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유의 보수적인 영업전략이 많이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비자금 파문 등으로 뼈아팠던 지난해의 투자경험이 무엇보다 몸을 움츠리게 하는 것이다.94년만해도 은행은 2조2천3백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수, 증시 최대매수세력으로 위세를 떨쳤다. 92년과 93년에도 각각 2천7백억원,4천5백억원의 매수우위를 보여 은행은 주가에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다. 「피스톨 박」이란 펀드매니저가 황제처럼 군림하던 때도그 즈음이었다.그러나 이같은 순매수규모가 지난해엔 4천1백86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올들어선 지난 1월 5백38억원의 순매수를 보였으나 2월에는 다소 주춤해지는 양상이다. 증시관계자들은 증권사의 주식매도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투신 등이 보장각서 파문에 따라 적극적으로 나서길 꺼리고 있다. 과거의 보수적인 모습으로 되돌아 갔다고나 할까.은행권은 우선 당분간 관망하자는 입장이다. 주가가 오를 만한 상황인데도 앞을 전망하기가 어렵다(손원일 조흥은행 증권투자팀장)는 시각들이 저변에 깔려있다는 얘기다. 「감을 못잡겠다」는 표현이 설득력을 가지는 상황이다. 비관적인 전망 또한 없지 않다. 한한수 한일은행 증권운용실장은『변수가 너무 많다. 선거후 정국불안도 우려되고 경기연착륙도불투명한 상황』이라며 운용규모를 늘릴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밝혔다.은행들의 이같은 조심스런 태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주식평가손에서 상당부분 비롯된 측면이 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 신한 등 7개 시중은행의 주식투자규모는 신탁계정까지 포함해 8조원정도. 그러나 장부가와 현시가를 비교, 산출된주식평가손은 무려 1조4천억원을 넘는다. 본업인 예금장사를 통해번 돈을 주식투자에서 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미실현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때문에 주주에게 배당을 하지 못하는 은행들도 무더기로 생겨났다. 주식투자 운용한도는 수천억원이나 여유가 있지만 평가손이 줄어들어야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제일은행 배상천 증권투자부장). 이로인해 은행은 현수준의 주식투자규모를 유지한 채 당분간 종목별 교체매매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은행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증시상황이 어떻게전개되느냐가 관건이 된다는 지적이다. 원종완 서울은행 증권부장은 은행을 둘러싼 여건을 감안할 때 적극적으로 투자할 상황은 아니라면서도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주가가 회복되고 평가손도 함께 줄어든다면 주식투자가 기지개를켤 수도 있는 것이다. 박도원 국민은행 자금부장 또한 주식투자를 늘릴 계획은 서 있지 않으나 장세에 따라 얼마든지 수정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더구나 회사채 수익률이 12%안팎 수준으로 하향 안정세를 보임에따라 은행들은 마땅한 자산운용처를 찾지 못해 무척 고민스러워 하고 있는 터다. 금융채 1년물의 수익률이 12.2%를 나타내고 있는상황에서 은행들은 1년짜리 특정신탁의 수신금리를 12.5%수준으로가져가고 있다. 금리자유화이후 치열해진 경쟁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때문에 「하이리스크」이면서도 「하이리턴」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시장이 상승세로 돌아선다면 이는 은행권의 움직임을 후행적으로활발케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은행들이 올해 유망종목으로 꼽고있는 종목들은 은행별로 다소 차이가 난다.조흥은행 손부장은 삼성전자 포철 한전 등 블루칩이 여전히 유효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제시했다. 한일은행 한실장은 업종대표주가끌고 가는 장세가 펼쳐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오진석 외환은행 자금부점장은 SOC(사회간접자본)관련주나 정보통신주들이 유망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