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반란」. 정몽구 현대그룹회장의 전격적인 사외이사제도입 발표(신년사)에 대한 재계의 반응이다.지난해 6월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사외이사제 도입을 검토했을 때만해도 재계는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정부의 도입방침을 「백지화」시키는 통일된 힘을 발휘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동안 수면아래로잠복됐던 사외이사제가 「적군」이 아닌 「아군의 배반」에 의해새해 벽두부터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게 됐다.사외이사제는 대주주의 경영전횡을 막기 위해 대주주와 관계가 없는 사외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제도다. 사외이사는 1년에 수차례 이사회에 참석해 기업의 중요한 경영활동을 결정하는데 직접참여하고 감사활동도 한다. 결국 주식회사의 3대기관인 주주총회이사회 감사중 단순한 내부의사결정기관이던 이사회를 실질적인 외부감사기관으로 만드는 제도인 셈이다.◆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 전격 발표현재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사회가 다수의 소액주주의 권익보다는창업자나 총수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임원인사등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대한 총수의 의도를 합법화시키는 것과 크게 대조적인 것이다. 사외이사제가 「제대로」 추진되기만 하면 소유집중으로 인한 경영전횡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현대가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발표는 했지만 어떤 「작품」이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또 시행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도 많다.우선 재계와 정부는 현대의 사외이사제 도입의 「순수성」에 대해「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이는 정회장이 사외이사제 도입방침을 천명하면서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그룹 운영위원회에서 마련할 것』이라며 한발 비껴선데기인한다. 일부에서는 재계전체에 파문이 큰 중대사안을 발표하는데 충분한 사전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외이사제도입자체보다는 「2세경영체제출범」과 함께 그룹 이미지와 대정부관계를 개선하려는 카드라는 식으로 보려는 시각이다. 이는 결국제철 금융 항공 등 신규사업과 관련된 「사전정지작업」이라는 분석도 있다.재계에서는 정회장의 발표를 계기로 사외이사제 자체의 문제점에대해서도 짚어보고 있다. 현재처럼 소유구조가 창업자와 특수관계인에게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는 사외이사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대주주전횡을 실질적으로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사외이사 선임 자체에 대주주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경우 사외이사는 대주주의경영전횡을 「보증」하는 「허수아비」에 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또 사외이사제는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잘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긴급한 의사결정에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제기된다. 상장기업인 유한양행이 한때 사외이사제를 도입했었으나 외부이사들이각자 다른 의견을 고집하는등 무리가 뒤따르자 취소한 사례가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는 사외이사제를 시행하고 있는나라가 현재 미국 영국 독일등 일부 선진국에 국한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한전등 일부 정부투자기관에서 도입하고 있으나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사외이사제 도입방침을 적극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현대의 사외이사제 도입은 경영혁신의 일환으로 열린 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것』이며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기업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존중해야 한다』(공병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는 얘기다. 상당수의 경영학자들도 회사의 건전한 발전을위해 사외이사제 도입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 재계일각에서는 비자금파문으로 얼룩진 재계 위신을 바꾸기 위해 사외이사제 도입 같은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열린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 대응해야현대가 실제로 사외이사제를 도입하고 이제도가 성공할 경우 다른그룹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는 것도 부정할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재계가 「아직 시기상조」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현대의 사외이사제 도입이 몰고올 파장을 분석하느라 부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삼성이 선도했던 계열분리등 구조개편작업이 재계전체로 확산됐듯이 재계의 향도임을 자처하는 현대그룹이 선수를 치고 나온 만큼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현대가 사외이사제를 통해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소유권 집중에 의한 폐단을 고쳐 나갈 것인가.특히 「중요한 경영전략을 이사회나 주주총회같은 법적기관을 통하지 않고 기업총수의 말 한마디로 결정되는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사외이사제를 도입한다고 해도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시각을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가. 사외이사제 도입자체보다는 앞으로 이같은 도입목적을 얼마나 실효성있게 충족시킬수 있는 시행방안을 마련하고 또 시행후에 어떻게 성공적으로 착근시키고 재계로파급시키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로 남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