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계총리로 불리는 도요타 쇼이치로 경단련회장은 얼마전경단련회장실을 방문한 가토 고이치 자민당간사장에게 다음과 같은말을 한적이 있다.『국민정치협회가 정책위원회를 설치한데 대해서는 경단련으로서입장이 대단히 곤혹스럽습니다』국민정치협회는 자민당이 정치헌금을 거둬들이기 위해 설치한 재단법인이다. 종전 경단련이 산하회원기업들에 배분(알선)해 거둬들인헌금은 이 협회를 통해 자민당에 전달됐다. 그런데 도요타회장이이처럼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정책위원회라는 것은 무엇인가.이 위원회는 외형적으로 국민정치협회산하에 메민간의 정책건의를수렴하는 기관멕으로서 지난해 10월에 발족된 기구다.정책위원회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자민당이 창당이래 처음으로야당으로 전락하고 호소카와 모리히로 연립정권이 탄생했던 지난93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에는 사가와 규빈사건 등 정치헌금에 따른 추문이 줄을 이었고 경제계에도 정치개혁을단행하지 않은 자민당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게다가자민당이 선거에서 패하자 경단련은 메자유경제를 지키기 위한 보험료멕정도로 간주해오던 헌금의 의의도 약화된 것으로 판단했다.◆ 정치계, 업계에 직접 영향력 행사 원해이에따라 같은해 히라이와 가이시 당시 경단련회장은 지난 54년이래 전통적으로 계속해 오던 정치헌금알선을 중지한다고 발표했다.경단련이 회원기업들에 헌금액수를 할당하고 이를 국민정치협회를통해 기부해오던 중개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이에따라자민당은 개별기업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모을 수밖에 없게 됐고 헌금액은 자연히 감소추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가토 고이치자민당간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서운했던 감정을 이렇게 회상한 일이 있다. 『자민당이 야당이 된 것을고소해하는 것같은 기분이었어요. 이제 자민당의 시대는 갔다고 말이지요. 완전히 배반당한 느낌이었지요』 그러나 자민당은 사회당및 사키가케와 손을 잡고 권토중래했다.특히 하시모토 류타로 총재가 수상직에 앉고부터는 옛날의 영화를거의 회복했다. 경제계에 대해서도 다시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됐다.이같은 상황을 반영, 하시모토체제가 발족한후인 지난해 10월 31일자민당총재와 경단련수뇌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자민당이 야당으로전락한 후 거리가 멀어졌던데 대한 화해의 의식이 이뤄진 셈이다.경단련은 그후 얼마있지 않아 93년 중의원선거때 자민당이 선거자금으로 은행에서 빌렸던 1백억엔을 대신 변제하겠다고 발표했다.자민당이 갚지 못한 돈을 경단련이 회원사들로부터 갹출해 매년20억엔씩 5년에 걸쳐 상환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자민당과의 꼬인실타래를 풀자는 뜻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그러나 문제는 자금난을겪는 자민당으로서는 빚을 갚아주는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당을 원만히 운영하기 위해서는 업계로부터 계속 돈을 거둬들이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국민정치협회의 정책위원회는 바로 이를 위해 탄생한 조직이다. 애로사항해결등 민간기업을 도와주겠다는 카드를 내세우면서 정치자금납부를 독려하는 기능이다.자민당관계자도 솔직히 이를 인정하고 있다. 『경단련의 헌금알선이 본격적으로 재개되지 않는이상 정책위원회가 각업계및 기업에개별적으로 헌금을 부탁하는 것은 어쩔 수없다.』 재미있는 것은정책위원회를 이끄는 사실상의 책임자가 경단련에서 헌금알선업무를 통괄했던 후사노 나츠아키 전경단련전무라는 사실이다.경단련의 차기사무총장감으로 꼽혀왔지만 지난해 정년규약개정이이뤄지면서 경단련을 정년퇴직한 인물이다. 헌금중지문제를 둘러싸고 히라이와전경단련회장과 알력을 빚기도 했던 그는 경단련근무경험을 살려 업계사정에도 정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국민정치협회의 정책위원회는 업계의 민원을 수렴하면서 언젠가는경단련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업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도가 숨어있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정치자금알선을 재개치 않고있는 경단련에 압력을 넣자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이에대해 미요시 마사야 경단련사무총장은 『헌금알선을 중지했다고 하지만 국민정치협회에의 헌금기업·단체의 대부분은 경단련의구성멤버다. 자민당이 정책위원회를 우선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며 희망섞인 분석을 하고 있다.그러나 자민당의 많은 관계자들은 『현재대로라면 수년후 경단련은자민당에 대한 발언권을 완전히 잃고말 것』이라고까지 말한다.도요타회장이 가토간사장에게 털어놓은 불만은 이같은 경단련의 위상약화에 대한 우려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경단련은 최근 자민당에 대해 잇달아 화해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1백억엔에 달하는 차입금을 대신 변제해주는 큰 선물을 내놓은데 이어오는 여름경에는 샐러리맨이 정당및 정치가와 의견을 교환하면서정치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다.이 조직은 우선 회원가입 및 단체의 관리직을 대상으로 1천명정도의 회원을 모집하며 점차적으로 회원을 늘려갈 예정이다. 명분과는달리 실질적으로는 샐러리맨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임으로써 개인헌금을 촉진시키겠다는 것이 목적이다.경단련은 이와함께 여야당의 주요정치가를 초대해 도요타 쇼이치로회장을 비롯한 수뇌진과 각종 정책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는회합을 주1회정도씩 개최할 예정이다.샐러리맨을 대상으로한 신조직은 가칭 기업인 정치포럼으로 돼있다. 정치가를 강사로 초청해 각종 토론회를 개최하는 외에 각정당정치인의 정책과 활동을 분석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경제계가 이런저런 지원을 해줄 예정이다. 정치포럼의 사무국은 경단련이 담당케 돼있다.◆ 경단련, “샐러리맨 개인헌금 촉진시키겠다”경단련은 그동안 기업헌금이 중심이 돼온 관행을 개인헌금중심으로전환시킨다는 취지로 여러가지 개인헌금촉진정책들을 검토해왔다.그러나 미국처럼 기업내에 개인헌금창구를 만드는 안은 메개인헌금자체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멕라는 의견이 많아 우선정치에의 관심을 높이는 작업을 추진케 됐다고 한다.일본자치성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94년중 모집된 정치자금은 전년도보다 6.3%줄어든 3천 96억엔(약2조3천2백억원)에 그친것으로 집계됐다. 불황과 정치개혁무드 경단련의 알선중지등의 영향으로 3년연속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중 1천 6백 13억엔은 지방정치자금이고 중앙정치자금은 1천 4백 83억엔에 머물고 있다.특히 성실신고가 이뤄졌는지 여부는 분명치 않지만 최대정당이라는자민당이 거둬들인 정치자금도 2백 76억엔에 불과했다.히로모토수상체제가 자리잡은 후 자민당은 국민정치협회에 정책위원회를 설치한 사실이 보여주듯 이같은 어려운 상황을 탈피키 위해안간 힘을 쓰고 있고 경단련 역시 자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열심이다.그러나 경단련은 앞장서 기업들에 헌금액을 할당하는등 옛날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는데는 아직 부정적이다. 이같은 경단련의 자세를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올해초 국민정치협회주최로 열렸던 정경간담회에 도요타회장이 불참한 점을 들 수 있다.자민당측은 이간담회에는 하시모토총재등 당의 주요인사들이 모두참석하므로 경단련도 회장이 참석해 줄것을 요구했지만 경단련은도요타회장대신 사이토히로시평의원회장을 출석시켰다. 자칫 곤란한 요구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을 우려한 것이다.그렇지만 경단련이 자민당과의 관계를 보다 원활히 하고 싶어하는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초점은 정치헌금면에서 더욱 적극적인역할을 하지 않고서도 업계의 요청을 정책에 반영해 낼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국민정치협회가 전경단련전무를 스카우트해 정책위원회까지 설치한상황에서 현재대로라면 경단련의 입김은 갈수록 약화돼갈 가능성이짙다. 정치헌금을 둘러싼 자민당과 경단련간의 줄다리기가 어떤 형태로 전개돼 갈지 관심거리다.도쿄=이봉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