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짚고 헤엄치기」. 과거 기름장사는 생산이 곧바로 소비로 연결되는 황금시장이었다.불꽃튀는 광고전은 물론 요란한 판촉행사를하지 않아도 고객은 저절로 굴러들어왔다. 특별히 「경영」에 신경을 쓰지 않고서도 수지를 맞출 수 있는 태평성대를 정유업계는 한동안 구가했다.이런 황금기가 정유업계에서는 이젠 옛말이 됐다.유공(선경그룹)과 호남정유(LG그룹)에 의해 양분돼 왔던 기름시장에 쌍용 한화 현대그룹 등이 잇달아 진출하면서 무한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국내 5대정유 메이저들은 그동안의 밀월관계를 청산하고 유종 및주유소브랜드를 각각 도입,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적과 동지도 없는 무차별 전면전에 들어간 것이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 유종은 휘발유. 국내 정유사들은 그동안 특별한 브랜드없이 휘발유를 판매해왔으나 94년말부터 브랜드를 도입, 품질경쟁체제에 들어갔다.선공에 나선 곳은 호남정유. 이 회사는 업계최초로 94년 12월 「테크론」이라는 브랜드를 도입, 공세에 나섰다.「테크론」은 미국 셰브론사가 개발한 엔진보호첨가제를 채택한 것으로 이 제품은 국내에서 호유가 독점공급계약을 맺었다. 호주 뉴질랜드 홍콩 태국 등지에서도 같은 브랜드로 판매되고 있으며 엔진세정능력이 뛰어나다고 회사측은 설명했다.휘발유의 브랜드화시대를 연 호유는 곧바로 대규모광고공세를 펴며차별화전략을 구사, 소비자들에게 파고 들기 시작했다. 이같은 전략은 그동안 품질에 무관심하던 소비자들에게 먹혀들어가 판매고가급신장세를 보였다.◆ 선공당하자 맞불작전, 실지회복 부심지난해말 시장점유율을 자체 집계한 결과 점유율이 전년대비 2%포인트 가량이 늘어났고 자가운전자의 85%가 테크론브랜드를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각 언론이 선정한 지난해 히트상품대열에 「테크론」이 들어간 것은 이같은 인기도를 잘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특히 테크론은 그동안 쌍용정유가 선공을 했던 옥탄가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이 회사 이상수이사는 『청정휘발유를 요구하는 소비자욕구를 반영하고 정유업계 최초로 브랜드를 도입, 차별화전략을 구사한 것이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것은 유공. 호유의 「테크론」기습을 당한 유공은 곧바로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에 나섰다.「엔크린」이 반격무기였다. 유공은 「엔크린」이라는 독자브랜드를 지난해 10월 채택, 맞불작전에 들어갔다. 이 제품은 자체개발한엔진청정제를 첨가, 엔진의 성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호유 브랜드가 미국 것임을 고려해 「엔크린」은 순수국산이라는이미지를 강조했다.시장점유율 1위업체로서 자존심이 상한 유공은 브랜드경쟁에서 선수를 뺏긴 것을 만회하기 위해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쏟아부은 광고비는 1백80여억원. 이같은 광고비지출은이 회사가 브랜드후발업체로서 실지회복을 위해 얼마나 절치부심했는가를 잘 말해준다.유공측은 『호유의 선제공격에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브랜드 도입에 따른 시장점유율 경쟁이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것이라고 밝혔다.◆ 쌍용, 차별화 의욕넘쳐 공정위 시정령 받기도브랜드가 도입되기 이전 옥탄가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쌍용정유도 이에 뒤질세라 휘발유 브랜드를 도입, 경쟁대열에 끼여들었다.쌍용정유는 미국 텍사코사가 개발한 엔진세정제를 첨가한 「슈퍼크린」을 유공과 비슷한 시기에 출시, 시판에 나섰다. 경쟁사의 휘발유 첨가제가 4세대인 반면 자사 제품은 5세대임을 강조했다.쌍용정유는 제품차별화에 다소 의욕이 넘쳐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광고내용에 대한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이 회사는 「슈퍼크린」이 세계유일제품이고 유독성 배기가스인 질소화합물을 20% 감소시킨다는 내용의 광고를 했는데 이 내용이 사실과 달라 시정명령을받았던 것. 휘발유브랜드도입에 따른 과열경쟁이 이같은 결과를 빚은 셈이다.한화에너지는 양동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다른 회사와 같이 「이맥스(E-max)」라는 휘발유 브랜드를 도입하는 것과 함께 「에너지프라자」라는 주유소브랜드를 채택,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정유사업에 가장 늦게 합류한 현대정유는 다른 회사들과는 달리 당분간 「오일뱅크」라는 주유소브랜드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현대정유는 호유의 「테크론」 브랜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휘발유뿐만 아니라 전유종에 대해 브랜드를 도입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했으나 따라가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 이같은전략으로 선회했다. 현대정유는 올해 광고비를 지난해보다 대폭 늘어난 40억원을 책정,미래의 고객인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심어나갈 계획이다.브랜드도입경쟁은 최근들어 휘발유에서 경유쪽으로 옮겨갈 조짐을보이고 있다. 정유업계의 브랜드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들고 있는셈이다. 휘발유 브랜드에서 호유에 기선을 제압당한 유공이 엔진세척 등 다기능 첨가제를 넣은 「파워디젤」을 내놓고 일전을 벼르고있는 상태다.정유사들은 휘발유를 팔아서는 별다른 이익을 남기지 못한다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브랜드를 도입, 대대적인 광고공세를 펴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나름대로 노림수가 있기 때문이다.휘발유가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대중유여서 회사이미지를제고하기 위한 가장 좋은 유종이라는 것이다. 이와함께 오는 99년유류시장개방을 앞두고 브랜드도입을 통한 회사이미지를 소비자들에게 미리 각인시켜 줄 필요성 등이 다목적으로 고려됐다.정유업계 관계자들은 『브랜드 도입경쟁보다는 환경문제를 줄일 수있는 청정유개발 등 품질개선에 더욱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