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을 구입할 때 권장소비자가를 그대로 다 주고 사다가는 바보취급을 당하기 쉽다. 화장품을 상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화장품은 정가보다 최소한 20%, 많으면 50∼8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하는 제품이란 인식을 가지고 있다.그만큼 화장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크다. 바로 옆에 자리한 화장품 매장끼리도 같은 제품을 다른 가격에 팔고 있다. 가격질서가 엉망인 셈.화장품 가격이 지역이나 매장마다 천차만별인 일차적인 책임은 화장품업계에 있다. 화장품 제조업체가 1백여개 이상 난립하면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자 화장품회사들은 흔히 말하는 「밀어내기식」판매를 선호하게 됐다. 밀어내기식으로 화장품을 대량으로 매장에떠맡기다 보니 화장품은 정상 출하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매장에 넘어가게 되고 실질 판매가는 자연히 권장소비자 가격보다 훨씬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할인폭이 클수록 소비자는 유리하지만 문제는 할인율이 권장소비자가와 너무 차이가 크다 보니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날로 커진다는 점.가격에 대한 불신은 국산 화장품의 질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연결돼국내 화장품업체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외국 화장품의 공세가 날로 거세지면서 화장품업체끼리의 과당 할인경쟁으로인한 가격 무질서는 국내 화장품업체의 경쟁력을 더욱 떨어뜨리는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화장품업체들이 최근 공통적으로주장하는 대안이 「오픈프라이스」 제도다. 오픈프라이스제란 상품을 소비자에게 파는 판매업체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화장품업체는 약사법 규정에 따라 화장품에 권장소비자 가격을표시하고 있다. 가격 결정권이 제조업체에 있는 것이다. 화장품업체는 바로 이 부분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권장소비자가는 생산자중심의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가격정보를 알려줌으로써 소비자를보호하는 측면이 컸으나 시장이 소비자 위주로 바뀌었을 때는 오히려 역효과만 나타난다는 것.현재 화장품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공급과잉 상태다. 1백개 이상의 제조업체와 2만개 이상의 소매점이 치열하게 경쟁하다보니 제품의 질보다는 가격으로 싸우게 됐다. 오히려 높은 할인율로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권장소비자가를 과다하게 책정하는 일도빈번해졌다.◆ 소비자, 가격불신…품질불신으로 번져태평양화장품 관계자는 『현재의 과다공급 상황에서는 제조업체가유통가격을 통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미대형 화장품 소매점들이 화장품 회사나 대리점으로부터 상품을 매입한 가격에 적절한 이윤을 붙인 자체 판매가격을 화장품에 표기하는 상황에서 권장소비자가격은 소비자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는 지적이다. 화장품에 대한 가격 결정권은 이미 실질적으로 유통업체에넘어간 셈이다.현재 화장품 제조업체들 모임인 대한화장품공업협회는 약사법을 관장하는 보건복지부에 권장소비자가 표시제도를 개선해 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업계는 오픈프라이스제를 빠르면 올 상반기중에 시행하기를 바라고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업계의요구를 받아들여 화장품 유통실태를 조사한 후 가격표시제도 개선을 적극적으로 검토한다는 입장이어서 화장품업계는 오픈프라이스제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시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오픈프라이스제 도입은 단순히 권장소비자가격을 폐지하는 것이 아니다. 가격결정권이 유통업체로 넘어감으로써 시장 자체가 유통업체 중심으로 재편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대형 할인매장을 중심으로가격파괴 현상이 확산되면서 권장소비자가는 힘을 잃고 있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할인점 백화점 슈퍼마켓 편의점 등 그 제품이 어디에서 팔리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유통우위의 시대가 이미 실질적으로는 도래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