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일 OB맥주는 새 사령관을 맞았다. OB맥주 부사장에서4개월만에 사장으로 전격 발탁된 유병택사장. 유사장을 맞는 OB맥주의 분위기는 결연했다. 유사장의 취임사는 더욱 그랬다. 내용이별달랐던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영업없이는 회사도 없다』는게요지였다. 직원들을 숙연하게 만든건 내용이 아니다. OB맥주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기에 맞이하는 사장이라는데 있다. 유사장이 취임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다는데도 무게가 실렸다. 그만큼 사령탑에 오르는 유사장의 각오는 남달랐다는 얘기다.OB는 여전히 맥주시장의 최강자다. 지난해 OB맥주의 시장점유율은48.0%. 조선맥주와 진로쿠어스맥주는 각각 37.9%와 14.1%였다. 그러나 점유율 48%는 OB맥주에 충격이다. 50%는 깨져서는 안되는OB의 마지노선이라는 인식때문이다. 경쟁업체조차 『OB의 점유율이50%이하로 떨어졌다는 것은 맥주업계의 「사건」이다』(진로쿠어스맥주 이황원사장)라고 말한다.반세기가 넘게 맥주시장의 패권을 장악해온 OB의 추락. 어느 업종에서도 영원불변의 「제왕」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맥주업계의 새로운 재편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OB의 추락’ 경쟁업체조차 ‘사건’으로 인식OB맥주는 50년대 중반 조선맥주를 여유있게 제친후 한번도 점유율이 5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80년대 들어 OB의 점유율이 가장많이 떨어졌던 81년의 경우도 58.3%였다. 현재의 48%는 OB로서는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수치인 셈이다.게다가 84년에 점유율 60.6%를 달성하면서 60%대의 벽을 넘은 이후로는 그 이하로 떨어져 본적이 없다. 하이트가 잘 팔린다, 잘 팔린다 하면서 각종 언론에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던 94년에도 60.5%는지켰다. 1년 사이에 12.5%나 떨어졌다는 사실은 엄청난 「전락」인것이다.현재의 OB로서는 1%의 점유율도 아쉽다. OB가 주장하는 3사의 판매량과 점유율만 봐도 알 수 있다. OB는 조선맥주가 발표하는 판매량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수긍하지만 진로쿠어스맥주는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OB맥주 관계자는 『OB와 조선맥주는 12월 결산법인인 상장회사로 영업보고서를 통해 공식적으로 주주들에게 판매량을발표하지만 진로쿠어스맥주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상장회사가 아닌 진로는 자체적으로 판매량을 부풀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OB측이 자체 영업망을 통해 파악한 진로의 판매량은2천68만∼2천1백40만 상자(5백㎖×20병). 진로가 발표한판매량(2천5백5만 상자)과는 3백68만∼4백37만 상자가 차이난다.OB의 주장대로라면 진로의 점유율은 14.2%에서 12.29∼11.93%로 떨어지지만 OB의 점유율은 48%에서 49.02∼49.23% 사이로 올라간다.OB가 48%와 49%의 차이조차도 얼마나 크게 느끼고 있는지 보여주는사례다.일각에서는 OB가 그나마 48%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은 소비자 선호도에 의해서라기 보다 몇십년간 닦아온 영업력때문이라고 주장한다.이미 소비자를 대상으로한 맥주 선호도 조사에서는 하이트맥주가OB맥주의 모든 제품을 따돌렸다는 것이다. 조선맥주 관계자는 『브랜드별 판매량을 조사해보면 이미 하이트가 선두에 올라섰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OB에 밀려오던 조선맥주로서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얘기다.OB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하는 것은 지난해 발표된 한국능률협회의 「소비자 만족도」 조사결과다. 한국능률협회에 따르면 맥주에서 소비자 만족도 1위 제품은 진로의 카스맥주다. 2위가 하이트.OB제품으로는 넥스와 OB라거가 각각 3, 4위에 올랐을 뿐이다. 국내맥주 중 이 네가지를 제외하고 떠오르는 것은 카프리(OB제품)밖에없다.OB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위기의식을 가지고 공격적인시장탈환 계획을 수립. 실지 회복을 위해 이를 악물고 있다.먼저 보수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경영이념부터 바꿨다. 원래OB는 「인화」를 중시하는 회사다. 오랫동안 경영이념도 「인화」였다. 이것을 93년에 「고객은 우리의 스승이고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며 혁신은 우리의 생활이고 인재는 우리의 보배이다」로 변경했다. 혁신적인 「옷」으로 갈아입겠다는 의지였다.또 다른 시도는 연봉제 도입이다. 94년말 과장이상 관리자를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지난해부터 시행했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한 조처였다. 올초부터는 영업사원을 대상으로실적에 따른 성과급제를 실시한다.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다.『진로가 맥주시장에 진출한 이후 시장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졌습니다. 기존의 소극적인 영업으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됐죠.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도입한것도 「적극적인 영업」으로 시장을 탈환하겠다는 의지의 하나입니다.』(OB맥주 황선양영업과장)OB맥주의 유병택사장이 취임사에서 가장 강조한 것도 「영업」이었다. 맥주3사 중 영업력에서 가장 뛰어난 OB가 새삼 영업을 강조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OB가 몇십년간 조선을 따돌리면서 확고한 1위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견고한 유통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밀릴 수 없다’ 정신무장 OB90년초까지만 해도 OB나 조선이 거래하는 주류 도매상이 명확하게분리돼 있어 거의 계열 도매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도매상의 대부분을 OB가 잡고 있었다. 조선으로서는 도대체 틈을 파고 들기가힘들었다. 게다가 「OB맥주는 부드럽고 크라운맥주는 쓴 맛이 강하다」는 인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조선맥주는영업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조선맥주의 김명현 부사장은 주류 도매상의 트럭에서 하이트맥주를발견하면 『감격스럽다』고 까지 말한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수도권 지역에서 크라운맥주를 나르는 트럭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오랫동안 맥주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해준 OB의 강력한 영업망이93년말을 기점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93년말에서 94년초에 걸쳐OB는 소주시장으로, 진로는 맥주시장으로 교차 진출하면서 두 회사는 도매상을 대상으로 엄청난 싸움을 벌였다. 「경월소주를 안 받으면 OB맥주 공급물량을 줄이겠다」는 OB와 「경월소주를 받을 경우 진로소주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진로의 싸움이 도매상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OB나 진로는 도매상에 인심을 잃게 됐다.94년 5월 진로가 맥주시장에 진출할 때도 똑같은 마찰이 재현됐다.이 「소모전」으로 OB는 조선맥주를 압도해왔던 영업망에서 많은손실을 입게 된다. 조선맥주로서는 이 때가 어부지리를 얻는 절호의 기회였다. 점유율을 94년 33.8%에서 지난해에는 37.9%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OB는 이제 새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올해 맥주경쟁의 출발선에 섰다. 『오랫동안 독점적인 지위에 있다보니 갑작스런 경쟁상황에 적응하기 어려워 일방적으로 밀렸다. 이제는 다르다. 전사원이 새로정신무장을 하고 이겨야 한다는 결의에 차있다』는 OB관계자의 말처럼 OB는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OB가 올해 목표한 시장점유율은 55%. 맥주3사 경쟁체제에서도 지배적인 위치는 유지하겠다는 의미다.그러나 조선맥주나 진로쿠어스맥주도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조선의 올 목표는 43%. 진로는 23%다. 3사의 목표 점유율을 모두 합하면 121%. 21%가 초과한다. 3사 모두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해야만 한다는 결의에 차 있는 만큼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지난해말 맥주3사 사장들은 출혈경쟁을 자제하고 광고를 줄이자고암묵적으로 합의했다. 「페어플레이」를 약속한 것이다. 3사 모두배수진을 쳤다는 심정으로 맥주시장 전선에 선 입장에서 이 약속이어느 정도 지켜질지 의문이다. 중원을 통일하기 위한 「맥주 삼국지」는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