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자들은 자신이 넓혀놓은 시장에 대기업들이 뛰어드는 걸몹시 두려워한다. 대기업의 자금력과 대항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참여하는 바람에 시장 잃고 우왕좌왕하다 쓰러지는중소기업들이 어묵 고무부품 장류 전자부품 등의 분야에서 수없이많다.그러나 대기업의 시장침투가 전혀 두렵지 않은 중소기업인이 한 사람 있다. 여의도 제일증권빌딩에 있는 한국하우톤의김광순회장(56)이 바로 그 사람이다.김회장이 대기업참여를 겁내지 않는 것은 한국하우톤이 만드는 제품이 너무나 독특한 성향을 지녀서다. 주생산품은 금속가공유 및산업용윤활유. 이 회사가 만드는 품목은 모두 1천4백50가지이다.아마 1개회사에서 가장 많은 품목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일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회사의 제품생산에 필요한 원료의 숫자이다. 이것 역시 1천4백여가지에 이른다. 더욱이 드리에타놀아민 우지 등 원료는 각각 다른 곳에서 구해야 한다.현재 온산과 부평 남동 등 3곳에 공장이 있지만 어느 공장에서든매일 다른 제품을 생산한다. 양산화되어 있는 제품은 단 1가지도없다. 이념형적인 소량다품종체제다.따라서 이 분야에서는 대기업이 발붙이기는 정말 힘든다. 자금력만으로는 원료1천4백가지 및 제품 1천4백 가지를 관리해낼 수 없어서다.실제 국내 2개 그룹기업이 이 분야에 진출했다가 완전히 두손을 들고 나갔다. 대규모 자금투자로는 본전찾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인력이 너무많이 소요되고 마진도 형편없다. 이같이 척박한 시장에서 한국하우톤은 어떻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을까. 이 특수윤활유분야에서는 50억원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는 없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제품을 만들면서도 올해 매출 8백억원을 올렸으며 내년에는 1천억원을 예상한다.수출실적도 2백억원에 이르고 이윤이 박하기로 이름난 이 분야에서35억원의 당기순이익도 올렸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김회장의 경영방식을 여러측면에서 살펴봤다. 첫째 그는 우리나라 일반중소기업들과는 전혀 다른 경영조직을마련했다.회사안에 소회사를 두는 독특한 전략을 폈다. 현재 한국하우톤안에는 7개의 소회사가 있다. 소회사는 15~20명으로 구성되어있다. 보통 기업의 부단위를 회사급으로 쪼갠 것이다. 이 소회사를 맡는 책임자는 부장급. 소회사별로 별도의 예산을 편성하고 상여금도 실적에 따라 다르다.이 회사의 소회사제도는 본회사가 있고 일부사업부를 독립경영토록하는 소사장제와는 완전히 다른 독특한 경영기법이다.◆ 소회사제 경영기법개발 성과 거둬김회장이 이런 소회사제를 도입하게 된 것은 기업이란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도태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제도를 택하고부터 소회사간의 경쟁이 치열해져 회사전체의 경쟁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이 소회사제는 합작회사인 미국측 하우톤사에도 도입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하우톤사는 1백25년의 역사를 가진 다국적기업.그들 나름대로 경영노하우가 있을 텐데도 김회장이 개발한 제도를도입해가 요즘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김회장의 이같은 경영기법개발은 그의 경륜에서 나온 듯하다. 그가이 특수윤활유분야에 뛰어든 것은 지난 67년 10월. 지금부터 28년전이다. 이 분야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종사해온 기업인이다. 그러나 그가 윤활유사업을 해서 요즘처럼 항상 재미를 본것은결코 아니다.지난 67년 서울 대한극장앞 일흥빌딩에 사무실을 차리고 직원3명으로 산업용 윤활유사업을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자동차공업과 기계공업이 성장하지 않은터라 특수윤활유의 수요는 너무나 적었다.1년간 한국베어링과 기아산업에 공급한 물량이 7드럼에 불과했다.2달에 1드럼의 윤활유를 팔아서는 한사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2년만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윤활유업체를 폐업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는 남달리 비감을 느꼈다.그에게 이 윤활유사업은 첫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3번째문을 닫는 사업이었던 것이다.경기중과 경기고를 나와 공군사관학교를 졸업, 파일럿출신인 그는첫사업으로 헬리콥터운송업을 택했다. 그는 언제나 하늘을 날고 싶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어떤 직업이든 하늘과 관계되는 분야를선택하고 싶었다. 고등학교친구 6명과 친인척들로부터 1구좌에2백만원씩을 거둬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이 돈을 밑천으로 프랑스의 수다비종사와 헬리콥터 도입계약을 맺었다.그러나 막 사업을 개시할 무렵 경주상공에서 국회의원을 포함한 승객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바람에 자본참여를했던 사람들이 『헬리콥터가 사고를 내면 어떡하느냐』며 모두 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윤활유시장 47% 차지그는 당시만해도 보험에 대한 상식이 없어 이들의 요구에 대항할길이 없었다. 모처럼 아이디어를 내 설립한 항공회사가 하루아침에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계속 하늘을 날겠다는 꿈은 사라졌다.그는 하늘을 포기하고 이번엔 벽지와 샹들리에를 수입하는 회사를차렸다. 특히 그동안 알고 지내던 프랑스의 젠발사가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해와 수도권지역에 공장을 물색하러 다녔다.그러나 공장을 물색하러 다니던중 윤활유수입에 참여하는 바람에벽지공장계획도 기회를 잃고 만것이다.그렇게 고등학교시절부터 꿈을 키워왔던 항공사업마저 포기하고 윤활유사업을 시작한 것인데 이것마저 문을 닫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그가 이제 일주일뒤면 임대료를 낼 수 없어폐업을 하리라고 마음먹었을 때 느닷없이 현대자동차로부터 산업용윤활유주문이 들어왔다. 이때 현대자동차가 주문한 것은 사업을 시작한 이후 계속 생산해온재고를 하루아침에 해소할 수 있는 물량이었다.이때부터 그는 더이상 하늘을 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특수윤활유분야에서만 사업을 펴나가기로 마음 먹었다.사실 특수윤활유분야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다시 빠져나가기가힘든 업종이기도 하다. 자금회전이 무척 길어서다. 원료를 수입해오는데 5개월정도 돈이 묻혀 있어야 하는데다 판매또한 3개월정도외상이기 때문이다.외상이 많이 깔려 쉽게 다른 사업으로 전환할 수 없다는 얘기다.따라서 대기업도 빈손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대기업이 손을 떼자영세업체들이 너무 많이 뛰어들어 이전투구를 벌이는 중이다.현재 이 분야에 참여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모두 42개사. 과당경쟁이 갈수록 치열하기만하다. 그럼에도 김회장의 독특한 경영전략에힘입어 하우톤은 전체시장의 약 47%를 점유한다.제품의 종류만큼 납품처도 다양해 현대 기아 쌍용 등 국내 전 자동차업체와 포철 동부제강 등 철강업체, 삼성전자 등 전자업체, 방위산업체 등에 납품한다.우지를 활용, 개발한 생분해성 작동유는 이분야에서 국내 최초로환경마크를 얻기도 했다. 열처리유 절삭유 기계유 등에 대한 기술을 개발, 중국 일본 인도 등에서도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김회장은 이 모든 것이 그가 하늘을 포기하고 윤활유에 전념한 대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