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우리 증권시장의 역사는 크고 작은 숱한 「파동」으로얼룩져 있다. 투자자들은 이 과정에서 일희일비해야만 했다. 국내증권시장이 채 자리를 잡기도 전인 시절에 이미 국채파동으로 떠들썩했고 중동건설붐을 타고는 건설주파동도 빠지지 않았다. 올해 개설되는 주가지수선물의 전단계라고도 할 수 있는 청산거래 시절엔증금파동과 한전주파동이 터지기도 했다.「시지푸스 왕」의 염원처럼 끝없이 밀어올리고픈 주가이건만 한차례 가쁜 숨을 쉬고 나면 또다시 굴러 떨어지고 마는 것이 주식시장의 속성이기도 하다. 우리 시장이 겪어온 각종 파동을 더듬어 보더라도 끊임없는 「윤회」가 그대로 살아 꿈틀거린다.첫 테이프를 끊은 것은 바로 「1·16 국채파동」이다. 지난 57년9월 정부에서 신년도 예산안과 함께 1백80억환 규모의 11회 국채발행안을 국회에 제출한지 며칠후 세수 1백53억환의 외환특별세법안을 제출한데서 발단. 당연히 세법안이 통과되면 11회 국채가 발행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11회 발행이 불투명할 것으로 본투자자들은 채권의 품귀현상으로 오히려 값이 뛸 것으로 예상해 대량 매수에 나선 반면 발행될 것으로 본 세력들은 반대로 10회 국채를 대거 처분하는등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이어 정부에서 국채발행을 취소하자 10회 국채값은 폭등세로 치달았고 이같은 과열양상을 잠재우려 다시 원안대로 발행키로 하자 58년 1월 16일 후장초반부터 급등락을 거듭했다. 당일의 매매주문이 폭주해 거래대금을못내는 사태가 벌어지고 급기야 당일분 매매를 모두 무효화시키는사태를 빚었던 것이다.이어 62년엔 「5월 증권파동」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5·16혁명 이후 증권거래법의 제정을 앞둔 증권가에선 증권거래소의 조직형태를두고 논란이 많았다. 특히 주식회사형태가 될 것으로 예상한 증권업자들이 증권거래소 출자증권(大證株)의 매점을 시작했다. 연말로가면서 대증주에 대한 매기는 여타 주식으로 확산돼 한국전력 주가도 연중최고치를 기록했다. 62년 들어서도 거래는 더욱 늘어나고5월말엔 이들 주식을 사들인 당시의 통일 일흥 동명증권 등 3개사가 결국 자금부족으로 결제자금중 3백52억환을 납부하지 못해 5월파동은 본격화됐다. 그렇게 60년대를 마감한 것은 아니다. 바로69년말부터 71년 8월에 걸친 「증금주파동」이다. 당시 우리시장의거래는 일종의 정기선물거래인 청산거래가 주종을 이뤘다. 매매체결 때 매매대금의 일부인 증거금만 납부하고 2개월정도 후에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이같은 청산거래의 후유증이 심각해 69년 2월1일청산거래는 폐지되고 보통거래제도가 실시됐다. 이어 각종 제도보완책이 뒤따랐지만 끝내는 증금(증권금융)주를 대상으로 한 책동전이 벌어져 한차례 혼란을 겪었던 것이다.어렵사리 70년대를 그냥 지나는가 싶던 차에 79년엔 「건설주파동」이 고개를 들었다. 중동건설붐과 함께 77년부터 증시는 호황국면을 맞았다. 그해 주가지수는 한해동안 27.8%의 상승률을 보였고 특히 건설주는 1백35.4%나 치솟았다. 여세를 몰아 78년 들어선 건설주 주가가 최고치를 보였던 6월 28일까지 연초대비 99%나 뛰어오르며 과열양상을 빚었다. 곧이어 8월 중순부터 증권거래세 신설방침과 금융긴축 등 악재가 겹치면서 건설주 주가도 하강곡선으로 돌아섰다. 79년에는 2차 석유파동까지 불거져 장기침체를 면치 못했다.국민주형태로 88년6월과 89년8월에 각각 상장된 포항제철과 한국전력 등 국민주는 또 어떤가. 당시 주식시장이 대세상승을 보여 오던터라 주가상승만 보아온 투자자들. 이들은 사돈의 8촌 자금까지 동원한 것은 물론 소팔고 땅팔아 국민주를 매입했건만 상장후 주가는지지부진해 한숨쉬는 투자자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담보부족계좌 일제정리로 「깡통파동」겪어89년 3월 21일엔 장중에 사상 처음으로 종합주가지수가 1,000선을돌파하자 증권사 객장 여기저기선 샴페인을 터뜨리는 자축연이 벌어졌다. 4월 1일엔 종가로도 4자릿수를 기록했건만 이것도 잠시,지수 사상최고치가 대세하락의 신호탄일 줄이야.대세하락기를 맞아 어디가 바닥인지 알 수 없던 시절인 90년 10월10일엔 신용투자자에 대한 담보부족계좌 일제정리 조치가 내려져「깡통계좌파동」을 겪어야 했다. 주식을 빨리 사라는 8·24증시대책으로 92년 8월을 밑바닥삼아 다시 지수는 상승세로 꿈틀댔지만주가양극화에 투자자들은 또다시 울분을 터뜨려야 했다. 일반인들이 많이 가졌던 대중주의 하나인 은행주 주가는 그제나 지금이나별반 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가히 「은행주파동」이라고 할만 하다. 94년 하반기엔 기업매수합병(M&A)이 시장의 관심권으로 들어오면서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들이 폭락사태를빚기 시작했다. 보통주에 비해 10%정도 밑진 수준이던 우선주주가가 40%이상 격차를 보이게 된 이른바 「우선주파동」이다.잊을만하면 터지는 비운의 파동에 막차를 탄 투자자들은 한결같이파경을 맞아야 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지나간 파동들을 뼈아픈 교훈으로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이제 우리 투자자들은 기관이나 일반인을 가릴 것 없이 선진증시에 걸맞는 투자전략을구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