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 들어 우리나라에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했다. 한강을잇는 성수대교가 끊어지고 대구의 도심 한가운데서 가스가 폭발하고 서울 강남의 최고급백화점이라는 삼풍백화점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지난해에는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도 많았다. 7월 씨프린스호에 이어 9월에는 유일호, 11월에는 호남사파이어호에서 기름이 유출돼 인근 바다를 오염시켰다.사고뿐만이 아니라 사건도 많은 해였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대통령의 비자금이 공개되면서 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사태를 몰고왔고 비자금 사건과 연루된 기업들의 면모가 드러남으로써 국내 기업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되기도 했다.90년들어 여러 위기상황을 만난 기업들이 보여준 반응은 대부분 「왜 하필 우리인가」였다. 위기에 빠진 기업을 보는 다른 기업의 시선은 「우리 기업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카타르시스적인 안도감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운나쁜 기업이 직면하는 어쩔 수 없는 우연이라고 여기기에는 위기의종류와 발생가능성이 너무 많아졌다. 어떤 기업이든 사고에 노출될수 있다. 천재지변을 비롯한 전쟁, 정치적 변혁, 불매운동과 같은소비자와의 마찰, 산업스파이 등의 범죄행위, 환경위험, 노사분규,대형 사고 등 위기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위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기업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국내 기업들은 위기관리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위기관리하면 사후관리만을 생각한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후에 위기관리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 기업의 경우 돌발적인 대형사고가 발생했을 때를 준비해 다양한 위기관리 방법을 마련해 두고 있다.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각종 사고에 대비한 종류별 위기관리 매뉴얼을 세우고 매뉴얼에 따른 가상대처 훈련 등으로 사전 위기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작은 것도 숨기면 커진다’ 잘못을 시인하라사건이 발생한 후에는 사건진상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공개를 통해여론을 이성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다국적 기업들은 위기에 대처해 나가기 위한 첫째 원칙으로 「작은 것도 숨기면 커지고 큰 것도 밝히면 작아진다」를 꼽는다. 사건의 개요를언론에 공개하고 잘못을 시인하는 것을 제일의 위기관리 원칙으로삼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만났을 때 이와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국내 기업은 일단 커뮤니케이션을 피하고 보자는 식이다. 이것은 위기상황에서는 최악의 선택이다. 커뮤니케이션과의 단절은 그 기업에 대한 불신과 의혹만을 키울 뿐이다.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태에서 해당 기업이 그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언론은 주변에서 듣는 몇몇가지 사실을 엮어 추측으로 기사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고 이러한 기사는 대부분 그 기업에불리한 내용이 되기 쉽다. 위기는 특성상 언론을 집중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경영진은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 자체를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에따른 PR도 책임져야 한다.93년에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사고 직후 아시아나항공측이 보인 반응은 그런 면에서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사고소식을 접한 후 즉시 언론에 탑승자 명단을 발표했다. 이어 사고여객기의 기종과 조종사의 인적사항 및 조종경력, 항공기에 대한일반 상식 등을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추측에 의한 기사가 나가지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또 착륙지점이었던 목포공항의 문제점을 언론에 지적함으로써 사고의 원인이 단순히 아시아나항공에만 있는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회적으로 알렸다.아시아나항공의 예에서 보듯 위기는 언론을 통해 기업의 프라이버시를 빼앗고 기업을 공중의 관심하에 드러내 놓는다. 일반인들은기업의 위기상황과 직접 접촉할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와관련된 정보와 해석을 언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때 언론은보도를 통해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는 힘과 한 기업의 경영능력을테스트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위기 PR커뮤니케이션이 위기관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도 이 때문이다.PR커뮤니케이션 계획에서 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일은 PR실무자를주축으로 커뮤니케이션 통제센터를 조직하는 일이다. 커뮤니케이션통제센터는 위기 발생 시점부터 위기에 관한 모든 정보를 관리하고책임지는 임무를 맡는다. 경영층은 직원들에게 언론이나 일반 시민들로부터 긴급상황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모두 커뮤니케이션 통제센터로 위임하도록 교육하고 커뮤니케이션 절차에 대해 훈련을 실시한다.위기관리 매뉴얼에는 위기가 지속되는 기간에 취해야 할 모든 커뮤니케이션 절차와 기업에 관한 배경정보, 임직원의 사무실 위치와공장 위치, 기업과 관련된 중요한 통계 등 자료 제공에 필요한 승인절차를 분명히 명시해 둬야 한다.통제센터는 언론매체에 협조하기 전에 사소한 것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자료가 수집되면 보도자료와 기업의 공식 성명을 경영진 및 법률고문과 협의해서 준비한다. 이 단계에서 대변인을 선정, 관련 공공기관이나 언론 및 시민을 위한 정보제공자로행동하게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위기커뮤니케이션, 정직하고 시의적절해야정보 제공은 공개적이고 정직하며 정확하고 시의적절해야 한다. 공개성과 정직성은 위기 상황에서도 조직의 명성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93년 한국통신의 지하통신케이블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한국통신측이 보인 태도는 임기응변식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점을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통신은 사고원인을 처음에는 지하통신구에인접한 지하상가의 화재탓이라고 발표했다가 사고현장을 지나는 한전 전력선의 유도전압때문이라고 변경하고 얼마 후에는 다시 배수펌프의 과열로 인한 자연발화라고 수정했다. 정확한 원인 분석보다는 일단 발등의 불이라도 끄고 보자는 식의 면피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기업의 이러한 모습은 위기 그 자체보다도 기업의 이미지를실추시킨다는데 문제가 있다.위기관련 정보는 언론뿐만이 아니라 조직구성원 주주 협력업체 원료공급자 고객 등에게 신속하게 제공돼야 한다. 82년 미국의 존슨앤 존슨이 자회사인 맥네일이 제조한 타이레놀을 복용한 7명의 시민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확인한 후 취한 행동은 위기 PR커뮤니케이션의 전형을 보여준다. 존슨 앤 존슨은 사고 소식을 접한 당일 오후에 약품 공급업자와 의사 보건관리 요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50만통의 우편물을 발송했다. 사고 소식을 덮어두지 않고 공개함으로써 사건 자체가 커지는 것을 막은 것이다. 일단 나쁜 소식은 숨기고 어떻게든 모르게 처리해보자는 발상은 사건을 걷잡을 수 없이악화시킬 수 있다.위기커뮤니케이션 계획에는 위기가 수습된 이후의 활동 및 조치도포함돼야 하는데 특히 위기에 대한 사전준비와 위기가 처리 과정에대한 평가작업이 중요하다. 위기로 인해 훼손된 기업의 명성을 회복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조치도 명시돼야 한다.위기란 위험과 기회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위기는 기업에 손실을 입히지만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좋은 기회로 전환될 수도 있다. 위험을 기회로 바꾼다는 적극적인 대처가 위기관리의 핵심인 셈이다.기업이 맞는 긴급상황은 나름대로 특성이 있으며 각각 독특한 해결방안을 요구한다. 위기를 해결하는데 왕도란 있을 수 없다. 어느상황에나 적용되는 위기관리 계획과 하룻밤 사이에 해결되는 대언론 관계도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위기에 직면했을 때 겪는 어려움을 줄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자사에 맞는 자체 위기관리 매뉴얼을 개발, 미리 훈련을 통해 익혀두는 사전 위기관리가절실하다.최윤희·신문방송학과 PR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