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이 끝난지 두달이 돼간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총선후엔 경제의 계절이 열릴 것으로 기대해왔다. 그만큼 소모적인 정치게임에싫증을 느껴왔다는 얘기다. 물론 그 이면에는 경제움직임이 심상치않다는 불안감도 한몫을 했다.그러나 국민들의 이같은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총선이후여야간에 치열한 파워게임이 벌어진 탓이다. 여기에 YS대 DJ·JP라는 3김의 생존을 건 자존심대결까지 맞물려 정국은 긴박감이 더해가고 있다. 5일이 15대국회의 법정개원일인데도 의사일정조차 협의를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총선이 끝난지 오래됐는데도 정치의계절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총선직후 정치는 안정될 것이라는 견해가 강했었다. 여소야대이긴해도 여당이 서울에서 예상밖의 선전을 해 많은 당선자를 낸 결과다. 김영삼대통령이 야당총재를 잇달아 만나면서 대화정치분위기가무르익는 듯했다. 일반국민들이나 재계도 이제부터는 경제문제도잘 풀릴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오랫동안 바닥권에서 비틀거리던 증시가 총선직후 급등세로 돌아섰던 것도 이런 분위기에 힘입었다. 그러나 사회 및 경제의 거울이라는 증권시장은 곧 힘을 잃고 말았다. 정국불안과 선거이후 풀린 돈을 옥죌지 모른다는 전망이 함께 작용한 것이다.그러면 정치권의 난기류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그것은 두말할 것없이 신한국당의 야당기습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신한국당은 4.11 총선에서 1백39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냈다. 이는 재적2백99명의 과반수에 11명이 모자라는 숫자다. 근소한 차의 여소야대 구도였다. 정부여당은 이런 틀로는 정국을 끌고가기가 어렵다고판단한 것 같다. 국회상임위원장 배정을 비롯해 의사일정 법안처리등 도처에서 야당에 끌려가는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원내교섭단체구성이 안되는 민주당의원과 색깔이 비슷한 자민련 무소속당선자들을 품어안으려 했다. 신한국당은 현재까지 12명의 의원을 영입, 의석을 1백51석으로 늘렸다.여당의 야당의원 빼가기는 잠잠하던 정국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야당은 인위적인 야소여대정국으로의 전환을 총선민의를 무시하는 독선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야당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내는 한편 연대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다. 야당은 현상황을 최대의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야당 죽이기라거나 또다른 문민독재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보라매공원에서 대규모시위를 한데 이어 추가 장외투쟁을 준비중이다. 여당은 일단 대화의장으로 들어오라고 달래고 있지만 야당의 분은 좀처럼 풀릴 기미가없다.정국은 그야말로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개속에 싸여 있다.여야의 대치로 15대국회는 출발부터가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정치의 계절이라해도 실제로는 정치가 실종돼버린 묘한상황이 돼버렸다.정치인은 입만 열면 자유민주를 외치곤 한다. 그러나 말 따로 행동따로다. 버나드 크릭의 자유민주정치론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증진을 이상으로 삼고 이를 대화와 타협으로 실현해가는 집단활동이 그 요체이기 때문이다.여기서 정치의 원론을 재론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정치가 혼란하면경제마저 그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무한경쟁시대라는 오늘날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힘을 합쳐도 외국과맞서는데 힘이 달린다. 굳이 하위권에서 맴도는 국가경쟁력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그렇잖아도 우리 경제는 올들어 심상찮은 조짐들이 여러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상수지적자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4월까지만도 무역수지적자는 60억달러에 육박했다.정부의 연간 경상수지 목표치와 맞먹는 규모다. 경기를 이끌어 왔던 자동차 반도체경기도주춤거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동차의 경우 수출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노다지로 통했던 반도체는 해외수요부진에다 공급과잉까지 겹쳐 값이 급락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 30일 반도체가격하락에 대응, 16메가D램 생산량을 월 1천2백만개로 15% 감산키로했다. 철강이나 석유화학도 사정은 비슷하다. 엔화약세로 우리 상품의 수출경쟁력은 일제에 밀리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제원자재 값도 들먹거린다. 하반기엔 공공요금인상이 줄을 이을 판이다. 그만큼 물가가 불안하다.정치권도 이를 못본체해서는 안된다. 정치경제학이란 말처럼 정치와 경제는 분리할 수 없는 까닭이다. 더구나 내년말에는 대통령선거가 있다. 정치권에서 소모적인 대립이 계속될 경우 경제는 없고정치만 존재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비틀거릴 수밖에 없게 된다.지금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에케케이리아(Ekecheiria)정신이아닐까.에케케이리아란 고대올림픽을 가리킨다. 원래는 칼을 빼려는 손을 억눌러 빼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싸움은 선거기간에만하고 그 밖에는 국민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주문이다. 유권자들은 바로 그런 모습을 고대하고 있다. 한일공동개최이긴 하나 2002년 월드컵도 준비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