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하반기부터 여신만을 전문으로 하는 단종(單種)여신금융기관(비은행은행, non-bank bank)의 업무영역파괴가 본격화된다. 오는98년에는 리스 카드 신기술금융 할부금융 등을 모두 담당하는 여신백화점이 등장하게 된다. 재정경제원이 현재 개별법에 의해 하나의 대출업무만을 하는 단종여신금융기관을 단일화하는 작업에 손발걷고 나선데 따른 것이다.재경원의 단일화 방침의 논리는 명쾌하다. 여신만을 담당하는 이들4개 기관은 영업대상과 업무성격상 공통점이 많은 「동질적」 금융기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수신기능이 없어 부실화돼 파산한다고해도 예금자보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여기에 미국이나 일본등금융 선진국에서도 업종별로 세분화되지 않고 있고 상대적으로 규제가 없다는 점도 단일화를 뒷받침한다.우리나라는 그동안 기업설비자금지원(리스, 신기술금융) 신용거래질서정착(신용카드) 제조업유통자금지원(할부금융)등 시대적 필요에 따라 개별업종에 대한 근거법을 만들어 관련 금융기관을 인가해왔다. 개별기관이 설립목적을 충실히 해온 것도 사실이다. 리스의경우 기업설비투자의 30% 이상을 뒷받침하며 세계 4대시장으로 부상했다. 신용카드도 과소비 등의 「비난」을 받고 있으나 신용사회정착에 기여해왔다.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크게 변했다. 금융산업의 겸업화 진전과 시장개방 및 금융수요의 다양화등 시장여건 변화속에서 단종여신만으로는 대내외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자율화·개방화 시대에 울타리를 높게 유지하기 힘든데다 선진국금융기관들의 진출에 대응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요청도 크다.세분화된 업종구분과 복잡다기한 규제체제를 조기에 정비해 시장대응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벽허물기는 불가피하다는 시각이 대세를 이룬다.◆ 할부금융 인가 3개월만에 단일화는 조령모개현재 단종여신금융기관은 숫자가 너무 많은 실정이다. 리스(25개)신용카드(8개) 할부금융(31개) 신기술사업금융(4개)등 68개에 달한다.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구멍가게 수준이다. 사당 평균자산이 1조원에도 못미친다.이런 체력으로는 거대한 외국금융기관에 KO패 당하기 십상이다. 무언가 변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그런 위기의식이 이같은단일화 방안을 태동시켰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이같은 「방향」이 맞다고는 해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아니다. 정부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됐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단종여신금융기관 단일화 방침을 발표한 재경원이 바로 3개월전인 지난2월 31개에 달하는 할부금융사를 새로 인가했다. 그때 찍은 도장의인주가 채 마르기도 전에 이와 정반대의 정책이 발표된 것이다.그동안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 당국자도 그대로고 금융환경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정책 일관성이 없고 금융산업발전을 위한 장기플랜이 없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조령모개의 전형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내질러 놓은 자식을 상황이 바뀌었다고 이제와서알아서 크도록 내버려 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편이다.성격이 비슷한 창업투자(벤처캐피탈)이나 팩토링에 대해선 언급이없다는 것도 문제다.『창업투자는 통산부 관할이고 팩토링은 재경원의 인가를 벗어났다는 이유로 제외했다.』(이윤재 은행보험심의관)는 재경원의 설명은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관련업계의 여론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업무영역 조정은 이미 개별법에 의해 기득권을 갖고 있는 업체를 설득해합의를 도출하는게 불가피하다. 정부 방침을 사전에 발표해 업계를당황하게 하는 것보다는 사전에 의견조율을 거쳐 일관성있게 추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어쨌든 단종여신금융업계는 급격한 구조변화의 몸살을 앓지 않을수없게 됐다. 능력있는 기관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게 된다. 경쟁에서 진 기관은 여지없이 문을 닫아야 하는 시대가도래한다는 얘기다. 과거와 같은 정부의 「온정주의」는 없어진다.그동안 보호막역할을 해왔던 온실(업무영역)이 없어지면서 들판의거센 비바람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 규제가 없어지는 만큼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위기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파산할 위험이 커지는 것이 사실이나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위험을 기회로 바꾸기 위한 전략을 마련해 승리로 이끄는 것은 개별 기관에 맡겨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