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입는 사람의 신분을 나타낸다. 조선시대때 사대부가 입었던옷과 농사를 짓는 촌부가 입었던 옷은 천양지차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귀부인의 차림새와 하녀의 차림새는 비교할 수도없다. 옷이 지위를 나타낸다는 말은 현대에 와서도 별로 틀린 말은아니다.현대 사회에서도 옷을 보고 그 사람의 지위를 짐작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브랜드가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믿는다. 국내 패션시장에 해외 유명 브랜드가 난무하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 도나 카란 재킷과 막스마라 원피스, 닥스 핸드백에 발리 구두. 남자라면 니나리치 와이셔츠에 아쿠아스큐텀 넥타이, 조지오 아르마니 양복과 버버리를 꼽는다. 이 정도면 최고수준이다. 최소한 국내에서는 그렇다. 불행하게도 이 모든 브랜드는 수입된 이름들이다.수입 브랜드는 크게 두가지로 나눠진다. 첫째는 브랜드가 해외에서개발됐을 뿐만 아니라 제품 자체가 해외에서 생산돼 그대로 수입되는 경우다. 이른바 직수입브랜드다. 둘째 제품은 국내에서 만든 것이지만 브랜드는 해외에서 개발된 상표를 붙이는 경우다. 라이선스브랜드라 불리며 브랜드 소유권자에게 매출액의 평균 3∼5%를 브랜드 사용료로 지불해야 한다.◆ 수입 브랜드는 직수입과 라이선스로 구별국내 패션시장이 수입브랜드 천국이라는 사실은 지난 한해동안 국내에 소개된 수입브랜드 숫자만 봐도 알 수 있다.지난 1년간 국내에 선보인 해외 브랜드는 라이선스 브랜드 36개와직수입브랜드 1백8개를 합쳐 대략 1백44개(한국의류산업협회조사). 지난해 국내 의류시장에 새로 나온 전체 신규브랜드 2백개의 72%에 해당한다. 이같은 수치는 94년말까지 집계된 전체 수입브랜드 3백83개의 37.6%에 맞먹는 규모다. 반면 지난해 새로 나온 국산브랜드는 56개에 불과했다. 브랜드 수입은 올들어서도 계속되고있다. 올 1월까지만 해도 예거 방띨로 락씨 마르곤 등 30여개의 해외 브랜드가 추가로 수입됐다.지난해말 기준으로 수입브랜드는 국내 전체 여성복의 20%, 캐주얼의류의 13%, 란제리의 11%, 유아동복의 10%, 남성복의 10%, 골프의류의 7%, 넥타이의 7%, 스포츠의류의 9%를 차지했다. 국가별로는이탈리아 브랜드가 29%로 가장 많았고 프랑스가 26%, 미국이 14%,일본이 13%를 점했다. 4대 패션선진국이 전체 수입브랜드의 82%를독식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국내에 유입되는 수입브랜드는 과거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라이선스브랜드보다 직수입이 월등히 많아졌다는 것과 4대 패션선진국의 고급 브랜드외에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의 중저가 브랜드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선보인 수입브랜드 중 직수입이1백8개인데 비해 라이선스는 36개였다는 사실은 직수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입증한다.통상산업부 자료에서도 이러한 현실은 나타난다. 라이선스의 경우88년에 1백10여건으로 계약건수가 폭증했으나 89년에는 40개, 90년38개, 91년 37개, 92년 57개, 93년에는 28개 등으로 점차 주춤하고있다. 반면 직수입의류는 93년에 2천8백66억원(3억5천만 달러)으로92년 1천56억여원(1억3천만 달러)보다 2.7배가 증가했다. 93년에수입된 의류 2천8백66억원은 전체 의류시장의 10%를 상회하는 수치였다. 의류업계 관계자들은 지난해에는 직수입의류만 전체 의류시장의 15%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몇 년새 직수입이 늘고 있는 이유는 라이선스보다 비용이 싸게 먹히기 때문이다. 라이선스일 경우 브랜드 소유권자에게 브랜드 사용료를 지불해야 할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하는데 또 돈을들여야 한다. 결국 로열티와 국내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라이선스브랜드에 대한 비용부담이 증가, 의류업체들이 직수입을 선호하게된것이다.라이선스 생산이 직수입보다 비싸게 된 첫 번째 원인은 국내 업체끼리 라이선스권을 따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로열티를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일부 유명 브랜드의 경우 매출액의 보통 3∼4%하는로열티가 매출액의 10%내외로까지 높아졌다.국내 인건비 상승도 직수입을 부추기고 있다. 김묘환 넬리로디 한국지사장은 『제조원가를 따지면 외국에서 그냥 사오는게 더 유리한데 뭣하러 국내에서 생산하겠느냐』고 반문한다.직수입 증가와 함께 수입 지역의 다변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최근 국내 업체들이 수입선으로 선호하는 지역은 홍콩이다. 홍콩에서 수입된 의류는 △유럽풍의 브랜드 △메이드 인 차이나 △국내중저가 캐주얼 수준의 가격대를 특징으로 한다.주고객층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신세대며 대부분 캐주얼의류다. 현재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홍콩 브랜드로는 한화유통이 수입한 「보시니」, 메트로프로덕트의 「U2」, 개빈코리아의 「개빈」, 빌리지인터내셔널의 「코지」, BOB인터내셔널의 「리노 앤 도나」 등이 대표적이다.보통 수입브랜드가 비싸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홍콩에서 수입된 의류는 보통 바지류가 3만∼4만원, 스웨터가 2만∼4만원선이며 재킷도 10만원 내외다. 가격은 중저가지만 봉제기술과 디자인은 뛰어난 편이다. 홍콩의 의류산업은 오랫동안 구미 선진국의의류를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생산하면서 경험을 축적해 왔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가격에 세련된 도시풍의 캐주얼웨어가 홍콩의류의 강점이다.◆ 시장이 일류면 살아남는 브랜드도 일류올해는 유통시장 전면 개방 원년이다. 수입브랜드가 더욱 많아질거란 얘기다. 수입브랜드 난립은 유통구조 혼란을 야기하고 외화를낭비하며 국내 중소 의류업체의 생존기반을 흔들어 놓는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그렇다고 수입브랜드 유입이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입브랜드가 많아지면 국내 소비자들의 무분별한 브랜드 선호와 과시욕구에서 비롯된 충동구매 성향은 줄어들게 된다. 수입브랜드가희귀하던 과거에는 수입브랜드는 곧 고급품이란 등식이 성립됐지만수입브랜드가 범람하면 이전의 최고급품 이미지를 잃기 때문이다.브랜드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져 브랜드보다는 자신의 개성에 맞는 제품을 구입하게 된다. 구매성향이합리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수입브랜드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 옷값의 거품이 걷히면서 옷값도 현실화된다. 외국의 다양한 제품을보면서 소비자들의 패션감각은 높아지게 된다.개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수입브랜드 범람은 국내 패션시장이 세계화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도기다. 국내 패션시장이세계화돼야 패션업계도 세계화된다.패션업체들은 앞으로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수적으로앞선 기획과 마케팅력, 세련된 디자인 등을 갖춰야 한다. 국내 시장에서도 세계 일류 브랜드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일류면 그 시장에서 살아남은 브랜드도 일류다. 국내시장을 석권하면해외시장도 제패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국내 패션업계가 시야를세계로 넓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