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교외로 한시간 반정도 가다 보면이바라기현의 가시마시에 도착한다. 일본의 작은 공업도시다. 일본에서 진로소주를 성공시킨 숨은 공로자중의 하나인 가시마주류판매회사가 자리한 곳이다.가시마는 북해도를 제외한 일본 전지역에 진로소주를 유통시켜온대도매상. 이 회사가 취급하는 전체 술중에서 진로소주를 비롯한진로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40%가 넘는다.이 회사가 진로와 인연을 맺은 때는 77년. 켄자부로기시네사장(72)의 제안으로 시작된 인연이었다. 기시네사장은 77년한국을 방문해 우연히 진로소주를 맛보고 그 맛에 반해 무작정 진로를 찾아가 판매계약을 맺자고 했다 한다.『이 맛이면 일본에서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일본이 한국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다는 뜻에서라도 진로를 일본에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2년에 걸쳐 진로소주의 맛을 일본인 입맛에 맞게 개량하고 병과 로고 디자인도 새로 개발한 뒤 79년부터 일본 판매를 시작했다. 막상진로소주를 일본에 수입해 들여오긴 했지만 초기에는 이만저만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다. 들여온 물건이 하나도 안 팔린 적도 많았다. 기시네 사장은 『왜 팔리지도 않는 물건을 수입하느냐는 종업원의 불평도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 시절 기시네사장이마음속으로 혼자 곱씹은 말은 「돌위에서 3년」이라는 일본속담이었다. 3년을 참고 기다려봐야 성과를 안다는 뜻이다. 초기에 기시네사장의 속을 앓게 만들던 진로소주가 88년 이후에는 가시마를 성장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하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기시네사장의 진로 사랑은 유별나다. 진로재팬의 김태훈지사장은기시네사장을 「진로 직원보다 더 진로를 아끼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다. 가시마가 취급하는 술이 수십가지가 넘는데도 사장실의 장식장에는 진로소주와 카스맥주 매실주 인삼주 등 진로제품만이 진열돼 있다.◆ 장식장엔 진로제품만 진열기시네사장의 진로 사랑은 단순히 진로소주를 열심히 파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자신이 진로소주를 상당히 즐겨하고 잘 마신다.『아직도 7백㎖짜리 소주 한병정도는 거뜬히 마신다』고 밝힐 정도. 국내에서 주로 판매되는 소주는 3백60㎖짜리. 우리나라로 치면소주 2병 정도는 마시는 셈이다. 일흔이 넘은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하며 술을 즐기고 경영 일선에서 일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기시네사장은 『일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이 짧은 대답속에서 일본 사무라이정신을 느낄 수 있다. 사무라이를 연상시키는 그의 모습은 일하고 있는 분야가 주류도매업인 탓도크다.일본은 상업이 발달한 나라다. 유통업체와 도매상의 파워가 세다.특히 주류도매업은 전통적인 일본 상인정신을 지키고 있는 지극히일본적인 분야. 기시네사장 자신도 아버지의 주류도매상을 물려받기 전에 다른 도매상에 가서 몇년간 도제식으로 훈련을 받았다고고백한다.일본의 상인정신이 남아있는 주류도매상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기때문에 외국업체가 일본에 발붙이기는 유난히 어렵다. 세계적인 맥주인 버드와이저도 일본 주류시장의 두터운 벽은 넘지 못했다. 기시네사장이 『앞으로 진로가 일본에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처럼 도매상과 협력하며 신뢰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지적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최고경영자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혼자 술을 곁들여 식사를 하며 생각에 빠진다는 기시네사장. 한국에 반하는 일본인이 많은 만큼 일본에 반했다고 고백하는 한국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말하는 지한파다. 『어저께 홋카이도에 갔는데 거기서도 진로소주를 마시는 사람이 많더라』고 자랑하는 진로맨이기도 하다.도쿄=권성희 기자·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