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적인 관심 테마이다. 이는 경제의 영역을 넘어 개인의 정서, 가족 생활 및 사회적 건강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중대한 문제이다. 그만큼 해결책도 쉽지 않다. 경기가회복세로 돌아선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진 산업국은 평균적으로근로자 12명에 한명은 정부 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실업률이 8%를 웃돈다는 이야기이다.실업 발생의 원인으로 신기술의 도입을 들기도 하고 개발 도상국에서 흘러들어오는 값싼 수입품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민오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들린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짐에 따라 남자들의 취업 기회가 줄어들었다고도 한다.이유에 대한 설명이 단순한만큼 처방도 쉽다. 구구각색이다.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많이 만들면 된다. 값싼 외국 제품의 수입을막고 해외 근로자의 유입을 차단하면 된다.위와 같은 원인과 치료법은 한 가지 오류를 공통적으로 근저에 깔고 있다. 한 나라 경제에 있어서 산출은 고정되어 있다. 따라서 일자리, 즉 노동량이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의역사를 돌이켜 봐도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텐데도 이러한 사고방식은 의외로 널리 퍼져 있다. 경제학에서는이것을 「노동량 고정설의 오류」라고 부른다. 혹은 「산출 고정설의 오류」라고도 한다.기술 발전으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주장을 예로 들어 보자. 산업혁명 이후로 새로운 기계가 발명될 때마다 근로자들은 쫓겨날 것을걱정해 왔다. 19세기초 동력 직기가 나타나자 일자리를 뺏길 것을두려워한 노동자들은 Luddites라는 신기술 반대조직을 결성, 동력직기를 때려 부수기도 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신기술은 눈부시게발전했다.그러나 이때문에 실업이 늘어났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기술의 진보와 함께 생산성 산출 및 고용은 같이 늘었다(표 참조).대장장이 마부 베를 짜는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전체적으로 직업의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신기술은 두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제품의 출현이다. 이를 제품 혁신이라 한다. 가정용 컴퓨터나 가스레인지같은 것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다. 새로운 수요가 발생한다. 이를 충족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직종이 탄생한다.또 하나의 형태는 공정 혁신이다. 새로운 기계를 고안하거나 생산방식을 바꿔 기존의 제품을 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산한다. 공정 혁신은 적은 노동력으로 같은 양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실업이 증가한다. 그러나 이것도 제품 혁신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고용이 다시 늘어 난다.이 과정을 좀더 상세히 설명해 보자. 공정 혁신은 생산성을 높인다. 원가가 절감된다. 원가가 낮아지면 가격이 낮아지거나 임금이오른다. 또는 기업의 이익이 커진다. 가격 인하나 임금 상승은 실질 구매력의 상승으로 연결된다. 수요가 증가하고 사람을 더 쓰게된다.고용에 대한 순효과는 원가 절감이 가격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그리고 가격 감소가 추가 수요를 얼마나 창출하는지에 달려있다. 기업의 이익이 커져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온다. 투자가 늘게되어 생산량이 많아진다. 고용이 증가한다.소비자의 욕구가 완벽하게 충족되어 있는 세상, 생산량이 늘어나도더 이상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영원히 실업만을 낳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신기술의 도입으로 인한 수요창출 효과가 노동대체 효과를 능가하였다. 결국은 기술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보다 신규로 생성되는 일자리가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모든분야나 모든 지역에서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기존 직업의 소멸과 새로운 직업의 창출 사이에 시차가 있을 수도 있다.그러나 이것이 변화를 반대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OECD가1994년에 발행한 「직업 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첨단 기술 산업으로 생산 구조를 빨리 바꾼 나라일수록 더 많은 일자리가 생겼다고 한다.노동량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다 보면 작업 방식의 개선이나 신기술의 도입을 통한 생산성의 향상이 좋은 것인지 조차도 의심스러워진다. 생산성의 증가율이 높을수록 단위 증가율당 고용창출의 효과는 적다. 이를 근거로 혹자는 고용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성은 보다더 완만하게 증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일견 이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있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생산성 증가율은 유럽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던 반면에 실업률도 절반 수준이었다(미국 5.5%, 유럽 11%). 생산성과 고용 사이에역상관 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이 관계를 정책 수단으로 이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올뿐이다. 생산성의 증가율을 낮추어 고용을 촉진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실업을 증가시키고 생활 수준을 떨어뜨리는 결과만을 초래하기십상이다. 과거의 경험을 봐도 그렇다. 장기적으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 제고 이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그 이유는 생산성 증가율이 커지면 생산도 비례하여 커지기 때문이다. 역으로 생산성의 증가속도가 떨어지면 생산의 증가율도 감소한다. 실업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위에서 든 미국과 유럽의 예는 제반 경제 여건이 상이한 두 경우를 비교한 것이다. 동일한 경제 내에서의 생산성 증가율 변화에 따른 영향을 보아야 한다. 1960년대의 OECD 경제의 생산성은 50년대에 비하여 두배 이상의 성장률을기록하였다. 실업률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70년대에 들어서서생산성 증가율이 둔화되자 실업이 늘어났다.생산성 증가율을 억제하여 고용을 유지하여야한다는 주장이 오류임을 밝히는 또 하나의 논리를 소개한다. 기업의 노동 수요는 생산성과 임금의 관계에 달려있다. 기업이 기계류에 대한 투자를 줄여 생산성의 증가율이 감소되었다고 하자.과거와 비교하여 임금 인상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이를 감수하지 않아 과거와 같은 율로 임금이 상승하였다고하자. 한계 근로자 채용에 드는 비용이 추가 생산량의 수익을 웃돌게 된다. 실업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증가한다.저임금 국가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피해 망상(?)에도 노동량고정설이 작용하고 있다. 저가의 수입품이 국내 생산을 대체하여고용의 기회가 감소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제3세계로부터 값싼 저기술의 제품을 수입하는 나라에서는 자국내의 비숙련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수출로 돈을 벌게된 후진국은 그 돈을 깔고 앉아있지 않는다. 선진국의 기술 집약적인 재화에 소비하게 된다. 새로운 고용의 기회가 창출된다. 각국이 비교우위에 있는 재화의 생산을 특화하게 되면 세계 전체의 생산은 확대된다.저임금의 개발 도상국과의 교역이 선진국의 전반적인 고용 기회를늘리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그러나 고용 수요구조는 확실히 바뀐다. 저기술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대신 고기술 근로자수요는 증가한다.이민이나 여성 인력의 노동시장 진출의 영향도 같은 논리로 분석할수 있다. 신입자의 기술분포가 기존 인력과 다르다면 상대 임금 구조는 바뀐다. 예를 들어 이민의 평균 기술 수준이 기존 근로자보다떨어진다면 저기술 근로자의 임금은 인하압력을 받을 것이다.그러나 노동 인력이 늘어났다고하여 영구적으로 실업이 늘어날 이유는 전혀 없다. 이민 또는 새로운 여성 근로자는 그들의 임금을소비한다. 수요가 늘어나고 생산과 고용의 기회가 확대된다.1980년대에 미국의 신규 이민은 8백만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의 노동 인구 증가의 4분의1에 해당되는 숫자이다. 그러나 실업은 오히려 감소하였다.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실업의 대책으로 근무 시간을 감축하자는 방안이 흔히 거론된다.일자리의 공유, 정시제 자리 하나를 파트 타임제 두자리로 나누는방식도 확대되고 있다. 조기 퇴직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많은사람들이 직장을 얻지 못해 헤매고 있는 판에 한자리에 너무 오래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영국 남자의 4분의 1은 1주일에 48시간 이상 일한다. 일을 나누어 고르게 분배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1994년에 폴크스바겐사는 감원 대신에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하였다. 정부는 감원을 막기 위하여 기업의 사회 보장기금 출연금에 대하여 리베이트를 지급하는 등 일자리 공유제를 장려하였다. 결과는참담하였다. 이유는 뻔하다. 한 나라 경제에 있어서 노동량이 정해져 있다면 1인당 근무 시간을 줄이면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문제는 노동량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이론에 있어서나 과거 경험에 있어서나 노동량 고정설은 원군이 없다. 이유를 세가지로 설명한다.1. 근무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은 임금도 같은 비율로줄어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위 생산량당 원가가 높아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레저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환영하지만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싫어한다.2. 노동 비용은 노동 시간과 비례하지 않는다. 인건비에는 채용 비용 훈련비 식비보조 등 고정비가 상당한 몫을 차지한다. 따라서 정시제 1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파트 타임제로 2인을 쓰는 것이 더비싸다. 단위당 평균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된다. 기업이 구매하는총 노동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3. 평균 근로 시간을 줄여도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기본 관계, 즉자연율은 바뀌지 않는다(노동 시장과 재화 시장이 균형을 이루는상태에서의 실업률을 자연율이라고 한다. 실업이 이 선위에 있으면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고용을 늘릴 수 있다. 반면에 실업률은이 선보다 낮추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일자리 공유방식으로 실업이 감소하는 것은 수요의 증가로 실업이감소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 다른 점은 일자리 공유제의경우에는 생산의 증가가 뒤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이 커다란 차이를 가져온다.공유방식에 의해 기준점 이하로 실업률이 낮아지면 인플레이션이발생한다. 정부는 긴축정책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 실업률은 다시 높아진다. 그러나 생산과 총소득은 늘어나지 않는다. 실업을 줄이기 위해 조기 퇴직을 시행하는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있다.근무 시간을 줄이는 것이 실업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보아도 명백하다. 여러 나라의 예를 보면 오히려 근무 시간이 짧을수록 실업률이 높다. 결정적인 증거는 유럽이 제공한다. 짧은 근무시간, 긴 휴일이 실업을 고치는 방책이라면 유럽이 전세계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아야 한다. 실태는 거꾸로이다. 더 많이 일하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훨씬 높은 실업률로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기업과 노조가 자발적으로 임금을 줄이는 대신 근무 시간을 감축하기로 합의하는 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정부가 고용을 늘리기 위해 인위적으로 근무 시간에 강제적인 상한선을 둔다면 오히려실업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어떤 면에서는 유럽에서와 같은 근무 일수 단축 주장은 빵의 크기를 키우기보다는 주어진 크기의 빵을 놓고 싸우는 형국이다. 빵을더 키우는, 즉 자연 실업률을 낮추는 것만이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는 길이다.최선의 해결책은 노동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임금의경직성을 없앤다. 최소 임금기준을 낮춘다. 실업자에 대한 보조를줄인다. 교육 훈련을 강화한다. 노동 시장 서비스를 개선하여 구인자와 구직자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는 것 등이 구체적인방안이 될 것이다.「One lump or two?」 Nov. 25, 1995. ?The Economist, London정리·유석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