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장이 되신지 달포가량 지났습니다. 취임사에서 뭔가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을 것같은데 어떤 부분을 강조했습니까.진로는 올해로 창사 72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나이든 기업이지요. 경영환경이 날로 어려워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발전을 지속할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합니다. 좀더 공격적이고 성장지향적인 경영으로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한경Business designtimesp=20590>가 개발한 기업연령 지표상으로는 진로의 나이가40세정도로 나타났습니다만 자가진단은 어떻게 내리고 계십니까.주류업종인데다 창립역사가 긴 까닭에 보수적입니다. 그러나 국민소득증가에 따라 마케팅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1만달러 소득시대가되면서 생활이 마이라이프위주로 옮겨가고 주류시장에서는 고급지향성과 가정 건강중심이라는 흐름이 보이고 있습니다. 건강을 생각하면서 저알콜주를 약간씩 마시기 때문에 외형적인 성장은 어느정도 한계에 다다른 감입니다. 신규비즈니스와 시장개척 새로운 제품의 개발이 필요하다는 얘깁니다. 이를 위해 어떤 형태로든 조직에활력을 불어넣어야 겠지요.▶ 외형 목표를 소개해 주시지요.우선 매출에서는 수년내로 1조원을 달성하고자 합니다. 국내시장도시장이지만 수출이 뒷받침해줘야 하는데(일본에서의 성공으로) 자신감이 생겼으니 1억달러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외국에 많이 내다 파는 만큼 외국술도 어느정도는 팔아줘야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또 시장개방으로 조만간 외국주류가 본격적으로 유입될 것이기 때문에 진로는 이 시장에서도 최소1천억원의 매출은올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일본이외지역까지 합쳐 지난해 약 3천만달러어치를 수출했습니다.그동안 기존제품 위주로 공략해온 일본에 대해서는 신제품과 유통혁신을 통해 시장을 넓혀갈 방침입니다. 미국 중국 등 기타지역에서는 서두르지 않고 꾸준히 노크해 나가겠습니다. 주류수출이라는것은 다른 상품과 달리 문화를 함께 판매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아무리 질좋은 보드카를 만든다고 해도러시아산 보드카의 지위를 따라잡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동양적인 컬쳐에 호소할 수 있는 술을 만들어 시장을 열어갈 계획입니다.▶ 최근에는 도수 낮은 술을 선호하는 쪽으로 소비성향이 바뀌고 있습니다만 임페리얼은 대단한 히트인 것 같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그동안 한국의 위스키는 서양의 음주문화를 고려한 스탠다드위스키였습니다. 한국의 음주문화인 마시는 문화를 무시한 술이었습니다.임페리얼은 바로 이같은 우리문화에 맞는 브랜딩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또 하나는 가격인데 임페리얼은 12년으로 업그레이드된 위스키로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Acceptible) 가격에서 판매를 결정했다고봅니다. 그러고도 회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을 거둔 것이 사실입니다.▶ 광고나 마케팅 등 다른 측면에서 분석할 수는 없을까요.마케팅이라는 것은 제품의 우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품을 보완할 수는 있지만 마케팅이 제품의 단점을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광고도 마찬가지고요. 임페리얼은 수준 높은위스키로 음주문화를 한단계 올리겠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외국 양주시장이 상당히 개방돼 있습니다. 진로의 이미지가 좋아 임페리얼도 호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산토리올드라는 위스키가 일본시장을 휩쓴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미국시장에 갖고 들어갔지요. 1천만달러이상의 광고예산으로 대대적인 공세를 폈는데 결과는 대패였습니다. 역시 위스키는 스카치위스키라는 인식이 뿌리깊게 박혀있습니다. 물론 임페리얼브랜드로다른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부분적으로 가능하지만 큰 시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릅니다.▶ 일본소비자들은 맥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데 진로소주의 성공요인을 어디서 찾고 계십니까.우선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맛입니다. 한국소주는 일본것보다 담백하고 뒷끝이 좋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시장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걸렸지요. 79년에 처음 진출했으니까요. 그후 지속적으로 일본의딜러(유통업자)들하고 호흡을 같이 했다는 점이 중요한 것같습니다. 몇십명 몇백명단위로 한국에 초청해서 문화와 진로의 실상을보여줘왔습니다. 더큰 유통업체에서 높은 마진을 주겠다며 제휴선을 바꾸자는 제의가 많이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일본시장에서성공하려면 좋은 파트너와 손잡고 일단 제휴한 이상 의리를 지키는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역시 장기적인 전략이 주효했다는 말씀이군요.그렇습니다. 사실 다른 회사가 일본시장을 노크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잘 안된다 싶으면 금방 손을 들고 나와버렸죠. 우리는 사람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김태훈 일본지사장만큼 현지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도 드물고 우리와 거래하는 유통업체만큼 훌륭한곳도 없다고 여겼습니다. 또 실제로 그렇고요.▶ 일본지사에 연구개발(R&D)요원을 상주시키겠다는 발표를 한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해외시장에 파고든다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선행투자를 전제로하고 있습니다. 그나라의 말을 할 줄알고 문화를 이해하면서 현지사정에 밝아 제품수요와 소비자욕구의 변화방향 등을 알 수 있는인력을 많이 갖고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진로 역시 아직까지 이런 충분한 브레인풀(어느 분야에 정통한 인력집단)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해마다 몇 명씩 제휴사에 기술 판매교육차원에서 사람을보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일본시장에 관해서만큼은 브레인풀이라고할만한 조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진로소주가 급성장하는데 따라 일본업체들이 경계의 눈길을 던지거나 견제하지는 않는지요.경제규모가 워낙 큰 나라이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소주 좀 팔았다고견제가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판매량이 더 커지면 그럴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전에 제휴관계를 더욱 강화해야겠고국제화시대에 맞게 수입도 해줘야 합니다. 아직은 시기상조지만 우리가 판매한만큼 일본제품도 사다가 팔아주고 싶습니다. 또 소주이외에 다른 제품을 가지고 많은 친(親)진로적인 기업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세계화란 차원에서 일본시장에 이어 중국에는 소주공장을 세웠는데수지타산이 맞는지요.이제 시작한지 3~4개월 됐습니다. 중국시장에서는 조급한 기대가무리입니다. 일본경영에서 의리를 중시해야 한다면 중국에서는 역시 만만디(천천히 한다는 뜻)입니다. 한해 50만상자정도의 판매를예상하고 있는데 한국으로 치면 한개 도매장에서 취급하는 물량입니다. 현지여건도 고급화나 품질위주의 마케팅을 해나갈 수 있는곳도 아니고 잠재력이 있는만큼 시장을 알아간다는 취지에서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장기전략이 필요한 곳입니다.▶ 중국말고도 염두에 두시는 해외시장은 없습니까.힘을 쓰는 곳은 미국시장입니다. 그러나 미국시장은 술에 있어서는규제가 많은 곳입니다. 높은 세금이 붙기 때문에 판매가격도 높아집니다. 올해 2백만달러어치의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딜러들이 현지에서 판매하면 1천만달러시장이 됩니다. 동남아가 급속히성장하고 있으니 앞으로 찬스를 봐야겠지요.▶ 각그룹이 21세기상을 어떻게 세워나갈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진로는 어떤가요.진로입장에서도 21세기란 주제는 고심하고 있는 부분중의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주류업으로서의 진로는 점차 취약해지고 있습니다.주류업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것이지요.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미지투자를 해야 하는데 현재의 수익력으로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일본산토리의 산토리음악당이나 미국 안호이저부시(버드와이저 제조사)의 씨월드같은 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보십니까. 간단해요. 수익이 생기니까 가능한 것이지요. 이들기업의 재무제표를 보면 경상이익률이 10~15%(세후)가 됩니다. 우리나라의 재경원에서는가격심사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 경상이익률 3%선입니다. 정부의 기본적인 컨셉이 술팔아서 혼자 이익보고 주주들 배당이나 하지 않는냐는 식입니다.▶ 어려움이 많을 것같습니다. 다른 사업상의 애로사항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역시 각종 규제지요. 가격은 시장수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물가를 고려해서 묶어버리고 디자인을 개선하기 위해 용기를 바꾸려고만 해도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선진국은 주류용량에 대해세금을 붙이는데 반해 우리는 종가세(가격이 높을수록 세액이 많아지는 세금)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포장개선을 하려해도 세금이 소비자몫으로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지난해 논란을 빚었던 주세법 파동에 대해 느끼신 점도 많을텐데요.국회에서도 위헌시비가 있었지만 관점을 어디에 두는가의 문제인것같습니다. 경쟁촉진 소비자선택권에 힘을 줄 것인가, 균형발전영세기업의 보호라는 차원에서 무게를 둘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어려운 문제지만 좀더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유통업자들도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데 안팔리는 물건을갖고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입니까. 안팔리는 물건을 50%라는 마켓셰어(시장점유율)제한으로 묶어 창고에 쌓아놓게하는 것은 누가 봐도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선거가 끝나고 분위기가 차분해지면 해결되겠지요.정리·박재림 기자 사진·안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