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31일. 세계영상업계의 급격한 재편을 알리는 신호탄이 전세계 매스컴을 강타했다. 세계적인 영상업체 미국의 월트디즈니사가 이날 대형미디어업체인 캐피털시티즈/ABC를 1백9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다. 인수협상 10일만에 세계초대형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업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인수규모 측면에서만보아도 지난 89년 RJR나비스코사가 콜베르그 크라비스 로버츠사를인수할 때 지불한 2백50억달러에 이어 미국기업 사상 두 번째 규모의 초대형 합병을 기록했다.월트디즈니는 테마파크 디즈니랜드와 「미키마우스」「라이언킹」「미녀와 야수」등 만화영화로 유명한 미국최대의 엔터테인먼트업체. 이 회사는 94년 1백억5천만달러의 매출액중 48%가 프로그램공급 등 엔터테인먼트사업이 차지했다. 피인수업체인캐피털시티즈/ABC는 미국 3대방송사의 하나인 ABC와 8개의 캐이블TV 21개의 라디오방송국 신문 출판사 등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 미디어기업이다. 94년도 매출액은 64억달러. 다시말해 프로그램을공급하는 업체가 프로그램을 받아 전송하는 미디어 업체를 인수한셈이다.영상산업이 미래유망산업으로 급부상하면서 대형영상업체들간에 이같은 전략적 인수합병이 잇달아 이루어지고 있다.월트디즈니사가 ABC를 인수한지 하룻만인 지난 8월1일에는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사가 54억달러에 미국의 3대 TV방송사 중의 하나인CBS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미국전역의 3분의1을 커버하는 TV 및라디오 지역방송망을 가지고 있는 업체다. ABC인수로 TV 부문에서미국전국 상위 10개 방송사중 7개사를 포함해 15개 방송사를, 라디오부문 상위 10개 방송사를 모두 차지하는 등 39개의 방송사를 거느리는 미국의 최대방송망을 구축하게 됐다.한달 뒤인 지난 9월 1일엔 미국 유수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업체인타임워너사가 뉴스채널 CNN의 모기업인 터너브로드캐스팅(TBS)을80억달러에 인수했다. 타임워너는 TBS를 인수함으로써 94년 실적을기준으로 매출액이 1백87억달러에 달해 ABC를 인수한 월트디즈니의1백65억달러를 제치고 세계 최대의 미디어기업으로 부상하였다. 한달만에 영상산업계에서 3건의 대형매수합병이 이루어진 셈이다. 이에 앞서 작년초에는 캐나다의 대형음료메이커인 씨그램사가 90년에61억달러에 매수했던 마쓰시타전기로부터 MCA사를 사들였다. 매각대금은 57억달러였다.◆ 해외시장 공략도 손쉽게…대형영상업체들이 인수합병에 적극 나서는 직접적인 이유는 프로그램제작에서 전송까지를 일원화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월트디즈니의 최고경영자인 마이클 아이스너(54)도 ABC인수로「1+1」은 2가 아닌 3.4가 되는 시너지효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또 국제화에서 한발 앞서가는 캐피털시티즈/ABC를 인수함으로써 해외시장 공략에도 보다 쉬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미국과 유럽국가 등 선진국들이 항공산업이나 우주 에너지 식품 자동차 중공업산업과 같이 영상산업을 미래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는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영상업계의 재편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클린턴행정부는 TV 영화 등에 대해 엄격한구분을 강요하던 규제조항을 지난 11월부터 폐지함에 따라 방송사들도 영화 오락 등 전분야로 자유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독점규제법을 철폐함으로써 영상대기업들이 좀더 대형화해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나섰다.그러나 영상업체들의 재편현상이 가속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영화 케이블TV 방송 전화 등 각종 멀티미디어분야를 한손에 장악함으로써 첨단기술의 발달과 정보산업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영상산업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자는 속셈이 깔려있다. 영상산업은 크게 미디어산업 소프트산업 그리고 하드산업으로 대별된다. 미디어산업이란 영화배급 공중파방송 위성방송 CATV 신문 출판 등을 말한다. 소프트산업은 영화 음악 제작 등 프로그램제작업을 말하며 하드산업은 TV VTR 등 기기산업을 말한다. 이들 영상기업들은 정보통신 등 멀티미디어기술의 발달과 함께 영상소프트를 복수의 미디어에 유통시킴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기존의 하드업체나 미디어업체 영상소프트업체들이 서로의 영역을 확대하고자 각축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현재 대기업들의 영상산업확대전략을 살펴보면 소프트산업이 미디어를 지배하는 소프트 주도형, 미디어산업이 소프트산업을 포함시키면서 확대하는 미디어 주도형, 하드산업이 미디어나 소프트산업을 흡수하는 하드 중심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여기에 신규회사를설립하려는 움직임도 한줄기를 이루고 있다. 소프트주도형은 타임워너와 월트디즈니 등 할리우드 메이저가 전형적인 예다. 미디어주도형은 세계1위의 CATV방송운영업체인 텔레커뮤니케이션을 꼽을수 있으며 하드주도형은 지난 89년 콜롬비아를 인수한 일본의 소니사를 들 수 있다. 신규회사 설립은 「인어공주」「알라딘」「라이온킹」 등 애니메이션 영화의 명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와 할리우드의 대부 억만장자인 데이비드 게펜 그리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독자적으로 설립한 드림웍스사가 대표적 예이다.하이테크에 둔감했던 이들 영상업체들은 인수합병 이외에도 앞을다투어 지역전화회사와 손잡고 신규사업에 나서고 있다. 파라마운트와 월트디즈니, 타임워너는 공동으로 벨 애틀랜틱과 주문형비디오(video on demand)를 시험중이다. 타임워너는 유에스 웨스트,AT&T와도 제휴를 맺었다. 특히 유에스 웨스트는 장차 유선TV사업에진출하기 위한 포석으로 타임워너에 25억달러를 투자, 프로그램공급을 약속받은 상태다. 월트디즈니는 벨사우스 사우스웨스턴벨 아메리테크와 손잡고 19개주에 걸쳐 주문형비디오사업과 홈쇼핑서비스를 벌일 방침이다.◆ 지역전화회사와 홈쇼핑서비스 등 신규사업이들 대형영상업체들은 첨단컴퓨터 통신기술을 무기삼아 전혀 색다른 영상산업에도 뛰어들고 있다. 드림웍스는 세계최고의 컴퓨터 소프트웨어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사와 손잡고 쌍방통행식 영화사업을추진하고 있다. 드림웍스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기존의 영화예술과 첨단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이 쌍방통행식 영화는 안방에서 PC로 영화를 감상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줄거리를 전개시켜 나갈수 있는 시스템이다. 자기 취향에 따라 폭력이나 에로틱한 대목을첨삭할 수도 있다. 제작자는 영화의 등장인물 등 기본적인 틀만 설정하고 그 범위내에서 다양한 플롯을 관람객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있는 색다른 영화사업이다. 또한 스필버그 감독은 CD롬 게임전문업체인 놀리지 어드벤처사와 손잡고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의 공동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는 얼마안가 CD롬 게임시장이 현재 거대시장으로 부상한 비디오 게임시장을 추월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미 미국영화업계는 교육과 오락의 기능을 겸비한 CD롬의 잠재력에눈을 돌리고 이 분야에 뛰어든 상태다.인수합병을 통한 대기업들의 영상산업진출 시도는 수년전 일본기업들에 의해 추진됐다. 지난 89년 일본의 가전재벌 소니는 50억달러를 투자, 콜럼비아영화사를 인수했다. 미국의 문화적 자산인 할리우드의 정복은 당시 「제2의 진주만공습」으로 여겨질 만큼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크게 건드려 놓았다. 이듬해인 90년에는 마쓰시타가61억달러에 MCA를 인수, 다시한번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소니와 마쓰시타는 92년에 일약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제2인자와3인자로 급부상했었다. 소니와 마쓰시타의 전략은 간단했다. 가전왕국을 건설한 이들 재벌은 영화 음반 등 미디어산업까지 손에 넣음으로써 21세기 황금시장인 멀티미디어시장을 미리 장악하겠다는포석이었다. 그러나 소니와 마쓰시타의 거창한 구상은 빗나갔다.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투자자금이 무한정들어갔기 때문이다.창조성이 강조되는 영상산업의 특성상 창조의 주체인 사람과의 유대관계를 등한시 한 것이 결정적인 실패요인이었다. 일본기업들은숫자로 표현되는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나머지 할리우드인물들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사람의 감각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영상산업에서 이들 영상업체들이외국회사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는가가 성공의 열쇠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