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코아백화점 해외 상품 구매부에는 직원이 거의 없다. 대부분 해외출장중이기 때문이다. 병행수입제가 허용된 이후 구매부 직원들은 제품 수입을 위한 해외 유통업체 시찰로 자리를 비우기가일쑤다. 식품부는 쇠고기 수입문제를 알아보러 호주와 뉴질랜드에출장중이고 공산품 구매부는 미국을, 뉴코아의 할인점인 킴스클럽은 유럽을 돌아 다니는 식으로 해외 곳곳에서 수입선을 뚫기위해노력하고 있다.◆ 유통업계, ‘병행수입 전담팀’ 본격 가동뉴코아뿐이 아니다. 롯데백화점 신세계 그랜드백화점 등 백화점을비롯한 대부분의 유통업체들이 병행수입제 허용 이후 양질의 해외상품을 조달하기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롯데백화점은 지난 9월부터 숙녀의류 부장을 팀장으로 하고 각 부문의 전문 바이어 7명으로 구성된 「병행수입 전담팀」을 조직했으며 그랜드백화점은 직수입 판매를 전담할 무역부를 신설했다. 병행수입제가 허용되면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양질의 값싼 수입품을 누가 얼마나 조달하는가가 유통업체 사이에 새로운 경쟁요소로 떠올라서다.소비자 입장에서는 유통업체가 수입에 나서는 것이 좋다. 유명 브랜드 제품에 마음이 끌려 가격표를 들여다보다가 너무 많은 「0」자에 기가 질려 슬그머니 놓아버린 기억이 대부분의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항의라도 하면 수입품은 국내 독점공급업자로부터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유통단계가 복잡하고 그래서 자연히 단계별로 마진이 붙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대답뿐이었다.그러나 이제는 유통업체들 스스로 제품을 수입할수 있으니 유통단계가 줄어드는데다 여러 업체가 같은 상품을 수입할수 있게 돼 수입품간에도 경쟁이 붙어 자연히 가격이 떨어지게 됐다. 대형 할인점인 프라이스클럽과 킴스클럽에서 리바이스 캘빈클라인 리 등의유명 청바지가 시중가격의 40%선인 2만2천원에서 3만2천5백원 사이에 팔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킴스클럽은 또 제일제당이 독점적으로 수입해오던 미국의 햄제품「스팜」을 병행수입해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외에도 백만원을 훨씬 넘게 호가하는 테일러메이드 토미아머 등 외국의유명 골프채도 절반 가격에 구입할수 있게 됐다. 리복 나이키등 유명 스포츠화와 운동복도 지금보다는 저렴한 가격에 접할수 있게 될것으로 보인다.반면 독점적인 이익을 누려왔던 기존 수입업자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누구나 수입이 가능하게 됨에따라 경쟁이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이다. 토미아머 캘러웨이 등 유명 골프채를 수입하고 있는 업체들이 최근 잇달아 가격을 내리고 있는 것도 골프채 특별소비세 인하와 함께 병행수입으로 인한 가격경쟁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한것이다.이러한 현상은 정부가 병행수입을 허용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영향,수입품간의 경쟁을 통한 가격안정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증거다.그러나 현재 청바지나 식품 스포츠용품 등 일부 수입품목에서 불고있는 가격파괴 바람이 어디까지 갈것인지에 대해서는 업체 전반적으로 회의적이다. 값싼 수입품이 많이 들어오긴 하겠지만 외국의재고상품이거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신세계백화점의 박주성과장은 『현재 신세계가 수입하고 있는 조지오 아르마니나 혹은 버버리 막스마라등 고가의 패션브랜드는 왠만한 대형 유통업체가 아니고는 병행수입을 하고 싶어도 못할것』이라고 말한다. 외국 제조업체가 브랜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제품자체를 많이 만들지 않을뿐더러 아무한테나 판매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병행수입, 빠른 유행으로 재고부담 커질수도결국 이러한 고가품을 병행수입하기 위해서는 외국 유통업체에 깔린 제품을 매입해 국내에 들여와 팔아야 하는데 탈세를 하지않고서야 본사에서 직접 사오는 정식 상표사용권자와 가격경쟁이 되겠느냐는 지적이다. 때문에 이러한 고가품의 유명 제품은 수입된다 해도 외국의 할인점이나 아울렛 등에서 유통되는 철지난 재고상품이나 너무 작거나 또는 커서 팔고 남은 사이즈의 제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또 초기에는 소비자들이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만 보고 병행수입 제품을 구입하겠지만 곧 품질이나 사이즈 디자인 등에 실망할 것이란 예상이다.고가의 유명 상품이 아니더라도 의류의 경우에는 제품 구색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다 유행이 빨리 변하기 때문에 병행수입업자가 제품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프라이스클럽의 유하일이사도 『청바지같이 유행이 민감하지 않은상품이야 대량으로 병행수입할수 있지만 다른 패션상품은 구하기도어렵도 빠른 유행 때문에 재고부담도 커 수입이 어렵다』고 밝혔다.기존 수입업체 사이에서 병행수입 허용에 대한 대응책으로 가격을내리겠다는 반응이 극히 적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병행수입에 대비해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하고 제품 구색을 다양하게 갖추겠다는 대답은 많지만 값을 내려 가격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응답은 거의 없다.가격을 내리지 않겠다는 배경에는 제3자가 정상품을 병행수입하기는 매우 어려울거라는 자신감과 함께 지금의 가격이 결코 높지 않다는 항변도 깔려있다.프랑스에서 테일러메이드 골프채와 살로몬 스키바인딩을 독점수입해온 스타코의 엄의석이사는 이렇게 얘기한다.『우리같은 골프채 수입업자들은 수입원가에 대략 35∼40%의 마진을 붙인 뒤 제품을 골프용품숍에 넘긴다. 이 대리점 운영자들은 다시 자기 마진을 30% 붙여 파는데 유통단계별로 마진이 붙는 것은어쩔수 없지 않은가』프라이스클럽과 같은 할인점의 경우 수입원가에 8∼16%정도의 마진을 붙이는데 비해 수입업자들의 마진율은 너무 높은게 아니냐는 지적에도 브랜드 이미지제고를 위한 광고비와 애프터서비스 비용을생각하면 결코 많은게 아니라고 답변한다.단순한 광고비외에도 스타코가 매년 골프대회를 후원하는 것이나리바이스코리아가 한국에이즈협회에 1만달러를 기증한 것 등 회사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각종 활동에 비용을 들인다는 것이다.이러한 배경 때문에 병행수입제의 가장 큰 희생자는 국내 생산업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는 현재 국내에 소개되고있는 유명브랜드가 아니더라도 각종 식품이나 중저가 의류, 구두스포츠용품 등을 수입할 예정이기 때문이다.킴스클럽에서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의 로얄아일랜드콜라를 수입해 판매하는 것이나 프라이스클럽에서 영국의 티베트라는 브랜드의 여성코트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이러한 제품은 브랜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외제인데다 품질도우수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대형 할인점이 양질의 중저가 상품 수입에 적극 나서면서 현재15~20%선인 할인점의 수입품 비중은 앞으로 점점 더 높아질 것으로보인다.백화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동안 국내 전용사용권자의 반발에 부딪쳐 수입이 막혀있던 유명 브랜드 제품뿐 아니라 각종 중저가 제품에도 눈을 돌리며 소비자를 잡아끌 수입품 매입에 열을 올리고있다.◆ 유통매장서 국산품 밀려날 우려특히 신세계는 외국의 중소 제조업체 및 유통업체와 제휴, 공동으로 상품을 기획한 뒤 직수입해 자체 브랜드를 붙여 판매하고 있다.현재 영국 벨기에 독일 등에서 생산된 코트를 들여와 메노하우?라는 자체 브랜드로 판매하는 것을 비롯, 앞으로는 미국의 JC페서 영국의 막스 &스펜서 등 외국 유명 백화점과의 PB(자체상품)상품 공동개발에도 착수, 수입품 조달을 늘려나갈 계획이다.이에따라 국내제조업체는 자사 대리점망을 제외한 백화점이나 양판점 할인점 등에서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생산업체들이 품질을 높이고 가격을 낮추는데 주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여기에 있다.유통업체는 지금까지 제조업체들이 같은 업종끼리 미리 가격을 담합해 물건을 납품하기도 하고 유통업체에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판매하면 자사 대리점망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납품을 거절하기도하는등 부당하게 너무 큰 힘을 발휘해 왔다며 나름대로 제조업체에대해 불만이 컸다.결국 병행수입제는 단순히 수입품의 가격 인하라는 측면이 아니라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간의 파워게임에서 유통업체가 약간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병행수입제 허용으로 인해대형 유통업체가 직접 외국제품 수입에 나서면서 유통매장에서 국산품이 차지하는 위치가 점점 더 축소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국산품이든 수입품이든 양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다면소비자는 행복하다. 게다가 이제는 무역장벽을 쳐놓고 국산품 애용을 외치던 시대를 지나 「세계화」가 됐다. 병행수입제 허용도 세계화를 위해 장벽을 하나 거두는 것이다. 이제 소비자는 더욱 다양한 종류의 상품과 가격, 애프터서비스 사이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기만 하면 된다.★ 인터뷰 / 유하일 프라이스클럽 이사▶ 병행수입 허용은 특히 유통업체에 이득이 될 것 같은데.수입자유화로 다양한 제품을 갖출수 있게돼 유통업체에 이익이 되는 면이 많다. 그러나 마냥 유리한 것은 아니다. 여러 유통업체가해외 수입선을 뚫기위해 너나없이 뛰어들면서 유통업체간에도 수입품경쟁과 가격경쟁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또 보따리상들까지 제품 수입에 나서면 가짜 상표가 지금보다 더 난립돼 유통질서가 어지러워질 우려도 많다.▶ 앞으로 수입품을 더 확충할 계획인가.기존 방식대로 미국의 프라이스클럽 본사를 통해 물품을 조달하는데는 변함이 없다. 단지 앞으로 의류 수입은 늘릴 계획이다.▶ 프라이스클럽의 경우에 애프터서비스는 어떻게 하고 있나.할인점의 경우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애프터서비스가 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전제품의 경우에는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고 있으며 다른 품목의 제품은 교환해주거나 환불해준다. 하루에 환불해주는 금액이 약 5백만원 정도다.▶ 국내 제조업체 중에는 가격 결정권을 고수하고 자체 대리점망을 보호하기 위해 할인점에는 물건을 납품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병행수입 허용으로 변할 가능성은 없는가.가전업체나 제과업체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물건을대주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보면 훨씬 나아진 셈이다. 병행수입허용으로 더 나아질 것이다. 국내 제조업체가 할인점에 물건을 납품하지 않으면 유통업체로서는 수입품을 늘릴 수밖에 없고 소비자입장에서는 양질의 수입품을 저렴하게 구입할수 있는데 왜 마다하겠는가. 국내 제과업체가 물건을 대주지 않으면 해외에서 과자를수입해 판매하면 된다는 얘기다.▶ 유통업체가 수입품 판매에 앞장선다는 비난을 들을수도 있을텐데.내년에 유통시장이 개방되면 국내 유통업체들은 외국의 쟁쟁한 유통업체와 직접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우리로서는 세계 각국에서 좋은 상품을 가장 저렴하게 판매할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 경쟁력을키워야 한다. 병행수입 허용이 국내 제조업체에도 품질과 서비스를향상할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인터뷰 / 윤상영 리바이스코리아 부사장▶ 전용상표권자로서 병행수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부의 허용 입장은 존중한다. 또 미국이나 일본같은 선진국에서도허용하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정부는 병행수입을 수입품의 가격 안정 문제로만 보는 것같다. 허용방침 전에 충분한 학자들의 연구와사법부의 판례사례가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일본 사례를따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병행수입에 어떻게 대응할 방침인지.특별한 방침은 없다. 제품 구색을 다양하게 갖추고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승부를 걸겠다. 소비자들이 가격만보고 제품을 구입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사이즈와 디자인이 소비자자신이 원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병행수입업자들은 이러한 구색을맞추는데 우리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전용사용권자와 공동대응이나 사법대응은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공동대응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단지 불법복제품이 병행수입을틈타 시장에 돌아다닌다면 상표권 보호의 차원에서 법원에 민사소송을 걸수는 있을 것이다. 병행수입은 어떻게 시행되느냐의 문제지허용방침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할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행수입업자가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 전용사용권자가 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 하는가 하는 문제도 첨예한 문제중의 하나인 것 같은데.그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렇게생각해 볼 수 있다. 가령 우리도 계절이 지난 상품을 파는 직영할인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할인점에서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와 정품에 구입한 소비자에게 똑같은 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 하는가 하는문제다.▶ 가격을 내릴 생각은 없는가.우리 청바지가 결코 비싼게 아니다. 상품을 기획하고 광고하고 직영점을 포함한 전국 1백13개 대리점의 판매를 도와주는 것을 감안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소비자 선태폭 넓히는 생산-유통혁신의 계기소비자보호원이 지난 6월 의류 음식류 가전제품등 주요 소비재 수입품의 유통실태를 조사한 결과 수입품 판매가격이 수입원가의 평균 2.7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수입품의 유통마진은 같은 종류의국산품 유통마진(평균 47%)의 3.6배에 달하고 있었다.해외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국내의 수입코너에 가보면수입품 가격이 원산지 가격보다 2∼3배, 때로는 4∼5배이상으로 높은 경우가 허다하다.이러한 현상은 상품의 수입과 유통상에서 실효성있는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얼마전까지는 어떤 사람이 국내에다 외국의 특정 상품의 상표를 등록하면 다른 사람은 이를 수입할수 없었다. 이러한 규제는 수입품의 독점판매를 보장, 과도한 유통마진을 허용함으로써 수입품의 소비자 가격을 높이는 결과만 낳았다.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1월6일부터 상표등록을 하지않은제3자도 진짜 상표의 상품에 한해서는 수입할수 있는 병행수입을허용했다. 수입품간의 경쟁을 통해 가격안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다.그러나 병행수입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병행수입이 상표권을 침해할수 있다는 수입업자들의 반론도 많았다. 이에따라 정부는 선진국의사례를 연구, 독점수입품과 출처및 품질이 동일한 경우에만 병행수입을 허용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