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실정에 맞는 공사안전시스템과 장마 및 하절기 안전대책을다시 작성해 1주일내로 보고하라」.지난해 6월 30일 모 종합건설회사는 전국 1백80개 작업현장에 이같은 내용의 긴급공문을 발송했다. 바로 전날 발생한 삼풍백화점붕괴에 대한 미봉적 대응이었다. 종이에 쓰여지기만 하는 안전관리로는대형사고를 막을 수없다고 웅변한 「삼풍사태」에 대해 내로라하는건설회사의 첫반응이 새로 보고서를, 그것도 1주일안에 작성하라는것이었다. 「얼마나 급했으면」하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야말로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조치였음이 그후 삼풍사태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인 원인들을 점검하는 가운데 극명하게 드러났다. 삼풍사태의재발방지를 위해서는 1주일 아니라 1주일의 수십 수백배에 해당되는 기간에 걸쳐 불합리한 관행들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야 됐던것이다.◆ 건설회사들 품질경영을 경영목표로 내걸어1년이 지난 지금 사회일각에서는 삼풍교훈을 받아들인 흔적들이 엿보이기도 한다. 기업쪽에서는 삼성그룹의 건설 엔지니어링 등 건설관련사들은 삼풍2개월을 넘기면서 신건설제도를 도입 운영해오고있다. 그 내용은 백화점붕괴를 계기로 쏟아져나온 건설업계의 갖가지 모순에 대한 시정의지를 담고 있다.우선 눈에 띄는 것은 외국감리인력의 현장투입이다. 세계적 감리회사인 미국의 파슨스, 영국의 트라팔가 등과 감리계약을 맺었다. 삼성건설의 한 관계자는 『지난 연말 80여명의 외국감리인력이 국내에 들어왔으며 그룹본사담당자들과 함께 공사현장에 대한 대대적인감리작업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협력업체에 대해 적정이윤을 보장하겠다는 부분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근본적으로 부실시공은 그동안 건설업계의 「수주 - 하청- 재하청」구조 속에서 공사단가를 무리하게 낮춤으로해서 일어났다. 삼성은 적자가 난다해도 이를 본사가 떠안고 협력업체에는 전가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그러나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안팎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많다.근무하던 회사의 부도로 도피생활중인 중소건설회사의 조모대리는『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건설회사의 단계가 워낙 여러 층으로이뤄져 있어 재하청과정에서 단가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한편 삼성건설 교육팀의 박모대리는 『과거에도 안전문제에 대한교육은 많았지만 삼풍이후로는 교육의 횟수나 강조하는 정도가 판이하게 다르다』며 정신교육을 통해 안전에 대한 인식변화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쌍용그룹은 삼풍이후 시설안전유지사업단을 발족시켰다. 대형빌딩이나 구조물의 안전진단과 관리를 전담하는 부서를 그룹내 별도조직으로 만든 것이다. 인원은 쌍용양회의 진단기술팀과 보수사업팀에 건설 엔지니어링 남광토건등 관련 계열사의 기술과 인력을 통합시켜 박사급을 포함한 전문인력 50여명으로 구성했다. 그룹의 관계자는 『그전부터 쌍용양회의 사업다각화 차원에서 고려된 사안이었으나 삼풍이후로 공공안전을 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차원에서 사업단을 발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이밖에도 현대건설이나 현대산업개발 동아건설 대우건설 LG건설등대형건설회사들은 자체적으로 안전진단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대형사고가 빈번히 발생함으로해서 시공품에 대한 안전문제가 사운과직결된다는 의식을 갖게 된데다 공공부문발주공사의 입찰자격에서도 이같은 부분이 고려되기 때문이다.특히 취약한 부분으로 지적받았던 구조물에 대한 감리와 관련해서는 한진건설 대림산업 두산건설 동아건설 금호건설 등이 감리단을구성하고 인원을 증강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올들어 대다수 건설회사들은 한결같이 품질경영을 경영목표로 내걸고 있으며 이같은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국제표준화기구(ISO)9000시리즈의 획득이다.국내에는 지난해 중순까지만 해도 대우건설을 비롯, 현대건설 대림산업 등 20여개 건설·엔지니어링업체들이 ISO9000인증서를 보유하는 정도였으나 지난 3월 현재는 그 숫자가 53개업체(토목 건축 설계분야)로 늘어났다. 엔지니어링분야를 합치면 그 수치는 더욱 커진다.◆ 매월 4일은 「안전점검의 날」로 지켜9000시리즈의 획득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정부가 공사발주시 업체선정기준으로 품질경영의 인증여부를 따지는 것은 물론 해외시장의대형공사에서는 인증획득이 없이는 아예 입찰자체가 불가능한 추세를 보이고 있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그러나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 9000시리즈의 획득업체가 늘어나는것은 삼풍이후 기업내에서 품질경영에 대한 인식제고가 일어나고있음을 보여주는 일면이다.삼풍사태는 단순히 건축물이 무너졌다는 의미에만 국한되는 것이아니다. 본질적으로는 지난달 발생했던 서울의 방공망이 뚫린 사건과 같이 생활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무감각에서일어났다는 성격을 갖는다.그렇기 때문에 대형사고의 재연을 방지하는 노력이 단지 기업차원에서 이뤄진다고 해결되지 않으며 동시에 사회전체적인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이를 위한 활동으로 산업안전공단내에 안전문화추진본부가 구성돼 「안전점검의 날」제도가 시행되고 있다.매월 4일이 되면 추진본부의 주관아래 정부부처나 관련단체가 전국에서 일제히 안전점검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학교 산업체 건설현장 교통기관등 사회의 각 부문별로 추진본부가 작성한 체크리스트(Checklist)에 입각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있는 점검에 나서자는 것이다.추진본부의 우 성 본부장은 『삼풍붕괴같은 대형사고는 우리사회에만연된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가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상업주의와 맞물려 일어난 것』이라며 『안전점검에는 모든 잠재적인 사고피해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특히 삼풍이후 종합대책격인 「건설산업의 경쟁력 강화와부실방지를 위한 대책」을 지난 2월에 발표했다. 발주자를 대신해서 건설공사의 기획 설계 발주 감리 등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건설사업관리제도를 시행하고 현장근로자의 실명이 표기된 시공조직도를 작성, 신고하는 공사실명제를 통해 부실시공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는 것 등이다.이러한 정책과 노력들은 대형사고의 예방을 위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성패는 누구의 책임을 묻기 이전에 국민 모두가 안전의식을새롭게 해서 규정을 따르는데 달려있다. 「위에서 (귀찮은)정책이세워지면 아래에서는 (빠져나갈) 대책이 마련된다」는 식이 돼서는제2, 제3의 삼풍사태를 피할 수 없다.