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designtimesp=20040>이란 영화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홍콩의 왕가위 감독은영화평론가 이정하씨(34)가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인중의 한 명이다. 최근 이정하씨는 <타락천사 designtimesp=20041> 홍보차 한국을 찾은 왕가위 감독을 만나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왕가위 감독으로부터 『당신이 내게보낸 충고어린 편지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대해 이정하씨는 『앞으로도 당신이 영화를 만들 때마다 계속편지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감독에게 편지를쓰는 사람. 그가 영화평론가 이정하씨다.『고등학교때부터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별로 없었어요. 성격이 낙천적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하고 싶은거다 하고야 못살지만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결심했죠.』이런 성격 때문에 그는 2번이나 대학에 진학하고도 대학 졸업장은한번도 받지 못했다. 80년에 외국어대학교 불어과에 진학했으나 몇달 다니다가 그만두고 부산 집으로 내려왔다. 학과 공부에 별 흥미를 못 느껴서였다. 부산에서 3년간 지내며 영화에 흥미를 가지기시작했다.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치면서 현실의 문제를 강렬하게담을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84년에 연세대 신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는 뒷전이고 「영화패」라는 영화서클을 만드는 일에 더 골몰했다. 결국 두번째로 선택했던 신학이라는 학문도 그만두고 무작정 영화판에 뛰어들었다.『지금이야 영화가 인기있는 분야가 됐지만 제가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80년대 중반만해도 영화쪽 일이란게 거의 굶는 직업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영화에 미쳐서 무작정 뛰어든 사람들이었죠.』◆ 상상력으로 현실 담을 수 있는 분야이렇게 영화계에 몸담게 됐기 때문에 처음부터 영화평론가가 돼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또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지금이야 각종 언론에서 영화평론을 비중있게 다루지만 당시만해도 영화평론을 발표할지면마저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정하씨도 평론에서부터 출발한 것은 아니다. 8㎜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기도 하고 연출작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91년부터다. 『영화평론을 앞으로의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서가 아니라 평론도 영화에 대한 발언의 하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이정하씨는 아직도 영화평론을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론가라는 명함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글을 대량으로 생산하는게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외에도 영화평론가가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 영화 기획을 담당할 수도 있고 감독이나 배우 등현장의 영화인들이 신경쓰지 못하는 영화법에 대한 연구나 국제영화제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 등 영화평론가가 할 일은 많은 편이다.현재 이정하씨는 그의 말에 의하면 돈이 되는 글과 안 되는 글 모두 합쳐 한달에 2백50장 정도의 원고를 쓰고 있다. 일주일에 60매정도씩 쓰는 셈. 영화는 일주일에 극장에서 3편, 비디오로 2편을본다. 그러나 영화 보는 일이 재미는 없다고. 『편안한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보기 때문』에 즐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화 보는 일이 재미없다면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니냐고묻자 『대상에 대한 고민과 진지함이 영화 매니아와 비평가의 차이가 아니겠느냐』고 받아친다.누구나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영상시대. 그는 영화 매니아들이판치는 세대가 너무 갑작스러워 조금은 당혹스럽다고 말한다. 『영화를 좋아하는 것 자체만 가지고 뭐라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영화란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을 대상화시키는 소외의 한 형태라는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상업주의 휩쓸리지 않는 평론써야영화를 좋아하고 보되 왜 좋아하고 보는지에 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영화 매니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입장이다. 영화에 대해 명확한 자기 견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가되기 위해서도 그는 우선 인간과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영화 속에는 한 시대와 인생에 대한고찰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정하씨는 영화도 한 시대나 현실에 대한 대안이 제시돼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지금 세계 영화계를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는 대부분이 앞뒤가딱딱 맞아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어떠한 인생도 그렇게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아요. 삶은 불가해하고 어지럽고 고난은 계속됩니다.』이해할 수 없는 삶을 담기 위해 새로운 형식과 방법을 시도하는 영화, 세상과 사람을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영화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영화에 대한 진지함의 깊이만큼이나 이정하씨의 평론은 신랄하다.그가 한 언론에 발표한 20자 영화평을 살펴보자. 「쇼걸-섹스와 댄스를 구분 못한 폴 버호벤 감독의 예정된 실패작」「주홍글씨-데미무어…기억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인생과 세상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대안적인 영화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따뜻하다. 대표적으로 박광수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대해 그는 「한국영화의 물줄기를 바꿀 위대한 독립영화」라고 격찬했다.『평론을 쓸 때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쓰는 것은 아닙니다.다른 여러 작품과 비교해 전체적인 질이 어떤가를 볼 때도 있지만한 감독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죠.』좋아하는 감독일수록 신작이 이전 작품과 비교해 기대 이하일 때는더욱 실망스럽고 비판적이 된다고. 글을 쓸 때 영화판에서 알게된사람과의 개인적인 관계에 연연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업주의에 휩쓸리지않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화평론이 신문이나 잡지에 2백자 원고지10장 내외로 게재되는 저널리즘 비평인데다 개봉에 맞춰 발표되기때문에 평론에 따라 영화 흥행이 좌우되는 경향이 많다. 그만큼 상품화할 가능성도 큰 셈. 또 주로 언론에 발표하다 보니 『시의성에맞춰 마감에 쫓기며 쓰는 경우가 많아 분석력을 갖춘 설득력 있는글을 소화하기에 힘든 면이 많다』고 고백한다.영화 매니아들이 가장 관심있어 하는 부분, 어떻게 하면 영화평론가가 되고 영화평론으로 먹고 살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다른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영화평론가가 되기 위한 어떤 특별한 코스도 없을 뿐더러 평론만으로 먹고 살기는 힘들다』고 잘라말한다. 영화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자연스레 평론할 기회가 주어질 뿐 평론을 생업으로 삼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우리 사회에는 출세가 보장된 몇가지 길이 정해져 있고 대부분의사람은 그 정해진 길에서 이탈될까봐 노심초사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정하씨는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삶은 아무리 달콤하고 남들이 보기에 좋아도 비극적이라는 생각으로 정해진 길을 벗어난 대책없는 사람이다. 『무슨 일을 하든 보장된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욕망, 그리고 그것에 대한강렬한 집중을 가진 사람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죠.』삶에 대한 열정을 좇다보니 어느 순간 영화평론가가 돼 있더라는말로 이정하씨는 인터뷰를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