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음직하다. 그래서 술 스포츠 또는 여행 음악감상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그러나 스트레스로 쌓이는 짜증을 바람에 연기 날리듯 할 수 있는일이 바보상자라는 TV화면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코미디프로를 보는 일이다. 만약 「억지춘향식」의 코미디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김미화씨가 나오는 코미디프로를 보라고 권한다. 그녀가 전해주는 웃음은 산체험이 승화된 무공해 청정웃음이기때문이다.◆ 순악질여사 김미화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개그우먼 김미화. 일자눈썹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남편(김한국역)과 「행국」이란 이름의 개를 닦달하며 시청자들의 배를 잡게만들었던 여자다. 지금도 KBS와 SBS를 오가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웃음제조공장으로 부지런히 입담을 놀리고 있다.『어릴 때부터 꿈이 코미디언이었어요. 서영춘씨나 배삼룡씨가 나오는 TV프로를 보면서 나도 저 일(코미디)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든 이후로 한번도 그 꿈이 변하질 않았어요.』소녀적부터 가졌던 꿈이 코미디언(?). 조금 유별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꿈을 이뤘기에 이제 여한도 없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 그녀의 코미디언에 대한 간절함이나 애정을 짐작할수 있다.그러나 그냥 코미디언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이미 코미디연기자로서 중요한 큰 상을 모두 받아본경력의 베테랑이다. KBS코미디대상 여자연기상, 한국백상대상 코미디연기상, 한국방송대상 여자코미디언상 등이 방송사간의 치열한시청률 싸움과 아이디어라는 자신과의 전쟁이라는 두개의 전장을거치며 받은 「훈장」들이다.「순악질여사」 「입큰 개구리」 「일자눈썹」 「쥐방울」 등 숱한별명을 갖고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김미화씨. 하지만그녀의 성장과정은 그리 밝은 편은 아니었다. 서울 수유리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무릎 아래서 자랐다. 『혼자 가게를 하시며 키워주신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엄마에 대한생각이 특별하다』는 것이 김미화씨의 「사모곡」이다.신경여상 재학중인 82년 김씨는 코미디언이 되기위해 방송국문을두드렸으나 「고등학생이라는 이유로 원서도 못내밀고 발을 돌린다. 당시 고등학생들의 TV출연에 대한 사회적인 여론은 극히 부정적이었다.방송의 꿈이 좌절된 김씨는 여고졸업 후 무궁화관광주식회사에 취직, 6개월간 경리생활을 한다. 회사재직중 그녀의 「사람웃기는 재주」를 알아본 당시 김기현사장의 유별난 애정과 「꿈을 잃어버리지 말라」는 격려에 많은 힘을 얻었다고.코미디언이 되고픈 갈망에 83년 KBS의 개그콘테스트에 응모, 당당히 여의도에 입성한 그녀는 <유머 1번지 designtimesp=20941> <쇼 비디오자키 designtimesp=20942> 등KBS의 코미디프로에 출연하면서 간판급 스타로 자리를 잡는다. 이후에 민방이 출현하면서 SBS로 이적, <코미디전망대 designtimesp=20943> <열려라 웃음천국 designtimesp=20944> <웃으며 삽시다 designtimesp=20945> 등에 출연하면서 신생방송국의 코미디프로가 뿌리를 내리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다한다.『프리를 선언했어요. 방송국에서 내미는 대본을 수동적으로 연기하는 것보다는 활동영역을 자유롭게 한 상태로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에서 자유분방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로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프리를 선언한 그녀는 직접 방송국에 제의한 프로그램인 「코미디세상만사」를 시청률이 30%를 넘어서는 인기물로 만들었다. 프리로변신한 그녀의 첫모험이 일단 성공한 것이다.개그계에 입문한지 13년. 자주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김씨는 『처음에는 일이 좋아서 바쁜 와중에 정신없이 살았지만 이제는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에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공부도 하지만 역시 연기력을 늘리는데 가장 욕심이 많이 생긴다』고.◆ 효박물관·코미디전문대 설립이 ‘꿈’하루에 한번 방송되는 것을 찍기위해 꼬박 이틀이 걸려 3개 프로그램을 녹화하다보면 일주일이 후딱 가버린다. 그래서 『자신을 살찌우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어도 실제로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토로한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보는 김미화씨는 방송가에서는 널리 알려진 노력파다. 그녀의 사생활은 전혀 잡음없이 성실할 뿐더러 각종 선행에 앞장서는 연예인으로도 여의도에 칭찬이 자자하다.바쁜 방송생활도중 틈틈이 짬을 내 <하루라도 웃지않은 날은 망친날이다 designtimesp=20952>(자유문학사)라는 책도 펴냈다. 방송가의 이면을 담은 이책은 재판까지 찍었을 정도로 서점가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또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에 등록, 4학기째 방송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강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또 소년 소녀가장들을 꾸준히 보살피는가 하면 최근에는 효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한 모임의 추진위원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그냥 보고가는 박물관이 아니라 효에 대해 입체적으로 전달해주는 그런 박물관입니다. 효에 대한 그림 유물등은 물론 노인들이 쉴수 있는 숙식시설과 논밭 같은 것도 마련해 가족들이 함께 즐기며자녀들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키 154㎝ 단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에 대한 열정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또 다른 야심찬 계획을 한발한발 실행에옮기고 있다. 바로 코미디전문대학을 설립하는 것이다. 올바른 후진을 양성하고픈 소망때문이다.최근 개그맨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급증하는 현상에 대해 김씨는 『반가운 일이지만 코미디언이란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며 『개그맨은 선천적으로 80%의 끼에 20%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요즘 쉽게쉽게 하는 경향이 있다. 끝없는 자기계발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는 자상한 충고를 빠뜨리지않았다. 아울러 자신도 아이디어를 얻고 연기력을 늘리기 위해 영화 연극 비디오관람은 물론 독서와 외국의 코미디물 모니터 등을계속하는 한편 『하루 3시간정도는 작업에 대한 생각을 한다』고밝혔다.아무리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스타라도 때때로 외롭고 짜증나는 일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럴 때면 『혼자서 무작정 여행을 떠나거나 산을 오른다』는 김씨는 일때문에 5세, 2세 된 유림예림 두딸과 떨어져 사는 것을 가장 아쉬워 한다. 그래서 딸을 만날 수 있는 주말이 가장 기다려진다고.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려는데 학생들이 다가와 사인을 요청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사인을 해주는 그녀에게서는 인기라는데 익숙한 연예인이라기 보다는 마음이 넉넉한 누나나 이웃집 아주머니의 냄새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가족 모두가 김미화씨를 좋아해요. 특히 아버지가 열렬한 팬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여자코미디언 아니에요.』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사인을 요청했다는 한재효씨(20, 한림대 의대1년)의 말이다.글·변성수 기자 사진·안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