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1만4천, 1만8천이면 합이 얼마지, 4만1천이네. 도대체 얼마까지 늘어나는 거야』.어느 중소기업사장의 이 우스갯소리는 물론 국제표준화기구(ISO)가만들었거나 앞으로 만들게 될 표준규격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 품질(9000시리즈) 환경(14000시리즈) 안전(18000시리즈)과 관련된 국제표준규격들외에도 환경부의 환경친화적 기업지정제도, 노동부의 공정안전관리(PSM)제도등 기업들이 준수해야 하는 표준규격들은 부지기수로 많다.중소기업사장의 농섞인 푸념속에는 이같은 각종 규격들을 허겁지겁쫓아가야 하는, 기업인으로서 느끼는 경영상의 애로가 짙게 배어있다. 따르고 싶지 않다고 마음대로 되는게 아니고, 따르자니 언제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는 것이다.예정대로라면 오는 7월부터 국내외적으로 ISO14000시리즈가 시행에들어간다. 이를 위해 정부가 마련한 긴 명칭의 한 개 법률(환경친화적 산업구조로의 전환촉진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는 것이다.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정비가 늦어진다고 해도 올해안에 14000시리즈가 시행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물론 국제적으로도 현재초안(ISO/DIS14000)상태인 규격들이 확정돼 시행에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이전에 도입된 ISO9000품질시리즈가 웬만큼 정착되자 이제 환경규칙이 코앞에 다가온 것이다.◆ EU국등 인증제품 선호 뚜렷14000시리즈에는 여러 가지 세부항목이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상품에 대한 환경경영인증요건과 절차를 규정한환경경영체계(EMS), 상품에 사용하기 위한 용어를 정의한 환경라벨링(EL), 제품의 설계에서부터 폐기까지 전과정에 걸쳐 환경에 대한영향을 평가한 전과정평가(LCA)등이다.이들 14000시리즈의 표준규격들은 기업이 의무적으로 따라야 하는강제적인 규정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있는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그 인증을 요구할 것이 확실하다. 특히 「환경경영과감사규칙(EMAS)」을 이미 채택해놓고 있는 EU국에서는 소비자들도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인증받은 제품에 대해 뚜렷한 선호를 보이는단계에 들어가 있다.앞서 시행에 들어간 9000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카드리더(신용카드등의 정보를 읽는 기계)를 생산하면서 일찌감치ISO9001을 획득한 경덕전자(주)의 전정호대리(ISO9000심사원)는 『과거같으면 한국의 조그만 중소기업으로 다국적기업들에 샘플을 보내기도 힘들었지만 인증서를 받고부터는 샘플테스트를 의뢰할 수있게 됐다』고 말했다.환경에서도 일단 국제적인 표준이 확립되면 시장에 대한 접근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파급효과등을 감안하면 따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ISO의 국제표준화작업은 세계무역기구(WTO)내에서도 관심을 갖고지원하고 있는 사항이다. 특히 WTO산하에서 세계교역에 대한 갖가지 장벽들의 부합성 등을 다루는 TBT(Technical Barriers toTrade)는 활동의 원칙으로 표준 기술규정 등이 불필요한 무역장벽의 설치를 목적으로 제정돼서는 안된다는 점과 국제표준을 통해서조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ISO의 표준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결국 기업들은 환경경영에 힘쓰지 않으면 국내외적으로 시장접근의원천적인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고 기업이미지마저도 실추하게 되며한층 강화되고 있는 환경기준들로 인해 감시대상이 될 뿐이다.인증기관 관계자들은 기업이 환경인증을 획득할 경우 지역고객들에게 자신들의 환경친화적인 경영실상을 입증하게 되며 외국고객들로부터는 동등한 입장에서 입찰기회를 제공받는 등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환경비용을 절감시키는 등 장기적으로는 실질적인 이익을 볼 수도 있다.그러나 환경인증을 통한 효과는 「최소한 입찰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는 식의 소극적인 성격의 것일 수 있으며 사후관리를 통해서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노력이 없으면 단순한 종이쪽지를 손에 쥐는것에 불과한 결과를 낳는다.나아가 기업은 ISO14000인증을 얻는다고 해도 조만간 새로운 표준규격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ISO에서는 다시 안전과 관련된18000시리즈의 구상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품질 환경 안전과 관련인증을 받아야 하고 다시 국내에서 시행되는 환경친화적 기업지정을 받고 공정안전과 관련된 기준을 맞춰야 한다.따라서 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이이뤄지지 않으면 규격문제는 새롭게 대두될 때마다 기업들에 껄끄러운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경영에 있어서 비슷한 형태의 각종 표준들이 각각 별도로 관리 운영된다면 관리의 중복이나책임의 모호성으로 인해 많은 손실부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표준전쟁’능률협회의 김용군 전문위원은 『실제로 ISO의 각종 표준규격들이한결같이 업무의 과정이나 시스템상에서 준수돼야 할 사안들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며 『기업으로서는 그때그때마다 규격을 따라가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품질 환경안전등을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TQSEM(Tatal Quality SafetyEnvironment Management)쪽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미 ISO에서도 별도로 추진됐던 품질과 환경규격들을 통합해서 운영하려는 움직임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조류에 앞서대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세계는 지금 표준전쟁이다. 국제기구들에 의해서 주어지는 표준은물론이고 업체간에도 제품의 표준규격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에서 확립하려는 치열한 싸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개인휴대통신의기술규격을 놓고 벌어진 국내통신회사들간의 접전이나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의 규격을 놓고 소니 필립스와 도시바 타임워너등이연합군을 형성해가며 벌인 대결등이 대표적인 예다.그러나 이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하철4호선과 과천선(국영철도)의 전류방식이 달라 변환장치에만 수십억원을 들여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이번 ISO14000시행을 계기로 표준에 대한 인식이 제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