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맥주(OB맥주로 회사명 변경)와 조선맥주. 40년 넘게 맞수대결을 보여온 기업이다. 두회사의 출발은 모두 일제시대와 관계가 있다. 일본시장의 기린맥주와 다이닛폰맥주는 식민지인 한반도에서도치열한 시장점유경쟁을 벌였다. 다이닛폰맥주는 생산능력확대를 위해 당시 시흥군 영등포읍에 대지를 구입하고 공장증설계획을 세웠다.그러나 동화정책에 따라 공장증설은 조선인을 자본참여시켜 독립법인화하는 것으로 수정됐다. 이로써 생겨난 회사가 조선맥주였다.1933년 한국최초의 맥주회사가 탄생한 것이다.같은 해 기린맥주는 소화기린맥주라는 주식회사를 세웠다. 광복이되면서 고 박두병 두산그룹회장이 미군정의 승인을 얻어 이 회사를관리해오다 48년 사장직에 취임했다. 그리고 동양맥주로 회사명을고쳤다(회사연혁에는 창립연도를 52년으로 밝혔다).◆ 드라이맥주 출시로 맞수 대결 한판양사가 치열한 경쟁관계에 들어선 것은 1955년부터였다. 조선맥주는 그러나 중개업자들과의 관계악화로 자금난을 겪던 중 58년말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 시장점유에서 열세였던 OB가 크라운을 제치는 결정적 계기였다. 54년 67대 33으로 OB를 앞서있던 크라운이46대 54로 역전당한 것이다. 이후 두제품의 시장점유율은 좀처럼재역전되지 않았다. 동양이 유통망을 견고히 다졌기 때문이다.73년 한독맥주가 신규로 맥주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세좋게 뛰어들어 판촉에 총력전을 폈지만 OB와 크라운이 자리를 굳히고 있는 시장을 파고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막대한 부채를 짊어진 한독은77년 조선맥주에 인수당하고 만다. 그러나 잠시나마 3사경쟁을 거치면서 동양과 조선맥주 모두 「기둥뿌리 흔들리는」 역경을 지나야 했다. 두회사는 다년간 유형 무형의 경쟁속에서 「서로 싸워봐야 손해보는 것은 양쪽」이라는 교훈을 얻었다.그래서 나온 것이 「6.5대 3.5」. 두회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겼던 시장점유에 있어서의 「황금분할」이었다. 한때 시중에는 「황금분할상태가 좋기 때문에 조선맥주의 시장점유율이 떨어지면 동양맥주가 오히려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두회사가 보이지 않는 「야합」에 안주해 맞수로서의본분을 잊은 것은 아니다.대표적인 것중의 하나가 지난 89년 드라이맥주 출시경쟁이었다.80년대 후반 일본에서 드라이맥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한국의 두회사는 거의 동시에 제품연구에 들어갔다. 제품개발을 끝내고누가 먼저 출시하느냐를 다투던 상황에서 동양맥주는 한달 앞선89년 7월 OB슈퍼드라이를 선보였다.91년 대구 두산전자의 페놀유출사건이 터져 OB불매운동이 일었다.이를 계기로 조선맥주는 시장을 약간 회복할 수 있었으나 뒤엎지는못했다.그러나 물에 대한 국민정서를 파고든 하이트맥주의 출시는 대단한호평을 얻고 맥주시장을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몰고 갔다. 마케팅의성공이니 금박을 씌운 고급이미지가 주효했느니 하는 분석이 많았지만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OB와 크라운에 지친 소비자들이 획기적인 신제품을 원하는 정서였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소주시장을 고집하던 진로가 비열처리식 카스맥주를 들고 나오면서 맥주시장은점입가경의 경쟁에 돌입해있다.★ 재미로 읽는 맥주전쟁 '이야기 보리국'젊은 장군하이트에 기세 꺾인 노장 OB보리국(國)은 OB장군과 크라운장군이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동양성(城)과 조선성 성주의 총애를 받으면서 세력을 펼친 두 장군은보리국의 강역을 때론 7대 3으로, 다시 어느땐 3대7로 갈라놓았다.그러나 조선성에 식량난이 한번 지나고 난 후부터 전세는 일방적으로 OB장군에 유리하게 돌아갔다.크라운장군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봤지만 OB장군의 위세가 좀처럼수그러들지 않았다. 동양성은 거의 철옹성이었다. OB장군도 쉽사리군사를 일으키지 못했다. 비록 작지만 조선성도 축조에 빈틈이 없었으며 크라운장군의 지략 또한 믿음직스러웠다. 40여년 보리국은팽팽한 긴장속에서도 세력균형을 보였다. 백성도 두장군의 그늘속에 안주하고 있었다.전황은 돌연 급박하게 돌아갔다. 조선성이 패기왕성한 하이트장군에게 병권을 일임, 전면에 등장시킨 것이다. 나이의 벽을 극복하지못한 OB장군은 접전에서 밀렸다. 동양성은 부랴부랴 아이스장군과넥스장군을 내세워 파상공세를 폈지만 하이트장군을 상대하기에는뭔가 부족한 듯했다. 시장에서는 곳곳마다 사람들이 둘러앉아 하이트장군이 천연 암반수만을 퍼 마시며 몸을 단련해 내공이 뛰어나다고 웅성거렸다.설상가상으로 보리국에는 별로 뜻이 없어 보였던 동녘의 진로성도카스장군을 무장시켜 일각을 차지하겠다고 나섰다. 동양성에서는OB장군때의 화려했던 영화를 되살리기 위해 성의 이름을 OB성으로고치기도 했다.보리국은 오리무중 그 자체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다 뛰어난 장군이 거듭 나타나 짜릿한 맛을 느낄 수있다고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