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시사주간지인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매년 단과대별로 가장 우수한 대학을 선정, 발표해 오고 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법대는 예일대가 가장 우수하고 상경대는 MIT, 의대는하버드대, 공과대는 MIT가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이런 조사가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할까.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법대 서울대, 상대 서울대, 공대 서울대,의대 서울대, 아마도 미대나 음대까지도 서울대가 가장 탁월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전 학과, 학문별로 가장 뛰어난 학생은 모두서울대로 몰린다. 홍대는 미대, 연대는 상대, 한양대는 공대가 강하다는 얘기는 옛날 얘기거나 아니면 서울대에 이어 2위라는 말밖에 안된다. 그 정도로 서울대가 국내 대학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과를 불문하고 막강하다. 서울대는 어떤 학과에서 특별히 앞서나가는 「전문점」이 아니라 온갖 학과의 1위자리를 독식하고 있다. 한마디로 메싹쓸이?다.◆ 서울대, ‘세계 8백위 벗어나자’우리나라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대학」 서울대가 「그래도 우리는세계에서 8백위밖에 안된다」며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한특별대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른바 서울대 특별법이다.서울대는 2월 24일 충북 수안보에서 학사운영협의회를 갖고 서울대특별법 시행령안을 마련했다. 시행령안은 2월말 「서울대법 제정에관한 연구」라는 1백여쪽의 최종 보고서로 구체화됐다. 보고서에따르면 서울대법은 서울대의 지위와 독립성을 명시한 「서울대학교설치법」과 운영방안인 「시행령」「특별회계법」등 3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대법의 핵심내용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교육 연구 행정조직 개편과 인사 및 재정의 자율성 확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서울대의 관할 주체를 교육부장관에서 국무총리로 격상시키고 서울대 총장을 지금까지 교육부장관이 임명해온것과 달리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또 서울대소속 5급 이상 공무원은 총장이 제청하면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6급 이하 공무원은 총장이 직접 임용한다는 것이다.서울대학교 특별회계법안에서는 서울대의 회계를 특별회계로 독립시켜 총장의 관할 아래 두도록 했다. 지금까지 서울대 회계는 다른국립대와 마찬가지로 일반 회계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돼 왔는데 서울대만 「특별」회계로 분리해 줄 것을 주장한 것이다. 일반 회계에 묶여 일일이 재경원의 감독을 받았던데서 벗어나 총리의 결정에따라 예산을 따내겠다는 계산이다. 또 회계 수입으로 서울대 운영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할 수 없을 때는 국가가 그 부족액 전부를일반 회계로부터 전입토록 규정했다. 대학 예산의 안정성을 특별법을 통해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학교 수입이 국고로 귀속되지 않도록 규정, 독자적인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했다.서울대가 서울대법 제정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한가지다. 「서울대학교만이라도 우선 국제경쟁력을 배양하겠다」는 것이다. 「획일적인 기준에 따른 국립대학 운영은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므로 특별법을 만들어 서울대를 특수 법인체로 전환해 발전시킬 필요성이 있다」(「서울대학교 2000년대 미래상」중에서)는게 서울대 특별법추진의 변이다. 『균등발전이나 평준화로는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없다. 특별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 서울대 특별법이 필요한 것도이 때문이다』(서울대 권승지 기획실 행정주사). 서울대 선우중호총장도 취임직후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 대학이 함께 발전할 수는 없고 어떤 대학은 국가를 대표하고 세계 대학과 어깨를견줄 수 있어야 한다』고 특별법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서울대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서울대의 주장에 대해 다른 대학 교수들은 한마디로 「특권적 독점적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현실적으로 예외적 대우를 받아온 서울대가 또 다른 예외주장을 하고 있다는 견해다. 정부의 대학 지원금이 한정된 상태에서 서울대가 특별 대우를 요구한다면 상대적으로 빈약한 정부 지원에 시달리고 있는 다른 대학들은 더욱 소외당한다는 것이다. 또 서울대가 서울대 특별법의 취지로 내세우는 「국제경쟁력 제고」라는 부분도서울대의 특수 위치만을 주장하는 「선민의식」의 발로일 뿐이라는지적이 많다. 국제경쟁력은 특정대학에서만 예외적으로 배양되는것이 아니라 모든 대학이 참여하는 형평 속의 경쟁과 협력 안에서길러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현청 대교협 고등교육연구소 소장은『우리나라 대학경쟁의 진원지인 서울대학이 내국적 우월에 안주한나머지 과거 50년 동안 경쟁력을 키우는데 방관자적인 입장이었다면 제도문제 이전에 의식의 문제부터 정립돼야 순서』라고 말한다.◆ 한국을 장악한 ‘서울대 마피아’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가 언론을 통해 밝힌 「차별의 정의」라는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안교수는 지면을 통해 『선도적인역할을 담당할 대학을 우선적으로 지원해야할 분야가 있다. 그것이지성체계의 원리이다. 현행의 법체계로는 이러한 「차별의 정의」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태승연세대 법대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차별의 정의」는 한 대학을 「특별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각 대학이 특징을 가지고 경쟁력 있는 분야를 육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데서 나온다. 대학별로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서울대가 주장하는 「차별의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차별일 뿐이다.』박시룡 한국교원대 교수는 『학문은 인접한 학문이 함께 경쟁하면서 발전한다』며 『서울대 특별법 추진은 철회돼야 한다. 오히려다른 대학이 서울대와 경쟁할 수 있는 특별법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한다. 서울대와 똑같은 국립대학이면서 실제 상황은 비교도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다른 국립대학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욱크다. 전국의 국립 대학 총장들로 구성된 국립대총장협의회(회장최한선 전남대 총장)는 2월28일 서울대 총장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회의에서 「국립대학교 설치법」제정을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서울대특별법이 제정될 경우 다른 국립 대학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대학 교육의 정상화 차원에서 국립대설치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서울대에 쏟아지는 비난은 「서울대 망국론」이니 「서울대 폐교론」이라는 과격한 주장까지 몰고 왔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교수는 언론사에 보낸 기고문을 통해 『서울대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잔인할 정도로 철저하게 관철되는 한국의 「싹쓸이」 자본주의를 상징하고 있다』며 서울대가 한국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정영섭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도 월간지를 통해 『우리 교육병의 근인이 돼온 서울대를 폐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대가 누리는 각종 특혜부터 하나씩 따져 지워나갈 일이다』라고 역설했다.한겨레신문 김종철 논설위원은 『서울대 폐교 문제를 논의하는 공청회를 정식으로 열자』는 공개 제안을 하기도 했다.서울대측은 이같은 비판을 「서울대에 대한 열등의식의 산물」이라며 특별법 제정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는 현재 특별법안에 대한 교수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4월 중순쯤 사회각층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선우중호 서울대 총장은 취임 당시 인터뷰에서 『서울대 특별법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하기를 바란다』며 올해안에 제정되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비쳤다.대통령도 서울대 출신이고 국무총리야 서울대 총장까지 지낸 사람이니 서울대가 몰아붙인다면 특별법 제정이 어려운 일도 아니다.한국의 정 관 재계를 비롯해 언론계와 교육계까지 메서울대 마피아?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대 특별법은 얼마든지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 특별법이란 명칭이 내포하듯 서울대의 특별법 추진은 서울대만의 특별한 대우를 전제로 하고 있다.그것이 서울대가 주장하듯 「차별의 정의」든 「민족 전체에 대한사명감에서 우러난 결연한 출사표」(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든내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지원금을 「특별한 입장」에서 「독점」하겠다는 우월감의 표현일 뿐이다.서울대 특별법 제정을 논하기에 앞서 서울이란 도시를 돌아봐야 한다. 「서울만이라도 우선 국제경쟁력을 갖춘 도시」로 키우자는 발상이 모든 시설을 서울에 집중시켜 지방을 황폐화시켜왔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국가발전과 국가경쟁력은 각 지방도시가 각자의 영역에서 특징을 가지며 고유의 경쟁력을 키우는데서나온다. 대학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도 각 단과대별로 가장 우수한 대학을 선정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