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광고시장에는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 시장과 확연하게 차이나는 특징이 한가지 있다. 대기업이 계열사로 광고대행사를두고 자사 그룹 광고는 모두 계열 대행사에 전담시키는 하우스 에이전시(House Agency) 관행이다. 실제로 국내 1∼8위까지의 광고대행사는 모두 대기업의 계열사다.국내 8대 광고대행사의 전체 취급고 중 계열사의 광고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1백40여개 전체 광고회사 중 계열 대행사는 23개 정도. 숫자는 적지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계열 대행사를 거느린 기업이 계열 대행사에 맡기는 광고물량은93년의 경우 8천1백26억원. 전체 광고시장 3조2천2백87억원의25.2%였다.하우스 에이전시 관행으로 국내 광고회사는 가만히 있어도 계열사의 광고는 자동적으로 대행해온 반면 자체 대행사를 거느린 기업의광고는 탐낼 수 없었다. 모그룹의 광고물량에 따라 각 광고회사의자체 성장 한계가 그어져 있는 셈이었다.그러나 광고업계를 경쟁 무풍지대로 만들어 왔던 하우스 에이전시관행도 외부에서 불어오는 경쟁 외풍은 막아낼 수 없었다. 개방화국제화 열풍으로 경제계 전반에 몰아닥친 치열한 생존경쟁 바람에하우스 에이전시 관행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94년말 삼성전자의 냉장고 광고가 공개 프리젠테이션(광고 시안 설명회)을 통해 웰콤이라는 회사로 넘어간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LG화학과 동양맥주의 광고 일부가 계열 대행사가 아닌 다른 광고회사의 차지가 됐다. LG화학은 지난해 7월 드봉 뜨레아화장품을 오리콤에, 우드륨바닥장식재를 서울광고기획에 맡겼다. 11월에는 동양맥주가 넥스맥주 광고를 금강기획에 의뢰했다.공식적인 삼성그룹 계열사는 아니지만 제일제당도 제일기획과의 관계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난해 7월말 육가공품목중 신제품인 숯불갈비맛햄과 피치엔나 광고대행권을 코래드에 넘긴 것. 삼성그룹과의 계열분리 이후에도 광고 전체를 계속 제일기획에 전담시켜 왔던 제일제당이 다른 광고대행사에 광고를 맡긴 일은 처음이었다.◆ 계열파괴는 주력회사 상품 살리는 길광고업계에 몰아닥친 계열파괴 현상은 계열 광고회사를 키워주는것보다 주력회사의 주력상품을 살리는 것이 더 절실하게 된 시장상황 변화에 따른 것이다. 계열회사 봐주기도 좋지만 광고가 실패할 경우 시장에서 입는 엄청난 손해를 각 기업이 감당할 수 없게된 것이다. 그만큼 시장 전반에 걸친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말이다.예를들어 조선맥주를 살린 하이트맥주는 광고가 시장상황을 바꾼획기적인 성공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하이트맥주가 처음 출시됐을때 광고를 맡았던 회사는 제일기획 계열인 제일보젤. 제일보젤은아무도 관심을 쏟지 않았던 맥주의 「물」을 치고 나왔다. 결과는대성공. 맥주시장의 판도를 변화시켰다. 안일하게 대처하던 동양맥주는 크게 당황했다. 이번에 넥스맥주를 금강기획에 맡긴 것도 타성적으로 계열 대행사에 광고를 전담시키는 관례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 물론 경쟁제품인 조선맥주의 하이트가 제일기획(삼성그룹)에, 진로쿠어스맥주가LG애드(LG그룹)에 광고를 맡겨 판로확대라는 효과를 얻은 것에 고무받아 대기업 계열대행사를 선택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광고 하나에 상품의 성패가 달렸다는 절실함이 계열대행사를 제치고 다른회사를 선택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삼성전자가 냉장고 광고를 웰콤에 맡긴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삼성전자의 냉장고는 LG전자에 밀려 늘 만년 2위였다. 이런 시장상황을 바꿔보기 위해 삼성전자는 냉장고 광고를 다른 대행사에 맡겨보기로 했다.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지난해 웰콤이 제작한 「문단속」냉장고 광고가 인기를 끌어 시장점유율이 꽤 올라간것이다. 삼성전자는 웰콤과 냉장고 광고대행 계약을 올해 1년간 연장하기로 했다.◆ 제일기획 계열파괴 주도LG화학이나 제일제당이 광고대행사를 바꾼 이유도 비슷하다. 이전처럼 인정관계에 끌려 대행사를 선정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쉽상이다. 좀더 나은 광고회사를 선택하기 위해 계열사 봐주기 관행까지파괴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지난해 중반부터 계열파괴 현상이 본격화됐지만 하우스 에이전시파괴를 주도한 것은 사실상 제일기획이다. 제일기획은 94년 9월 신광고서비스선언을 통해 업계 최초로 계열사의 광고대행권도 다른광고회사와의 공개경쟁을 통해 따내겠다고 공표했다. 그동안의 계열사 봐주기 영업관행에서 탈피하겠다는 광고업계로서는 폭탄선언이었다. 시장개방을 통해 외국 업체들이 국내 시장에 몰려오면 가장 덕보는 것은 외국계 광고회사들이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광고회사는 외국업체의 광고를 등에 업고 급성장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제일기획은 이런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계열 광고주에 의존할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자생력을 기르기위한 방책으로 자사에 경쟁마인드를 도입하기로한 것이다.당시 신광고서비스선언을 주도했던 오증근제일기획전무는 『신광고서비스 선언이후 하우스 에이전시 관행에서 탈피한 광고사례가 3건정도 있었다』며 『적다면 적은 양이지만 앞으로 2년이내에 계열사봐주기 관행을 깨는 공개경쟁이 업계 전반에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계열 대행사는 지금 당장은 계열광고주 광고물량에 안주하는 것이좋다. 그러나 시장이 완전히 열렸을 때 계열광고주가 심한 경쟁 상황에서도 계속 계열 대행사 봐주기를 고집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고민해 봐야 한다. 계열광고주와 광고회사가 함께 몰락하는 경우가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광고업계 스스로 하우스 에이전시 관행에서 탈피해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이런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