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화장품업체들이 일제히 올겨울 유행색상을 발표했다. 태평양의 키스레드, LG화학의 씨티레드, 한국화장품의 재키로즈 등.올가을 헵번브론즈 메탈브라운 아이스아이스스모키란 이름으로 색깔경쟁을 벌였던 화장품업체들의 또다른 컬러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각 화장품업체의 립스틱 브랜드 이름만 봐도 올가을 유행색상은 브라운색이었고 이번 겨울을 선도할 색깔은 빨간색이라는 것을알 수 있다.◆ 올겨울, 빨간색이 선도화장품업체들이 이처럼 색깔에 민감해진 것은 93년 가을 태평양이밍크브라운이라는 색깔로 크게 히트하면서부터다. 그 이전까지 화장품업체들은 색조화장품 판촉에는 크게 열중하지 않았다. 색조화장품 매출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그러나 밍크브라운 열풍 이후 보통 1만∼2만개 팔리는 립스틱 한 종류도 마케팅 성공여부에 따라서는 30만개까지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각업체는 매분기마다 유행색상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컬러마케팅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이다.같은 종류의 상품이라면 무엇이 소비자의 시선을 끌겠는가. 컬러다. 특히 품질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제품일수록 소비자는 색깔로상품을 선택한다. 루이스 체스킨이라는 심리학자는 사람들은 형태나 디자인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반응하지만 색채에 대해서는 감성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사람들의 행위중 90%는 감정에 의해 유발되며 단 10%만이 이성에 의해 이뤄진다고 발표했다.이 연구결과는 색깔이 구매행위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라는가설을 뒷받침한다.이러한 컬러의 특징을 가장 잘 이용한 기업으로 베네통을 들 수 있다. 베네통이 이탈리아의 작은 의류업체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 자체가 옷의 디자인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상 때문이었다. 옷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던화려한 원색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색깔들을 과감히 사용, 색을 상품화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베네통이 광고 전면에내세우는 「유나이티드 컬러즈 오브 베네통(베네통의 조화로운 색상들)」이라는 슬로건에서도 알 수 있다.국내 의류업체인 이랜드도 브랜드별 색상 차별화로 성공한 케이스다. 이랜드는 18개 가량의 자체 의류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한 업체가 10개 이상의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브랜드별로 특징을 차별화하지 못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랜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컬러마케팅을 도입했다. 언더우드 헌트 스코필드 등 가격대나소비자층이 비슷한 캐주얼브랜드마다 각기 다른 주요색을 정해 적용한 것이다. 언더우드에서는 노랑과 연두색을 주로 사용한다든지헌트에서는 베이지색을, 스코필드에서는 노랑과 초록색이 섞인 암녹색을 많이 이용하는 등 색상을 통해 브랜드별로 차별화한 이미지를 창조했다.◆ 미국, 체계적 컬러연구 활발컬러마케팅을 성공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특정 컬러를 좋아하는 소비자층의 규모나 그 소비자층의 구매력도 예측해야 하고 제품의 성장단계도 고려해야 한다. 제품이 시장에 진출한 초기에는 기능이나품질이 우선시되므로 색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제품이성장기에 이르러 경쟁제품이 나타나면 경쟁제품과 차별화하기 위한컬러 선택이 중요해진다. 제품이 성숙기에 도달하면 상품의 이미지유지를 위한 색상관리에 주력해야 한다.미국에서는 컬러를 과학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쿠퍼마케팅사는 매년 5천명을 대상으로 자동차 집 의류 등 제품별 컬러선호도를 조사, 결과를자동차업체와 유통업체 등에 판매한다. 이 회사의 설문내용은 현재가장 좋아하는 색깔과 싫어하는 색깔, 소유하고 있는 의류나 자동차 등의 색상, 앞으로 제품을 구입할 때 선택할 컬러 등으로 광범위하다. 이 회사는 다년간에 걸쳐 쌓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응답자를 컬러선도그룹과 추종그룹, 특정컬러선호그룹으로 분류했다.컬러선도그룹은 새로운 색깔을 맨 먼저 시도하는 소비자층으로 수적으로는 적지만 새로운 색상을 유행시키므로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추종그룹은 다른 사람이 구입하는 것을 보아야만 새로운 색상의 제품을 사는 소비자층으로 전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정컬러선호그룹은 매번 같은 색깔을 찾는 소비자들로 유행색상보다는 청색이나 회색과 같은 무난한 색을 선호한다. 이들은 해마다 같은 색깔의 제품을 구입하기 때문에 시장 자체는 작지만 예측가능성이 커 안정적인 편이다.우리나라에서는 92년에 한국 유행색협회가 설립돼 컬러 트렌드에대해 조사, 매분기별로 유행색을 발표하고 있다. 처음에는 섬유분야의 80개 업체로 시작했지만 최근에는 LG화학 등 화장품업체와 대우 쌍용 등 자동차업체도 가입, 회원사가 크게 늘어났다. 의류업체에서나 중요시되던 색상선택이 다른 업종에서도 중요한 결정사항으로 부각됐기 때문이다.자동차업계의 컬러마케팅은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각각 다양한 색상의 엑센트와 아벨라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현대와기아의 컬러마케팅은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색상 다양화에만 초점을 맞췄지 특정색상에 대한 시장규모와 선호자의 구매력등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랑색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이색깔을 좋아하는 소비자층의 연령대와 성별, 자동차 구매력 등을예측하는데는 소홀했던 것이다.◆ 외국시장 인기컬러 개발을 …가전제품의 컬러화는 80년대초 검정색 제품이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검정색과 흰색이 가전제품 색상의 양대세력으로 군림해왔으나 90년대 들어서는 빨간색 전기밥통, 초록색 전기청소기, 연분홍색 전화기 등이 일반화됐다. 최근에는 필립스가 파스텔톤의 초록색 전기주전자와 분홍색 커피메이커, 연두색 과즙추출기를 선보여 관심을 끌었다.컬러는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날로 중요성을 더해가고있다. 수출을 할 때도 외국시장에서 선호되는 컬러에 대한 연구는필수적이다.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맞는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나제품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나 컬러마케팅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