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한국중공업 영동사옥 및 부지반환소송이한국중공업과 현대산업개발의 8년여 법정공방 끝에 결국 현대측의승소로 일단락됐다.대법원은 지난달 28일 한국중공업은 서울삼성동소재 사옥의 소유권을 현대산업개발에 넘겨주라고 고등법원의 원심을 확정했다. 이사회의 결의를 거지치 않은 사주독단에 의한 매매계약은상법(3백98조)에 위배된다는 것이 확정판결이유였다. 이에따라 시가 3천여억원에 달하는 서울요지의 건물과 땅은 일단 현대그룹의차지가 됐으나 재계관계자들은 다른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은 거의 강압에 의해서 추진된 정부의 중화학투자조정정책이 법원에 의해서 원상회복됐다는데에 재계관계자들은 무게를 싣고 있다.한중영동사옥을 둘러싼 분쟁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분쟁의 발단은 지난 79년 5월 단행한 정부의 중화학투자조정조치.정부는 당시 중화학투자조정정책을 펴면서 정인영 현대양행그룹회장(현 한라그룹회장)에게 주력기업인 현대양행을 제외한 한라건설등 다른 계열사는 현대그룹에 넘기도록 했다. 언제나 그렇듯 현대양행그룹의 몰락을 예감한 은행들은 대출을 전면중단했고 부도위기에 몰린 정인영회장은 그해 9월 친형인 정주영현대그룹회장에게 계열사를 일괄양도키로 합의하고 절차를 밟아나갔다.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는 한라건설소유였던 문제의 영동사옥 및 부지를 현대양행에 넘기도록 조치했다. 이같은 정부방침에 따라 정인영회장은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채 건물과 부지를현대양행(현 한국중공업)에 양도하는 매매계약서를 임의로 작성,소유권을 이전했고 정부는 당시 시가 기준으로 매각대금 82억원을한라건설에 지불해 정산절차를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한라건설은 현대그룹으로 넘어가 한국도시개발과 합병, 현대산업개발이 됐고 현대양행은 현대중공업, 대우그룹을 거쳐 지금의 한국중공업으로 탈바꿈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시장원리 무시한 정책이 송사 초래당연히 소유권이 넘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던 현대측으로서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지를 못했다. 모든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던 5공초기였다. 벙어리 냉가슴이었던 현대그룹은 6공정부가 출범하자 반격에 나섰다.현대산업개발은 영동사옥이 소유권이전의 필수절차인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않고 계약서도 허위로 작성됐다고 주장, 88년 한국중공업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청구소송을 제기했다. 1심(현대패소), 2심(현대승소)의 과정을 거쳐 소유권은 현대산업개발에 있는것으로 결정됐다. 뒷일은 생각하지도 않은채 권위주의적인 정부가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 소유권 이전 14년만에, 소송제기 8년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된 것이다.이번 대법원 판결로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중공업과 현대사이에는 4건의 소송이 남아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양행을 소유하고 있을 당시 투자했던 발전설비등 1천억원을 반환토록요구하는 정산금변제소송을 한중을 상대로 제기해놓고 있는 실정이다.한중은 이번 판결과 관련, 대법원판결과 상관없이 정인영회장을 상대로 한중의 재산보호를 위한 법적대응을 해나갈 방침이다. 끊임없는 송사가 이어질 것이 분명하고 이로인해 당장 코앞에 닥친 한중의 민영화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시장경제원리를 무시한 정부의 조치가 이런 불필요한 송사를 초래한 셈이다.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은 그의 저서 <시련은 있어도실패는 없다 designtimesp=21021>에서 이런 말을 했다.『법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원숙한 정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대한민국에서 기업을 하면서 살아오는 동안 굳이 고통과 고난을 찾는다면 정권이 바뀔때마다 치러야 하는 홍역이다.』 정명예회장의이 말을 경제정책 관계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