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성장가도를 달려온 백화점업계에 빨간 불이 켜졌다. 매년 20∼30%의 신장세를 보여온 백화점들의 매출증가율이 올해 10%이하로뚝 떨어진 것. 「백화점업계의 고성장시대가 올해로 마감한 것이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올만큼 업계관계자들 사이에 위기감이 팽배해지고있다.백화점업계의 매출부진은 우선 서울지역 대형백화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올들어 4월까지 3천1백60여억원어치를팔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9.4% 늘어난 수치에 불과하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의 경우 같은 기간동안 1천4백70여억원의매출을 기록, 전년대비 3.8%증가에 머물렀다.롯데백화점은 지난 79년 영업을 시작한지 16년동안 매년 20%이상의 고속성장을 구가해왔다. 지난해에도 매출이 23%증가, 국내 백화점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매출 2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올해는백화점 매출증가율 둔화로 목표액 3조1천억원 달성은 도저히 불가능해졌다.◆ 유통개방과 할인업태 등장으로 영역 위축돼롯데백화점은 매출부진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비상조치에 들어갔다. 공식 휴무일인 월요일에 임시영업을 시작한 것이다. 롯데는 지난 5월 정상적으로 영업할 경우 4일동안 문을 닫아야 했지만실제로는 두차례(13일, 27일)만 쉬었다. 롯데는 6월 들어서도 휴무일인 3일 임시영업을 했다. 매출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비상체제가계속되고 있다.하지만 휴무일인 월요일 매출이 평일의 50~60%에 그쳐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있다. 휴무일에 쉬지 못하는 직원들 사이에 불평의 목소리도 새나오고 있는 형편이다.물론 매출이 부진한 곳이 비단 롯데만은 아니다. 신세계 뉴코아 미도파 등 서울지역 대부분 백화점들이 올들어 10% 이하의 저성장에 머물고 있다. 매년 20~30%의 고속성장을 지속해온 백화점들로는 바짝 긴장할만한 「사건」이다. 백화점들의 매출부진은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는게 대부분 업계관계자들의 얘기다.올해초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유통업체들이 국내로 들어오고있는데다 할인업태의 등장으로 백화점의 영역이 크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또 대기업들의 유통업참여와 기존 유통업체들의 사업확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출부진과 이에 따른경영압박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외국유통업체의 국내진출과 유통업체간 경쟁격화로 위기상황을 맞고있는 대표적인 지역은 인천. 인천지역의 백화점들은 최근 이곳으로 몰려들고있는 국내외 유통업체들로 몸살을 앓고있다. 네덜란드계 유통업체인 마크로가 인천 송림동에 매장면적 4천평 규모의 회원제창고형 매장을 개설했다.신세계의 E마트와 뉴코아의 킴스클럽은 지난해부터 본격 진출, 인천지역에 가격파괴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다음달 부천에 매장을 내는 프랑스 할인업태 까르푸 역시 인천상권을 넘보고있다. 인천 희망 안양본 로얄 등 이지역 백화점들이 최근 경인지역유통협의회를구성, 공동대응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공동구매 공동PB(자체상표)개발 등 이 유통시장개방에맞서기 위한 방안으로 추진되고 있으나 매출액에는 별다른 변화가없다.◆ 유통인력 부족으로 스카우트전쟁 불가피인천의 동아시티백화점의 경우 올들어 4월까지 5백30여억원의 매출을 기록,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3% 감소했다. 희망백화점 역시 4백20여억원어치를 팔아 전년대비 2% 늘어나는데 그치고있다. 희망백화점 인천백화점 씨티백화점 현대부평점 등 인천지역 백화점들이때아닌 바겐세일행사에 돌입한 것은 물론 이같은 매출부진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한 것이다.희망백화점 인천백화점 뉴코아구월점이 지난 24일부터 6월1일까지,동아시티 로얄 현대부평점이 31일부터 9일까지 임시세일을 각각 실시했다. 백화점 바겐세일은 일반적으로 계절상품판매를 마무리한다는 뜻에서 매년 4월(봄) 7월(여름) 10월(가을) 1월(겨울)등 네차례열어왔다.여름상품판매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5월말 바겐세일을 실시한다는것은 제값에 팔 수있는 제품을 헐값에 판매하게돼 결국 제살깎아먹기의 역효과만 낳는다. 이같은 문제점을 알면서도 경쟁적으로 세일에 돌입한 것은 상황이 그만큼 심각한 탓이다. 희망백화점 관계자는 조금이라도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바겐세일행사라도 가져야한다며 이 세일에 따른 매출이익률 감소현상은 나타나겠지만 매출만회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말했다.유통업계의 인력부족현상도 올해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는 문제점이다. 기존유통업체들의 사업확장과 대기업들의 신규참여, 외국업체들의 국내진출로 유통전문인력수요는 폭증하는 반면 인력공급은 이에 훨씬 못미치고 있는 실정이다.최근 경력사원을 채용한 신세계 LG백화점 삼성물산 등의 경력사원채용에 기존 유통업체인력이 몰려들면서 파문을 불러 일으킨게 인력부족문제를 나타낸 대표적인 사례.신세계백화점이 최근 실시한 경력사원 2백명 모집에 4천여명이 몰려들었으며 LG백화점에는 60명 모집에 1천3백여명, 삼성물산에는1백명 모집에 1천2백여명이 응시했다. 이때문에 기존 유통업체에서는 자사직원중 누가 이들회사에 지원했는지를 파악하느라 한차례소동을 겪어야했다. 어떤 회사에서는 2백~3백명의 직원이 대거 응시, 인사담당자들이 골머리를 앓아야했다.외국유통업체의 경우 『기존 유통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뽑아가지는 않겠다』(베르나 엘루와 한국까르푸사장)고 밝혀 아직까지는 문제가 생겨나지 않고있다. 하지만 외국유통업체들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고 국내대기업들의 신규참여가 잇따를 경우 한정된 유통인력에 대한 스카우트전쟁은 불을 보듯 뻔하다.대형백화점들의 매출부진과 인천지역백화점들의 이례적인 세일행사, 인력스카우트전쟁 등은 그동안 국내유통업계에서 좀처럼 볼 수없었던 일들이다. 유통시장이 개방된지 5개월만에 생겨나는 사건들이다. 유통시장이 개방된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백화점업계에 이같은 일들이 발생한 것은 그만큼 국내유통업계가 취약하다는 증거이다.국내유통업 종사자의 90% 이상이 1, 2명의 가족노동력에 의지하는자영업자들이다. 국내유통업 매출액중 80%이상이 이들 영세상인들에게서 발생하고있다. 근대화된 소매업태라고는 백화점과 슈퍼마켓, 그리고 일부 편의점등이 고작이었다.이같은 상황에서 백화점들은 손쉬운 장사를 해왔다. 80년대 백화점들은 좋은 길목에 커다란 건물을 세워놓고 물건만 많이 갖추면 저절로 장사가 됐다. 경쟁자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제품을 취급하는소매상으로서 「소매업의 왕좌」를 지켜왔다.◆ 특화된 소매업체 등장으로 입지 축소그러나 최근들어 새로운 유통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자신의 영역을하나둘씩 빼앗기고 있다. 우선 저가격을 무기로 내세운 할인업태에규격식품과 공산품, 전자제품분야의 매출을 빼앗기고 있다. 꼭같은품질의 제품을 비싸게 살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할인점쪽으로 고객이 몰리고 있다.이때문에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등은 올해들어 가전매장을 크게축소하고 있다며 메트로미도파는 가전매장을 아예 없애버렸다. 식품매장 역시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컴퓨터전문점 의류전문점 자동차용품전문점 등 분야별로 특화된 소매업체들의 등장 역시 백화점의 입지를 축소하고있다.특정분야의 제품들을 폭넓게 갖추고 값싸게 판매하는 카테고리킬러(전문양판점)가 국내에 잇따라 등장할 경우 백화점의 영역은 더욱좁아지게 된다. 백화점이 의류 식품 공산품 등 각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란 불가능하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