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방송에 들어간지 채 1년이 지나기도 전에 케이블방송업계가 재편되고 있다. 가입자수가 순조롭게 늘어나지 않고 광고획득이 어려워지자 결국 중소유선방송국(SO:System Operator)이나 프로그램공급업자(PP:Program Provider)들이 설비를 대준 대기업들에 경영권을넘겨주고 있다. 바야흐로 서로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이 본격화된 것이다.돈많은 일부 SO들은 다른 SO지분확보를 시도중이다. 그런가 하면안양 분당등 추가사업지역에서는 사업권확보를 꾀하는 업계움직임도 있다. 그룹차원에서 정보통신분야에 뛰어든 대기업들도 몸집부풀리기에 나서고 있다. 설비를 납품했던 SO들이 막대한 초기사업비용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대금지불을 늦추자 회사지분을 대신 인수하고 있다.아직까지는 법규에 의해 대기업이나 언론사들의 지분참여를 막고있긴하다. 그러나 장차 선보일 통합방송법에서는 이들에게 SO들에대한 지분참여를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견해가 강하다. SO들을 선점해 놓으려는 움직임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자본이 허약한 SO들이 조만간 「나가떨어질 것」이란 관측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흑자를 내기에는 케이블가입자수가 아직 미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종합유선방송협회(회장 김재기)의 조사에 따르면지난 11월말 현재 시청가구수는 40여만가구, 이중 유료시청은 25만가구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도 지역적인 편차가 심해 지방의군소도시에서 운영되는 방송국의 가입자수는 밝히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낳은데는 한국전력 한국통신같은전송망사업자(NO)의 책임이 크다. 한 케이블방송의 편성기획실장은 『케이블방송을 신청하면 접속이바로 되는 비율인 홈패스율(Home-Pass ratio)이 일부지역에서는10%도 안되는 상황』이라며 『전송망사업자들이 케이블방송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케이블망 설치가 전혀 돼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쟁 심화로 서비스 좋아질 듯서로가 SO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케이블방송의 채널선택권과 편성권을 SO들이 갖게 될 확률이 크다는 점이다. 업계는 자동폐기된 통합법에서도 그러했으며 앞으로 다시 법안이 나온다고 해도 이부분에서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홈쇼핑TV의 관계자는 『사업초기라서 모든 방송의 프로그램이 송출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SO들에게 채널선택권과 편성권을 준다는것은 공공연히 합의된 사항』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재미없는 프로그램은 SO들이 선택권을 쥐고 언제라도 「칼질」을 할 수있다. 명실공히 SO들은 칼자루를 쥐는 것이며 여기저기에서 SO사업권에 군침을 흘리게 된다는 해석이다.한편 한 드라마채널의 경영권이 사실상 다른 케이블방송국에 넘어가는 등 PP분야에서도 약육강식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전체 케이블방송의 광고소득은 공중파방송 한두시간정도에 지나지 않는 실정이어서 누적적자를 끌어안고 있는 PP는 버틸 수 없게 돼있다.PP들에게는 이밖에도 본격적인 경쟁이란 새로운 무대가 기다리고있다. SO들이 채널선택권을 가지면 현재 복수체제로 돼 있는 전문채널을 모두 송출할 필요가 없어진다. 프로그램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어야만 각가정에 송출될 수 있다. 방송프로그램중 외부제작비중을 점차 늘려나가 프로덕션의 활성화를 꾀한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방향이다.현재 공중파의 외부제작비율은 전체프로그램중 20%안팎이지만 케이블방송이 정상궤도에 달하고 앞으로 위성방송이 본격화되면 외부제작 프로그램의 편성비율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프로덕션들도 방송국과 시간사용계약만 맺어 자신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식으로 방송환경이 바뀌어갈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케이블업계의 치열한 생존경쟁은 업계로서는 아픔이다. 그러나 그과정에서 프로그램제작사업이 활성화되면 시청자에 대한 서비스는그만큼 좋아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케이블업계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보약」이 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CPHKB.B011증감원, 뒤늦게 합병요건 강화 움직임95년 12월 5일 10시 대전 대우중공업빌딩 12층 대회의실에선1백50여명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부천의 (주)한독 부천공장에서도 65명정도가 뭔가를 논의하고 있었다. 바로 대우자동차의 판매를 전담하는 메우리자동차판매?와 손목시계 전문생산업체인 메한독?의 합병승인을 위한 임시주총 장면이었다. 이날 두회사의 합병주총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고양이’가 ‘공룡’을 먹어치운다?어찌보면 흔하고도 싱겁게 끝난 주총이지만 산업계와 증권가에서이번 주총이 갖는 의미는 색다르다. 자본금 1천억원의 비상장사인우리자동차판매가 자본금 1백80억원에 불과한 한독에 흡수합병되었기 때문이다. 메고양이?만한 회사가 메공룡?같은 회사를 먹어치우는 희대의 메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자판 1주를 한독0.8주로 나눠주지만 그래도 경영권은 역시 자본금이 많은 우리자판으로 넘어가게 된다.이번 주총이 주목받은 것은 그래서만이 아니다. 보다 눈길을 끄는것은 비록 「작은 집」에 합병되지만 이를 통해 비상장인 「큰 집」이 순식간에 자동 직상장되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이를두고 「변칙상장」이라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이처럼 상장사가 비상장사를 합병한 경우는 94년이후 지금까지 합병예정회사를 포함해 모두 26건. 이중 합병비율 1대0으로 비상장사의 주식을 모두 소각한 10건을 제외한 16건의 케이스는 어쨌든 비상장사의 주식이 상장되는 결과를 낳았다.합병에 따른 이들 비상장사 주식의 상장규모를 따져보면 94년엔 모두 1조3천7백1억원으로 같은해 한햇동안의기업공개물량(5천7백95억원)의 2배가 넘기도 했다. 95년에도 이같은 상장규모는 1백49억원에 달했고 96년 들어선 상반기까지만 해도1천16억원어치가 예정된 상태다.한독과 우리자판의 합병건도 올 3월 물량중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자판 자본금 1천억원의 0.8배인 8백억원어치의 주식이 자동 상장된다는 얘기다. 96년을 목표로 기업공개를 추진해 온 우리자판은 아직 기업공개요건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합병을 통해 상장까지 직행한다는 것이다.자동차할부판매를 위한 팩토링금융탓이긴 하지만 94년말현재 부채비율이 1천4백63%로 동업종평균(3백65%)의 1.5배미만이어야 하는공개요건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또 최근 3년간 납입자본이익률이30%를 넘어야 하지만 23.9%에 그치고 있으며 자산가치도 7천원에못미쳐 7천5백원을 초과해야 하는 요건을 못갖춘 상태다.결국 우리자판은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면 오랜 세월이 걸려야 하는공개 및 상장을 단번에 이루는 크나큰전리품을 챙겼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도 1백개를 넘는 회사가 기업공개를 위해 무더기로 대기중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초고속 자동상장」인 셈이다.물론 이들 두회사가 한집살림을 하게된 데는 속사정이 있다. 우선한독의 입장에서 보면 합병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하나는 합병이란 돌파구를 찾아 상장폐지의 위기를 모면, 투자자를보호한다는 것이다. 3년연속으로 자본잠식한 회사는 증권거래법에따라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된다. 한독의 경우 이미 94년까지 2년연속 자본잠식상태여서 상장폐지 우려종목으로 지정된 형편이다.95년에도 적자가 지속돼 6월말현재 결손금이 5백49억에 달해 자본금과 자본잉여금을 합친 2백54억원을 훨씬 웃돌고 있다.또 하나는 대우측의 자금을 동원해 약30만평 규모의 인천 송도매립지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자판의 이익잉여금이95년 6월말 현재 4백81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발상. 한독은 지난89년 매립지를 개발하면서 오는2000년까지 이지역을 유원지로 개발할 것을 인천시에 약속했지만 자금난으로 여의치 않은 실정이었다.우리자판의 입장에서 보면 합병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하다. 당장한독이 갖고 있는 인천 송도 매립지 30만평을 대우자동차의 하치장으로 활용할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부평공장의 입지가비좁은 대우쪽에선 매립지를 유원지로 개발하기 전까지 앞으로 5년간은 안정적인 자동차 하치장으로 쓸수 있다는 계산이다.더구나 자동상장 효과는 엄청나다. 특히 지난 92년에 대우자동차의자동차판매대행사로 출범한 우리자판은 3만여 대우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주주여서 상장과 함께 이들에게도 환금성을 부여할 수 있게됐다.◆ 감사인 지정으로 전문회계감사도 받아야이같은 「변칙상장」의 소지때문에 그동안 증권감독원에서도 한독과 우리자판의 합병계획서 제출을 저지해왔다. 수급조절을 통한 증시안정을 위해 공개물량마저 극도로 억제해온 마당에 합병을 통한공개 및 상장은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미 94년 7월중에 제출할것이라는 얘기가 나돌던 이들 회사의 합병신고서는 3개월이 지난10월16일에야 증감원에 접수됐다. 합병비율만 해도 기업가치로는1대1.23으로 산출돼 회사측에선 1대1.1정도를 예상했던 것이 증감원에 의해 1대0.8로 깎였다는 후문이다.이번 합병은 외형상으로는 문제될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행 증권거래법상으로 볼 때 그렇다. 거래법 190조는 비상장법인의 합병에 관해 「비상장법인의 합병주총승인은 해당 회사가 주식이나 채권 등의 유가증권 발행인으로 증권관리위원회에 등록하고서 6개월이 지난 뒤에 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자판의 경우 이미 지난91년 5월에 등록한 상태여서 이번 합병주총의의결사항도 유효하다는 것이다.이를 뒤집어 보면 한마디로 법규정 자체에 허점이 있었다는 얘기다.급기야 증권감독원이 뒤늦게 칼을 빼든 것도 이 때문이다. 증감원의 장영 재무관리국장은 『상장사와 합병하려는 비상장사도 납입자본이익률이나 부채비율등 주요 재무비율은 기업공개요건을 갖춰야 하는 방향으로 96년 1·4분기중 「상장법인 합병신고규정」을고칠 방침』이라고 밝혔다. 상장사와 비상장사간의 무분별한 합병을 막아보자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까다로운 공개요건을 갖추지못한 기업은 아예 합병할 엄두도 낼수 없을뿐더러 영업실적에 대한예리한 점검을 거쳐야 하는등 비상장사의 합병이 크게 제한되는 셈이다.또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96년부터(신고서제출기준)는 비상장사가 다른 상장사와 합병하려 할때에는 감사인을 지정받아 전문회계기관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기업내용이 부실한 비상장사와 상장사의 합병에 따른 투자자들의 피해를 억제하자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