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추운 겨울에 두사람의 전직 대통령을 영어에 가두어야하는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들은 폭력으로 정권을 탈취하고국민을 탄압하고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마련하고 사사로운 부를축적했다. 어떤 사유가 있었든지간에 이러한 엄연한 사실에 우리국민이 분노하고 이미 국민의 마음속에 준엄한 단죄를 내린 것은틀림없는 사실이다.지금은 그 비자금이 뇌물인가 아닌가, 그 행방은 어디인가를 묻고내란 음모를 어떻게 했으며 참모총장을 체포하는데 대통령의 재가를 얻었는가 등에 검찰조사가 집중돼 있다.그러나 나는 그런 것에 못지않게, 아니 그런것 이상으로 광주에서의 억울한 죽음 그리고 그들의 통치기간에 수없이 되풀이된 젊은이들의 희생을 생각하고 한숨짓게 된다. 물론 멀지않아 검찰은 그 모든 것에 대해서도 조사의 손길을 뻗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만.사실 나는 1980년 5월의 광주시민 학살을 생각할 때마다 1968년3월 16일 저멀리 베트남 동북해안 가까이 손미지방 밀라이 촌락에서 일어난 사건을 되새기게 된다.밀라이는 주민 7백명을 헤아리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베트콩을 토벌한다고 하던 미국군 윌리엄 캐리중위의 명령으로 부녀자를 포함한4백~5백명에 이르는 촌민이 그날 아침에 학살됐던 것이다. 당시의뉴욕타임스 기사에 의하면 이 학살에 참여했던 한 병사는 이렇게고백하고 있다.『우리는 다만 그들을 모두(계곡에서) 밀어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향해서 자동화기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 남자들여인들 어린이들 그리고 아기들을 향해서.』그러고나서 이 병사는 밤에 눈을 감으면 그 정경이 눈앞에 떠올라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이 사건은 일어난지 20개월이나 은폐되어 있었으나 여기서 총을 발사할 수밖에 없었던 병사들의 양심적인 아픔에서 나온 고백으로 말미암아 전모가 밝혀졌던 것이다. 미국의 그다지 많지않은 양심적인저절리즘이 이 사건을 크게 보도하자 미국 육군은 압력을 가하려고했고 사건 당사자 캐리중위의 상관 메디나대위는 <타임스 designtimesp=20029>지를 상대로 1억1천만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까지 했다.정말 세계가 들끓었다. 이 밀라이사건만이 아니라 베트남에서는 여러가지 이와 유사한 학살이 있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여기에는사실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민족적 우월감이 스며들어 있었다고도 했고 그들이 유럽에서라면 그런 잔인한 행동을했겠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우리나라에 있어서 15년전 광주에서 일어난 참극을 생각할 때 그보다 12년2개월 앞서 일어난 밀라이사건을 내가 떠올리게 되는데는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때 나는 미국에 있었지만 뉴욕타임스가게재한 사설에 퍽 감동했다.「이제 미국인의 양심은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베트남 민간인의 대량살육이 전해지자 국민대중이 격노하고 정부도 여기에 비난을 가한 것은 우리 국민의 양심이 전쟁이 가져다 주는 잔학성에 지지않고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고 했다. 「만약 미국 국민이 보이는 반응이 이와 반대였다면 나라 장래를 위해서 비극적이었을 것」이라고도 했다.아직 미국은 「도덕적인 품위와 사랑의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국민을 격려했다. 그때 나는 내가 배우고 있던 교실에서 「양심이란 문명의 진보를 위하여 우리가 지불하여야 하는대가」라는 강의를 들었다. 그 교수는 계속해서 양심이란 날카로워지기도 하고 무디어지기도 하는데 개인이 속해 있는 집단이나 사회에 따라 그 어느쪽으로든 기울어진다고 했다.지금 우리는 12·12, 5·18을 심판하고 있다. 거기에 어떠한 의미에서도 사사로운 정치가 게재돼서는 안된다. 바로 거기서 「한국의양심」이 저울질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는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