 한국IPC 등국내 대리점망이 약한 외국 업체와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한국에이서와의 총판 계약도 서두르고 있다. 해태전자는 이들 외산제품을위주로 확실한 유통 영역을 확보하면 현재 자체 대리점망을 믿고제품 공급을 꺼리는 대기업 PC제조업체들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엔 제조업체들의 대리점망보다 전문 유통업체가 살아남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대우통신은 세진 인수후의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PC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제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우통신과 함께 대리점망이 미흡한 현대전자가 어떻게 나올 지도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외국 컴퓨터업체들처럼 소프트타운 등의 전문 유통업체와 총판 계약을 맺어 판로를 확보하는데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업계관계자들은 점치고 있다.지난 10월 코리아데이터시스템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도고그룹에 지분을 매각한 토피아의 경우 대도시를 중심으로 PC유통 편의점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유통망 구축을 선언하고 나섰다. 독자노선을걷고있는 소프트라인은 「컴퓨터천국」이라는 직영 양판점을 확장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기득권 세력인 삼성과 LG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삼성은 전국 24개물류센터를 통해 1일 배송체계를 확립하고 대리점망을 7백50여개에서 9백여개로 확충할 계획이다. 또 컴퓨터 무료학원도 50개에서88개로 늘리고 1일 A/S 체제를 도입, 서비스를 강화할 방침이다.LG는 컴퓨터 양판점 등장에 맞서 한 장소에서 PC구입, 교육 A/S 등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대형 종합매장인 「하이프라자」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가는 한편 전국 1천6백여개 LG가전대리점에서도PC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업체의 이러한 움직임은 PC시장이 「성능경쟁」과 「가격경쟁」을거쳐 본격적인 「유통경쟁」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