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전대미문의 파문을 몰고온 노씨비자금사건은 초스피드로수사가 진행됐다. 30대그룹총수들이 거의 예외없이 검찰에 소환당한데 이어 노씨를 구속하기 까지 한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아무리 통치권의 의지에 따라 수사속도가 빨라질 수 있는 정치적사건이라 해도 평소에 준비를 해왔거나 검찰이외의 조사기관이 동원되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정치권에서는 전직대통령의 비자금관련 조사가 금융실명제실시나 동화은행파문당시 등 두세차례에 걸쳐 깊이있게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과연 검찰수사를 돕거나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곳은 어떤 기관일까.가장 먼저 꼽게 되는 곳은 은행감독원(원장 김용진)이다. 통상적인자금거래는 물론 검은돈의 세탁과정이 금융기관, 특히 은행을 통해서 이뤄질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모든 은행들은 은감원의 손아귀를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규정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은감원의 문책경고 한 번이면 각은행의 임원들은 은행장이 될 수 없을정도다.◆ 정치사건 등 검찰수사 기초자료 제공이번 비자금과 관련해 노씨비리의 4인방중 한 사람으로 금융계대부란 「악명」을 얻었던 이원조씨도 은행들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은감원장 출신이다.각은행 및 기업들의 금융거래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조사하는 곳은은감원중에서도 1국에서 6국까지로 나눠지는 검사국이다.각국을 들여다보면 이렇다.검사1국(국장 김상훈).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외환은행 등 큰 시중은행들에 대한 정기검사를 담당하는 곳이다. 전북태생으로 서울법대와 하버드석사출신의 김국장과 6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검사2국(송개영)은 경남합천 출신으로 고대법대를 나온 송국장과30여명의 검사역들이 기업 국민 주택 산업은행과 농수축협을 관할한다.검사3국(김성희)은 지방은행들을, 검사4국(조춘래)은 신한 한미 하나은행 등 신설은행들과 외국은행 신용보증기금 등을 맡고 있으며검사5국(라길웅)은 단자 종금 신협 등을 담당한다. 김국장과 조국장은 모두 경남출신으로 각각 연대와 고대 경제과를 나왔으며 라국장은 서울태생으로 서울대경제과를 졸업했다.마지막으로 검사6국(김무길). 금융거래와 관련된 기업비리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담당하기 때문에 기업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연관이있는 부서다. 충남출신으로 서울법대를 졸업한 김국장과 30여명의정예검사들이 동화 동남 대동 평화은행등 일부시중은행과 함께 특명검사를 담당한다. 특명검사란 짐작가는대로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사안을 조사하는 것이다. 비자금과 관련해서도 은감원에 조사의뢰가 오면 검사6국의 일이 된다.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이 산업은행총재로 재직하던 시절의 수뢰혐의로 입건된 것도 검찰에 파견된 은감원직원의 노력때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검찰과 은감원 검사6국은 필요할 때마다 공조체계를 갖추면서도 수사상의 비밀보호를 위해 그같은 사실을 밝히기 꺼려한다. 그러나 두기관이 같이 팀을 짜서 일한다는 것은 여러 정황을통해서 알 수 있다.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전직대통령 4천억비자금설이 터져나왔을당시 검찰은 씨티은행 압구정지점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당시 씨티은행의 관계자는 수색나온 검찰수사팀에 은감원직원이2~3명 포함돼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부도난 효산그룹 계열사에 대한 은행대출과 관련, 제일 서울신탁은행에 대한 특별검사가진행됐을 때도 은행측에서는 은감원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밝힌데반해 은감원에서는 그같은 사실을 부인했다. 관계자들은 은감원 사람들이 「이름밝히기가 꺼려지는 기관」에 파견됐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검사6국은 문민정부출범이후 사정한파속에서 청와대 안기부 감사원검찰 국세청 경찰등 너무 많은 기관에서 조사의뢰를 받아 반년동안을 수표추적작업에만 매달려야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증권감독원(원장 백원구)도 기업비리나 검은돈의 추적과 관련해 검찰에 종종 수사협조를 하는 곳이다. 노씨아들 노재헌씨가 동방페레그린증권사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12억원규모의 주식에 대해서도증감원은 검찰의 수사협조요청만 있으면 당장에 자금출처조사를 벌일 수 있다.증감원의 검사분야는 검사총괄국과 1~5국으로 나눠진다. 총괄국은검사업무와 관련된 규정의 제·개정, 검사결과처리의 심사 및 조정등을 담당하며 실제 검사활동은 1~5국안에서 이뤄진다.◆ 권력의 ‘칼’ 세무조사검사1국에서 3국까지는 증권회사를 분담, 일반검사를 하며 특히3국은 투자신탁회사 등에 대해 정부의 위임을 받아 검사하는 일까지 관장한다. 비자금과 관련 물의를 빚고 있는 동방페레그린증권도검사3국 소관이다.검사4국(국장 최명희)과 5국(이동구)은 일반기업들의 증권거래에서생기는 비리를 조사한다. 내부자거래나 시세조정혐의 주요주주의소유주식비율 변동사항이 4·5국에서 파악된다. 최국장과 이국장은각각 서울과 전북옥구 출신으로 한양대와 건국대의 경제과를 졸업했다. 업무분장은 산업별로 이뤄져 4국이 은행 보험 단자 조립금속전기전자 1차금속 비금속 음식료 나무 제지 등이며, 5국이 석유 고무 어업 제약 가구 건설 운수창고 전기 숙박 통신 섬유 가죽 의복등이다. 두개 국의 검사인력은 50명선이다.4·5국은 모두 심정수 부원장보의 관할하에 있다. 심 부원장보는45년 대구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과를 나온 증권감독원 토박이다.한편 기업들의 비리사건이 있고나서 「응징」차원에서 병행되는 것이 세무조사다. 당연히 「재계의 포도대장」으로 통하는 국세청(청장 추경석)의 몫이다. 이번 비자금사건도 노씨구속으로 1막이 끝나고 노씨에게 돈을 건낸 기업총수와 해당 기업체에 대한 뇌물자금조성 및 탈세여부를 밝혀내는 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국세청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세무조사의 대상인과 기업을 밝히고있지는 않지만 오래전부터 조사의 수위를 어떻게 할 것인지 촉각을곤두세워왔다. 금융실명제 실시후 쌓여온 실명전환자료에도 기성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상당수 계좌가 포함돼 있다는 관측이 있어 검찰로부터 뇌물제공기업의 리스트만 넘겨받으면 탈세부분에 대한 세금추징은 순식간에 착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기업들의 세금비리등을 감사하는 것은 국세청내에서도 조사국이다.정기적인 세무조사는 해당지방국세청이 관할하지만 비자금과 같은큰 사건이후 진행되는 특별세무조사는 본청의 조사국이 담당한다.본청 조사국(국장 황재성)은 1~3과와 전산조사과로 구분된다. 황조사국장은 건대상대출신으로 조사통의 인물이다. 서울지방국세청에서도 조사국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있다.조사1과(과장 황수웅)는 내국세범칙사건의 조사계획을 수립하고 진행시킨다. 또 세무조사에 착수하기 전에 탈세혐의에 대한 구체적인판단자료인 심리자료를 준비하기도 한다.조사2과(과장 서상주)는 탈세정보를 수집하거나 접수처리하는 일을담당한다. 모든 투서가 탈세정보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정보제공자가 확실히 자신을 드러내는 투서사항만이 대상이 된다.조사3과(과장 심준보)에서는 주류 전자제품 등의 무자료거래를 의미하는 유통거래범칙사건, 토지등 기준가격 및 부당이득조사 등을관장하고 있다. 한편 전산조사국은 금융종합과세를 위한 전산망 확보로 부각되고 있는 곳으로 전산조사기법을 개발하거나 수행한다.국세청과 은감원 증감원은 금융실명제관련 긴급명령에 명의인의 동의없이 금융거래내용을 조사할 수 있는 기관으로 분류된다. 이들이필요할 때는 금융거래에 대한 비밀보장원칙도 예외가 되는 것이다.◆ 재경원, 금융정책실 통해 금융권 통제한편 이들 세기관은 정부내에서 재정 금융정책을 주무르는 재정경제원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거나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바로 은감원과 증감원이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된다면 국세청은 보완적인 관계를 갖는 곳이다.단적인 예로 김용진 은감원장이나 백원구 증감원장이 모두재무부(현 재경원)에서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두곳원장의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 재경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것을 부인할 수없다.재경원의 금융권에 대한 통제는 금융정책실(실장 김영섭)을 통해서제도적으로도 이뤄진다. 금융정책실은 한국은행과 금융정책 등을담당하는 금융총괄심의관(윤증현), 은행 보험 등의 금융1심의관(이윤재), 증권 국제금융 등을 관장하는 금융2심의관(원봉희)등으로분리돼 있다. 이중 실장과 총괄심의관 2심의관이 모두 PK(부산 경남)출신이다.반면 국세청은 재경원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지닌다. 재경원의 세제실(실장 강만수)이 세금관련 정책을 만들어낸다면 국세청은 정책을 수행하는 곳이다. 그러나 양자간의 관계가 밀접할 것이라는 점은 재경원고위직이 국세청고위직을 거치기도 한다는 데서 충분히짐작가는 바다.결국 국세청 은감원 증감원 등은 통치권자의 의지에 따라 하시라도 가동될 수 있는 워치독(Watch dog)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