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30일. 일본의 대표적 지방은행인 효고은행이 파산했다.2차대전이후 일본은행법에 의한 첫번째 파산이었다. 효고은행을 파산이라는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부실채권. 파산당시 효고은행의 부실채권은 7천1백억엔으로 당시 자금액 2조6천5백억엔의26.8%에 달했다. 부실채권이란 염증이 악성종양으로 악화되면서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라는 신화를 무참히 깨 버렸다.우리나라에도 「금융기관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좀처럼 깨질 것같지 않은 신화가 있다. 지난 3월 충북투자금융이자기자본금(1백88억원)의 5배가 넘는 1천억원이상의 부실채권을 안고도 망하지 않았던 게 대표적인 예다. 제3자에게 팔려고 내놔도사는 사람이 없어 신용관리기금의 「보호감호」에 들어갔다. 소생가능성이 거의 없어 파산돼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안정과예금자보호를 내세운 정상화 논리가 앞세워졌다. 아직은 금융기관의 불사조신화가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그러나 이 신화가 얼마나 더 버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한결같이 부실채권 누증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의 부실채권은 지난 6월말현재 2조7천3백억원으로 지난해말보다 8천75억원(41.9%)이나 급증했다. 이에따라 부실채권이 총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0.95%에서 1.2%로 높아졌다.은행의 부실비율은 지난93년 1.8%까지 올라간 후 작년에는 1%를 밑돌았다. 손실로 인정, 상각해 떨군 부실채권이 지난해 1조7천억원으로 93년(6천3백억원)의 2.7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은행 실제 부실채권 공표된 것의 10배문제는 이같은 부실채권이 실제보다 크게 과소평가됐다는 점이다.상업 제일 등 6대은행의 실제부실채권은 지난6월말 현재10조7천1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표된 부실채권1조9천7백억원보다 무려 5.4배나 많은 수준이다. 이에따라 평균부실비율도 공표된 1.1%보다 7.7%포인트 높은 8.8%나 됐다. 1천억원을 대출했을 경우 88억원에 대해선 이자를 한푼도 받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최악의 경우 88억원 모두를 떼일 위험도 있다.은행별로는 상업은행의 실제부실채권이 2조9백억원으로 공표된 금액(1천5백억원)보다 무려 13배나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비율도 0.8%에서 11.2%로 높아졌다. 제일은행의 실제 부실채권도 공표된 4천8백억원보다 4배나 많은 2조8백억원이나 됐다. 실제부실채권을 기준으로 한 부실비율은 △서울 9.3% △제일 8.3% △조흥 7.8%△외환 7.0% △한일 5.8%등인 것으로 밝혀졌다. 드러난 부실채권은 감춰진 것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우리나라의 시중은행에 해당되는 일본 도시은행의 경우 공표된 부실비율은 3.25%로 우리나라 은행보다 2.05%포인트나 높았다. 그러나 실제부실비율은 8.4%에 머물러 한국 은행보다 오히려 낮았다.우리나라 은행들이 일본 은행에 비해 속으로 더 곪아 있다는 얘기다.◆ 은행 신용도 · 수익성 크게 하락부실채권 규모가 이같이 차이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와 은행감독원이 발표하는 부실채권 범위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은감원은6개월이상 원리금상환이 연체된 대출금중 담보가 없어 회수가 의문시되거나 손실이 날 것으로 추정되는 것만 부실채권으로 공표한다.수년동안 이자는 물론 원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는데도 담보만 있으면 언젠가는 회수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부실채권으로 보지 않는다. 국제적으로는 6개월이상 원리금 상환이 연체되고 있는자산은 모두 부실채권으로 간주한다. 이자를 받지 못하는 무수익자산은 은행경영의 건전성을 해친다고 보기 때문이다.현재 사실상 부실채권임에도 불구하고 부실채권에 포함되지 않는것은 법정관리중인 회사에 대한 대출이 대표적이다. 또 산업합리화업체로 지정된 회사에 대한 대출도 부실채권에 들어가지 않는다.정부가 부실화된 기업을 도태시키지 못한 「정부 실패」의 책임을은행에 떠넘기는 대가로 은행의 부실채권 축소를 눈감아 주고 있는셈이다.부실채권은 금융기관의 신용도와 수익을 떨어뜨리는 직접적 요인이된다.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S&P사가 최근 신한 제일 한일등 3개은행의 신용등급을 낮게 평가한 것도 국내은행의 과다한 부실채권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은행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이자를 더 많이 내야 한다. 수익성 하락과 직결되는 것이다. 국내은행의 자산수익률(ROA)은 지난해 0.42%로93년보다 0.03%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미국은행의 0.72%는 물론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1.32%를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국내은행은 6.09%에 머물렀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의10.96%의 절반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들어 건설경기부진과 중소기업 부도가 잇따르면서 부실채권이 엄청 늘어나고 있어서다. 특히 노씨 비자금 파동과 관련된 대우 선경 동아 한보 대림산업 동방유량등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실채권 양산이란부산물을 뱉어놓을 가능성이 높다.부실채권은 경영안정성을 해치고 심할 경우에는 죽음(파산)까지 몰고오는 어머어마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올들어 파산한 일본의 기즈 상호신용금고와 효고은행도 힘에 부치는 부실채권이사인(死因)이었다. 충북투자금융 충북상호신용금고등 국내 금융기관들도 올들어 죽음의 문턱에 이른 곳이 많았다. 아직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파산을 모면하긴 했으나 앞으로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스스로 고치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식으로 상황이 180도바뀔 것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기관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점점 더 보편화되고 있어서이다. 몸무게를 줄여 상황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부실채권을 적정수준으로 관리하는게생존의 조건이 됐다.부실채권에 흔들리는 한국의 금융기관. 실제로 존재하는 부실채권규모를 은폐하려하기 보다 떳떳이 밝히고 줄여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금융기관 부실채권 현황부실채권에 시달리고 있는 곳은 은행뿐만이 아니다. 투자금융 상호신용금고 보험등 제2금융권도 부실채권이란 멍에를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지역중소기업이 주로 이용하는 신용금고는 지난6월말현재 9천5백37억원의 부실채권을 갖고 있다(재경원은 이중6개월이상 원리금이 연체되고 있는 대출금중 회수의문과 추정손실에 해당되는 2천1백94억원만 부실채권이라고 수정발표했다). 이는신용금고 자기자본 1조9천1백78억원의 50%에 달하는 규모다. 충북동보(충남) 중앙(대전) 조흥(부산) 제일(광주) 삼원(경북) 상창(충북) 한신(경북) 동양(청주)등 9개 금고는 자본금을 초과하는 부실대출로 경영관리나 경영지도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투자금융의 부실채권도 6천7백36억원(95년7월말)으로 지난해 7월말보다 2천59억원 늘어났다. 종합금융도 같은기간 부실채권을 1천3백22억원에서 2천2백23억원으로 늘렸다. 투금 종금 신용금고의 부실채권이 이같이 급증한 것은 극심한 경기양극화로 이들이 거래하는건설업체나 중소기업의 부도가 올들어 크게 증가한데 따른 것이다.신용카드회사의 부실채권은 지난 6월말현재 6천66억원으로 작년6월말보다 1천8백71억원이나 늘어났다.이중 은행계 카드의 부실채권은 2천6백40억원으로 작년말보다84.2%나 늘어 은행부실채권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보험8백27억원(7월말) △신용협동조합 5백49억원(8월말) △농협 7백2억원(6월말) △수협 1백83억원(6월말) △축협 1백40억원(7월말) 등의부실채권도 적지 않았다. 한편 투자신탁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평가손실액은 지난 8월말현재 1조1천9백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