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제 59점, 자치단체장 65점, 지방의회의원 47점. 평균57점」.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지방자치제에 대한 성적표다. 한마디로 기대이하라는 말이다. 단체장에 대해서는 기대심리를 반영하듯 비교적 높은(?) 점수를 내줬을 뿐 나머지는 낙제점을 면치 못했다.특히 의원은 절반에도 못미쳤다. 일부에서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자질없는 사람들이 선출됨으로써 비리를 양산하고 지역이기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다.「풀뿌리 민주주의」로 치켜세우면서 수많은 곡절을 거쳐 30여년만에 부활된 지자제. 국민들의 기대를 모으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던 지자제가 항해 1년만에 이토록 낮은 평가를 받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요인은 많다. 한마디로 『자치를 할 여건이 마련돼 있지않다』는 것이다.◆ 지자체 재정파산 경우 중앙정부 개입해야준비미비의 대표적인 예는 낮은 재정자립이다. 지방세로 인건비도충당 못하는 자치단체가 58%에 달한다. 지자체별 자립도도 천차만별이다. 서울(98.6%) 인천(93.2%) 대구(88.9%) 부산(85.2%)등 일부광역단체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전남은 서울의 4분의 1 수준인 25.7%에 지나지 않는다. 전북(33.2%)충남(33.3%) 강원(35.2%)등 대부분이 형편없는 수준이다. 군·구등기초단체로 가면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자체 재원으로 투자사업을벌인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자연히 중앙정부의 그늘에 들어가 손을 벌리게 마련이다. 『재정을 중앙에 의존하면서 자치를 한다는것은 말이 잘 안된다』(조순 서울시장)는 지적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지자체의 낮은 재정자립은 지자체가 재정적으로 파산할 경우 중앙정부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구실로도 작용한다. 지자체의 재정이 파산에 이를 경우 중앙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72.0%로 지자체의 자체수습에 맡겨야 한다(27.6%)는 의견보다 3배나 많았다. 비상시국을 막기 위해 평상시에도 「지도」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와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재정자립 없는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부처님 손바닥」인 셈이다.중앙정부의 권한이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경제관련 인허가권을 중앙정부가 그대로 쥐고 있어 지자체의손발이 묶여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중 79.2%가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의 권한이양이 미진하며 권한이양이 필요한 부문으로 경제관련 인허가권(57.1%)을 거론한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지역이기주의도 지자제의 성공적인 착근(着根)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영광 원자력 발전소 건설이나 군포 쓰레기 매립장 건립 및굴업도 핵폐기물 처리장 설치등…. 국가적 차원에서는 꼭 시행해야 하나 해당 자치단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업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영종도 신공항 고속도로와 경부고속전철 건설을 둘러싸고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샅바싸움을 하는 것도마찬가지다.이는 지자제 이후 중앙정부와 지자체 및 지자체와 지자체 사이에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평가와 일맥상통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에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람은 57.6%에 달했다. 특히 지자체 사이의 협조관계에 대해서는 79.8%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골치 아픈 일은 안하고(NIMBY현상) 도움되는 일은 적극 유치한다(PIMFY현상)는 이해상충을 제대로 조화시킬 수 있는 경험이나 제도가 아직도 정립돼 있지 못하다. 머리를 맞대고 타협안을 찾아내는 훈련이 안된 탓이다.◆ 중앙·지방정부 역할과 권한 명확화 절실그렇다고 지자제가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사회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다. 지자제는 민주주의발전에 기여했으며(78.2%) 시민의식 향상(67.4%)과 지역경제활성화(50.2%)에도 긍정적 효과를 발휘했다. 단체장과 지자체에 경영마인드를 도입시켰으며 지방공무원들의 서비스가 좋아진 것도 내세울만한 성과다.지자제가 완전히 정착하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권한에대해 명확한 선이 그어져야 한다. 그동안 중앙집권제에서 관행으로이뤄졌던 일들을 처음부터 재검토해 중앙정부 업무중 지방정부가해야할 일은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만이 중앙정부와지방정부간에 원활한 협조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지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해당 업무를 가장 잘 할 수 있는 지자체에 맡긴다는게 지자제의 가장 큰 기둥이다.지자제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대세다. 밥한술에 배 부를수 있는것도 아니다. 현행 지자제가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게 사실이나지자제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문제는 더욱 악화됐을 거라는 지적이 많다. 문제점으로 떠오른 것은 개선하고 긍정적 요소는 더욱 발전시켜 국가발전의 초석으로 다듬는게 지자제 2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맡겨진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