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유업계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정유산업을 자조적으로 「속빈 강정」이라고 말한다. 덩치는 크지만 남는 것은 별로 없고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앉아만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고 「땅 짚고 헤엄치기」장사라고 불리던 옛날의 정유시장이 아니다. 수십년간 정부의 보호 아래서 안정되게 성장해온 정유업계에도경쟁의 바람이 불어 오면서 정유업체들에 피나는 자구 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내년에 석유 가격이 자유화 되는데 이어 99년에는 정유업 신규 진입과 외국 기업 진출이 허용되면서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환경친화적인 제품 개발에 대한 투자부담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국내 정유회사들을 회원사로 거느리고 있는 대한석유협회 홍찬기 부회장을만나 정유업계 현황과 개방화 자유화를 앞둔 정유업계의 대응전략을 들어봤다.▶ 최근 정유산업이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정부가 석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가격을 규제하다 보니 정유업계는 생산원가에 따른 적정 이윤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됐다. 정부의보호가 오히려 기업에 부담이 된 것이다.실제로 정유업체에 들어오는 이윤은 적은데 환경규제 강화와 소비자 성향 변화에 따라 투자해야 할 곳은 늘어나기만 한다. 자금은한정돼 있는데 업체간의 과열된 시장점유율 경쟁으로 인해 광고 판촉비 부담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한정돼 있는데 업체끼리 시장을 확대하려 하다보니 남의 몫을 빼앗는 제로섬 경쟁으로치닫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정유업계에 주유소 확보 싸움과 치열한 광고전 등의 불필요한과당경쟁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실제로 정유업체들은 현재 출혈경쟁을 감행하고 있다. 내년에 석유가격이 자유화되면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그러나 현재 낭비처럼 보이는 경쟁은 정유산업이 자유화 개방화 시대에 적응해 가는 과정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최근에 정유업계가 휘발유 품질을 개선하고 환경보호 측면의 제품을 선보이고 서비스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 등은 모두 경쟁의 바람직한 면들이다. 물론 단기적인 매출 확대에 급급한 제 살 깎기식 경쟁은 지양해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저공해 연료유와 미래의 에너지원 개발,환경보전을 위한 투자 확대 등으로 품질과 서비스로 승부를 건다면정유업계에 공정경쟁이 뿌리를 내리고 석유시장은 곧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99년의 석유시장 개방에 맞선 국내 기업의 대응책은 무엇인가.품질 향상과 서비스 개선이 최우선이다. 지금 당장은 업체간의 과당경쟁을 자제하는 것이 절실하다. 시장 개방 등 공동으로 직면한어려움을 직시하고 생산적인 경쟁을 위해 대화, 협조해야 할 때다.이외에 해외 시장 개척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소비지정제주의」라고 해서 국내에서 쓸 만큼의 석유만 수입, 정제했기때문에 수출할 여력이 없었다.그러나 석유 산유국은 중동, 정제국은 미국을 꼽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제 수입한 원유를 정제한 후 수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때다.특히 올 4월부터 경질유 수입을 자유화한다고 밝힌 일본은 우리의주요 수출 대상국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일본은 인건비가 비싸정제 비용이 우리나라보다 높기 때문에 수출 가능성이 크다. 외국석유기업이 우리나라에 진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기업도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한다.▶ 99년 이후 외국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면 국내 정유시장 상황은 더욱 힘들어 질것으로 보인다.정부의 보호아래서 성장해온 국내 기업이 거대한 외국 정유업체에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 업체들도 쉽게 시장을 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단 정유시설은 투자비가 엄청난 만큼 거대한 외국 업체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이다.결국 외국 기업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유통쪽인데 이미 국내 기업이 전국 곳곳의 요지에 주유소를 확보하고 있는 만큼 석유유통진입도 생각만큼 용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석유산업의 대외개방이 다른 시장 개방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는가.석유산업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쌀이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국가 안보차원에서 고려돼야 하는 것처럼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석유산업도 단순한 제조업은 아니다. 비록 원유는 수입한다 하더라도정제와 유통은 외국에 내어줄 수 없는 국가의 핵심 산업이다. 시장전체가 소비자 위주로 바뀌면서 정유회사들이 광고를 하고 주유소판촉경쟁을 활발히 벌이는 것은 좋지만 석유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것 같아 안타깝다. 석유가 전략 물자라는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