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컬럼비아대학은 미국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사립명문이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여러명의 뉴욕주지사를 배출하였고, 특히 우리나라와는 여러 가지로 관계가 깊어 건국초기의 많은지도자들이 이 학교를 다녔거나 졸업하였다. 법학 의학 경영학 등의 전문대학원과 건축학과 인문사회계 학과들이 좋은 평판을 얻고있으며, 특히 퓰리처상 수여로 유명한 'School of Journalism'은전 미국에서도 최고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아이비 리그끼리의 미식축구경기에서는 항상 꼴찌를 도맡아하고 있으며, 3년동안 무승이라는 대기록도 소유하고 있다.컬럼비아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빼고서는 - 그것이 좋은 측면이든나쁜 측면이든 간에 - 이야기할 수가 없을 것같다. 필자 자신도 이학교로 가기로 결정한 후에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바로 메할렘?과 그에 따른 메안전?에 관한 문제였다. 학교가 할렘으로부터몇 백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탓에 메도착하자마자 권총부터 사라?는 장난기 어린 충고(?)를 친구로부터 듣기도 하였으며, 부모님께서도 은근히 걱정을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학교를 둘러싼 주변은 완벽한 치안이 유지되어 있으며, 오히려 미국대학가가 주는 독특한 자유스러움과 세계적대도시인 뉴욕의 세련된 정서가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였다. 특히 맨해턴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파란 잔디가 깔린 캠퍼스, 그위를 자유롭게 뛰어노는 다람쥐들, 가로등에 비치는 중후한건물은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영화 메마라톤맨?이나 메고스트버스터?에 학교캠퍼스가 잠깐잠깐 등장한다.유학생치고 영어에 얽힌 실수담 한두개 가지고 있지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빙긋이 웃음지어지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처음 학교 식당에서 샌드위치를 시키던 날이었다. 내가 메뉴를보고 "Roast Beef Sandwich, Please!" 라고 하자 그 히스패닉계아줌마가 나에게 어떤 종류의 빵으로 하겠느냐고 되묻는 것이 아닌가? 빵이름(roll, white …)을 몰랐던 나로서는 순간 어리벙벙해져결국 아무 빵에나 고기 한 조각만 달랑 얹은 맛없는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울 수 밖에 없었다. 그후 나름대로 경험이 쌓이자 스위스치즈와 상추, 토마토까지 곁들인 샌드위치를 세련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지나서는 마치 뉴요커가 다 된양 바젤빵과 카푸치노를 즐기게 되었다.◆ 교수평가제, 연구하는 학풍 기여내가 다녔던 비즈니스 스쿨은 케이스와 강의를 모두 중요시하였으나, 마케팅이나 재무, 회계 등은 거의 케이스를 통한 실무 위주의교육이었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첫학기 첫달부터 나는 방대한 양의 독파물과 숙제 그리고 생소한 스타일의 수업방식으로 인하여 예상외의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 살아야만 하였다. 수업참여를 강요하는 교수들, 경쟁적인 분위기의 동료학생들, 그중에서도 내가 입학한 첫해부터 전면 개정된 교과과정은한인 선배들의 노하우와 노트를 전부 무용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첫학기를 무사히 마치자 안도감과 함께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한가지 인상깊었던 것은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내용을 평가하는 교수평가제였다. 교수들은 그 결과에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학생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또한 박사학위를 가진 아카데미아 출신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등에서 오랜경험을 쌓은 실무자들의 강좌도 많이 개설돼 있었는데 특히 지미로저스의 증권분석 강좌는 매우 힘들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학생들로부터 인기 있던 강의 중의 하나였다.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현실감각을 살린 강좌가 많이 생겨서 학생들로 하여금 살아있는 경영학을 접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된다.미국 회계학계의 거성이며, 재무제표분석 강좌를 통해 많은 깨우침을 준 올슨 교수, 첫학기에 나를 무척이나 괴롭혔던 비클러 교수,호모라는 소문이 돌던 베스트드레서 마스리 교수 등이 다시 학교를방문하게 되면 꼭 만나보고 싶은 은사들이다. 그리고 교수들보다도나의 배움의 폭을 한층 깊게 해준 것은 바로 세계각지에서 온 다양한 경험을 가진 우수한 동료학생들이었다. 이런 훌륭한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도와주신 부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